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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8.05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2. 2017.05.06 [관훈저널 2005년 봄호] 기자블로그의 공익성과 책임성
  3. 2017.05.06 단기 4290년 겨울
  4. 2017.04.06 [탈무드 퀴즈]공주 병 고친 3형제
  5. 2016.10.20 얼간이(dick)와 음경(dick)
  6. 2016.07.14 수퍼시니어 10계명
  7. 2016.06.06 다이어트, 용불용?
  8. 2016.06.05 글로벌YBM 큰아들,베트남서 일시귀국
  9. 2016.06.05 늦깎이 군인 둘째아들의 무사귀환
  10. 2016.05.28 금이빨 2개에 3만6천원 받았다
  11. 2013.12.29 어느 95세 어르신의 후회와 다짐
  12. 2013.12.10 어느 회사의 놀라운 사훈
  13. 2013.12.10 에드먼드 힐러리와 에베레스트
  14. 2013.12.10 인생은 행동이다
  15. 2013.12.10 어리석은 개미와 똑똑한 개미
  16. 2013.12.10 새로운 도전은 아름답습니다
  17. 2013.04.30 서울대 허성도교수의 강연 화제
  18. 2013.04.24 [신문과방송 4월호][언론현장] 언론도 실버 시대 경험과 지혜를 겸비한 선배가 돌아온다
  19. 2013.04.05 잠 투정 심한 아기 재우는 7가지 팁
  20. 2013.01.30 생명수한의원(일원동) 최변탁 원장님 홧팅!
  21. 2012.09.16 양재천과 아파트의 너구리 때문에 혼비백산
  22. 2012.08.08 마이 플레이스트
  23. 2012.06.18 퇴직 전 반납할 회사신분증을 씻은 까닭은?
  24. 2012.06.03 결혼식축가 '내일도 오늘처럼'
  25. 2012.02.16 앱 개발에 필요한 음원 곡당 13만 원에 살 수 있다
  26. 2011.10.03 믹시 새 블로그 등록용
  27. 2011.09.22 마포 시대에서 을지로 시대로
  28. 2011.08.23 떠돌이 생활의 시작이다
  29. 2011.08.03 영화 100편 집중감상(6월 중순~8월 말)
  30. 2011.08.02 jTBC, 개국 기념공연을 일본에서?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Posted by A&Z
TAG 정호승

[관훈저널 2005년 봄]

                                                  기자블로그의 공익성과 책임성

 

                                                                                              김영섭 (중앙일보 부국장)

 

블로그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때론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는 이 블로그의 위력은 퍼가기(중앙일보 & 조인스 닷컴) 또는 스크랩(조선일보 & 조선 닷컴) 기능에서 나온다. 일반인이든 기자든 '블로그 집단'의 폭발력이 가히 혁명적일 수 있음은 바로 이 놀라운 '퍼뮤니케이션(Pummunication)' 기능 때문이다.

광고회사인 휘닉스 커뮤니케이션즈는 20049월 신조어를 두 개 만들었다. '(글을 퍼가는 행위)+커뮤니케이션=퍼뮤니케이션'이 그 하나다. '(글을 퍼가는 행위)+(kin,웹상에선 '즐거움'이라는 뜻,글자를 오른쪽으로 세우면 한글로 ''처럼 보임)=펌킨족'이 그 둘이다. 퍼뮤니케이션의 기능은 다른 사람의 글을 퍼오는 데다,같은 사이트의 카페·클럽 등에 자신이 쓴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자동적으로 펌질할 수 있게 해준다.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는 블로그 등 1인 미디어를 갖고 있는 전국의 1634500명을 대상으로 '' 이용 실태를 조사,분석했다. 그리고 '퍼뮤니케이션의 시대'라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엔 "펌 문화가 인터넷 시대의 새 의사소통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적혀 있다.

이처럼 '펌질'을 통한 디지털 입소문은 바이러스처럼 퍼진다. 필자의 블로그 필명은 파우스트다. 독일어 faust는 영어로는 fist(주먹)라는 뜻이다. 조인스 닷컴 블로그(http://blog.joins.com/edwdkim)에선 이걸 쓴다. 조인스 닷컴 외에도 여섯 개의 블로그를 개설해 놓고 있다. 모두 연구용이다.물론 각기 다른 필명을 쓴다.

