종명 수필/단상 회상2010. 7. 1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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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면서 매우 흥분하는 경우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병역 기피,병역 비리 등의 역겨운 말이 터져 나올 때다.
'꼬마 아빠'의 숙명을 지고 사는 나는, 예비역 육군 병장이다.
대학 3학년 때 휴학을 한 뒤, 순천에서 병영열차를 타고 논산훈련소로 입대했다. 당시 몸무게나 키나 현역 입대 하한선을 약간 웃도는 꼬마 군인이었다.
논산훈련소 시절은 배고프고,힘든 나날이었다.어릴 때 "꼭꼭 씹으면 단맛을 내는 녹말이 나온다"(침이 녹말을 맥아당으로 분해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라했다.그러다 보니 밥을 야무지게 씹는 게 습관이 됐다. 다른 훈련생들처럼 '마파람에 개 눈 감추듯' 밥을 후다닥 먹어 치울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식판에 밥을 타, 서너 술 떠먹다 보면 "식사 끝!"이라는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논산훈련소에선 역사적으로 23연대,26연대,30연대가 악명 높았다. 군기가 가장 센 연대로 통했다.나는 23연대에서 맹훈련을 받고 눈물을 몇 차례 흩뿌려야 했다. 뺑뺑이를 엄청 돌린 뒤 "피와 땀이 스며있는 이 고지 저 고지에 쏟아지는 별빛은 어머님의 고운 눈길..."로 시작하는 노래를 부르게 하면 여기저기서 목메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훈련 기간은 여름이었다.그런데 물이 모자라 몸을 제대로 씻기가 어려웠다. 조교들은 우리 발가벗은 훈련병들을 화장실에 몰아넣고 호스로 공중에 물을 뿌려댔다. 훈련병들은 물 한방울이라도 더 묻히기 위해 혈안이 됐다. 몇 줄기 물에 몸을 적시는가 하면 이내 샤워시간이 끝나곤 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침상 옆 자리의 동료가 나를 불렀다. 그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방위산업체의 막내 아들이었다. 국립대에서 체육을 전공하다 온 그는 '특별 관리 대상자'였다. 그가 말했다.
"야,너 내일 화장실 청소 희망자 손들라코 하먼 손 번쩍 들거레이."
어이가 없어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화장실 청소를 허게 되먼 장갑 끼고 똥을 닦아내야 한다. 고것만 참으면 목욕을 제대로 할 수 있데이."
그의 말에 따랐다.이후 변기 속에 손을 넣어 똥을 치우며 구토증을 느끼기도 했지만,청소를 마친 뒤 둘이 발가벗고 깨끗하게 몸을 닦을 수 있어 참 좋았다.
이후 육군포병학교를 거쳐 최전방 사단에 배치됐다.꼭두새벽의 구보와 한겨울의 태권도 훈련,영하 20도 안팎의 꽁꽁 얼어붙는 날씨에 얼음을 깨고 물 속에 들어가 단체 기합 받기,한 겨울 군복을 입고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와 나무에 매달려 "맴~ 맴~" 외치기.....
이런 강훈련은 나를  '강한 남자'로 만들어 주었다.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온 힘과 온 정신을 모아 살아야 했던 대학 복학 시절에 발휘한 강인함은 군대에서 이미 잉태되고 있었다. 포상(견인포의 집)을 지을 때 몇 개월에 걸쳐 '등짐 노가다'를 하고,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이 산 저 산을 오르내렸다. 눈 치우기 작업,철책선 설치 작업 등은 정말 지긋지긋했다. 지식은 머리에서 많이 새나가고 있었다. 하나라도 잊지 않기 위해 김장 등 작업을 할 때 한국외국어대에 다니다 온 동기(현재 모 대학 교수) 와 영어단어를 서로 물어보는 게임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눈물겨운 노력이다.

이런 '강한 남자'되기 프로그램은 내 삶에 큰 도움이 됐다.개구리복을 입고 군문을 나설 때 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사나이가 되는 길-군 복무.
이를 기피하는 젊은이들을 볼 때마다 분통이 터지고,가슴이 아프다.(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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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