필드 경력은 20053월말로 만 1. 필자는 현장 경험과 관련 서적 연구를 거쳐 직접 만든 '블로그 10계명'(http://blog.joins.com/edwdkim/3816318) '블로그 예찬 10'(http://blog.joins.com/edwdkim/3838872)로 퍼뮤니케이션의 위력을 시험한 적이 있다. 만 하루가 지났을 때 놀랍게도 이 글들이 포털사이트들의 블로그와 미니홈피를 서로 넘나들며 자가증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른 사이트 블로그에서 내 글을 긁어,출처를 밝히지 않고 조인스 닷컴 블로그에 띄운 경우도 있었다. 블로거들은 같은 사이트에 있는 글의 경우 퍼가기(스크랩)기능을 활용한다. 하지만 다른 사이트로 넘어갈 때는 복사해 무단으로 긁어가거나 긁어간 다음 출처만 간단히 밝힌다. 그게 이종(異種)사이트의 블로그에선 '짜퉁'이 아닌 진짜 자기 것처럼 유통되기 일쑤다.

싸이월드 가입자는 20041천만 명을 넘어섰다. 싸이월드는 '일촌'관계를 바탕으로 자기 홈피를 꾸미는 게 기본이다. 언론사 블로그보다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성격을 보완하기 위해 싸이월드는 200410월 페이퍼와 페이퍼진을 열었다. 페이퍼는 블로그와 비슷하고, 페이퍼진은 카페(커뮤니티)와 블로그의 기능을 결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네이버 측은 가입자가 15백만 명에 달하고,이 가운데 5백만 명이 액티브 블로거(Active blogger)라고 밝힌 바 있다. 이밖에 엠파스,야후,다음 등 포털 블로그 가입자도 무척 많다. 이로 미뤄 중복 가입자가 상당히 많을 게 분명하다.

언론사 블로거들을 살펴보면 미니홈피나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와 함께 열어 놓은 경우가 많다. 은밀하고,아담하고, 폐쇄적인 미니홈피와 별도로 노출도가 높고 개방형인 블로그를 함께 개설해 놓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런 경우 링크 기능을 많이 활용한다. 자신을 찾는 친구, 친지 등을 미니홈피에서 블로그로 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유도하는 사례가 흔하다. 필자의 경우 다른 미니홈피,블로그에 링크를 걸어 중앙일보 블로그로 유도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김중태문화원(www.dal.co.kr) 원장 김중태씨는 미니홈피는 푸시(push)의 성격을, 블로그는 풀(pull)의 성격을 갖는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규정했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블로그는 끌어당기는 힘이 강하다 

블로그를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언론사 사이트는 조인스 닷컴이라고 할 수 있다.2004330일 조인스 닷컴은 중앙일보 기자 전원을 전면에 내세워 언론사 블로그의 새 역사를 열었다.그 때까지 블로그를 운영해온 포털 사이트들은 탤런트·영화배우·가수 등 인기인들을 미끼로 손님을 끌었다. 조인스 닷컴은 당초 블로그 전문업체인 인티즌 마이미디어와 제휴해 블로그를 개설했다. 이 제휴선에는 경향신문(미디어칸디지털타임스도 동참했다. 하지만 조인스 닷컴 블로그는 곧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어 조선일보&조선 닷컴이 20048월 초 '블로그가 대세다'를 케이프레이스로 내걸고 언론사 블로그 대열에 동참했다. 조선은 특히 신문 지면의 기자 바이라인에 e메일 대신 블로그 주소를 실었다. 국내 첫 사례로, 매우 파격적인 발상이었다.

  주요 언론사가 '1인 미디어'라는 블로그의 현장에 신문기자들을 대거 등장시킨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 목적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을 겨냥한 것일 수도 있고,추락하는 신문의 가정구독률(20052월 현재 41%)을 올리려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목적이 어디에 있건 주요 신문사가 블로그를 출범시키고 기자들에게 블로깅을 독려한 것은,최소한 블로그가 '()저널리즘'의 영역에 진입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현실 언론으로서 기자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의 공익성과 책임문제는 저널리즘의 한 축에 자리하면서 중요한 테마가 돼 가고 있다. 필자는 업무 상 블로그의 활성화에 직간접으로 관여하면서 그것을 절실히 느꼈다. 초창기의 일이다. 한 유명인사의 재판정 입,퇴정과 관련한 뉴스가 보도됐을 때한 기자가 쓴 블로그에 올린 글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험악한 내용의 덧글이숱하게 많이 올라왔다. 그 기자의 글을 중앙일보의 입장으로 오인한 사람들의 항변이었다. 내부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서둘러 모종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일보 블로그의 '기자 블로그'페이지(http://blog.joins.com/center/journallist.asp) 하단에 있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그 조치의 하나다. "블로그는 1인 미디어입니다. 따라서 글 내용이 회사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걸로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한 인기가수를 평한 기자의 블로그 글을 놓고 관련자들과 팬들의 항의 덧글이 엄청나게 많이 올라왔다. 또 한 편집기자가 전문적 시각에서 나름대로 '조중동의 편집 비교론'을 잇따라 썼다가 안팎에서 적지 않은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해당 블로거와 언론사를 싸잡아 불화살을 쏘는 게 일반적이다. 필자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동료에게서 추천받은 책을 읽은 뒤 후기를 블로그에 올렸는데, 그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출판사와 짜고 그런 것 아니냐는 덧글에서부터 그 책의 주인공과 신문사의 관계를 들어 비난을 쏟아 붓는 덧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혼비백산해 그 글을 서둘러 내렸다. 차마 입에 담기도 겁나는 욕설을 동반한 악성 리플달기는 익명의 그늘에 숨어 자행하는 행위다.

  어디 이 것뿐인가. 조선일보의 한 기자가 아나운서와 관련된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가 낭패를 보았다. 그는 '블로그=1인 미디어'라는 등식을 철석같이 믿고 그 글을 썼을 것 아닌가. 20053월 초에는 조선일보의 한 기자가 '대통령 부부의 눈꺼풀 수술비'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이에 대해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고 독기를 품은 덧글도 적지 않았다. 한 일반 블로거는 "이런 것을 글이라고 써놓는 기자나, 이런 글이 중요하다며 대문에 걸어놓는 신문사나 한심하기는 똑같다"라는 가시 돋친 덧글을 올렸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언론사나 기자가 아무리 '블로그는 1인 미디어'라고 목청을 높여도 안팎, 특히 외부의 고정관념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기자가 개인적으로 올린 블로그 글 내용을 소속 회사의 의견 및 입장과 동일시한다. 기자 블로그에는 신문에 실린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이 뒤섞여 있다.지면에서 볼 수 없는 블로그 글의 편집권은 주인 기자에게 있다. 그런데도 이게 먹히지 않는다. '검열 받지 않은 글은 항상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기자 블로그는 전문성 차원에서 공격받기도 한다. 스포츠,음악,미술 등 특정 분야의 매니아들과 전문가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고,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언론사 기자 블로그를 유심히 살펴보자. 일부 기자들은 신문을 '업무'영역에, 블로그를 '개인 배설' 영역에 각각 놓고 본다. 이 그룹에 속한 기자들은 신문에 못다 쓴 이야기를 가공,생산할 의향을 갖고 있다. 반면 블로그를 배척하거나 백안시하는 기자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본업의 카테고리를 여간해선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신문만 잘 만들면 되지,무슨..'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당연히 블로그 때문에 골치아픈 일이 생기거나 논란의 대상이 되길 꺼린다. 특히 블로그에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올렸다가 '전문성이 있네, 없네' 식의 구설에 오를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도 전문 분야나 쟁점 분야를 다루는 취재기자들에겐 시간 여유가 없고, 본업에서 파생되는 스트레스도 여간 아니다.그러다 보니 유연한 글이 기자 블로그에 많이 뜰 수밖에 없다. 이 글들은 '잡문,잡사'라는 비판을 일각에서 받기도 한다. 하지만 망각해선 안될 게 있다. 우리나라의 일반 블로거들 가운데 상당수는 골치 아픈 문제보다는 부드러움(softness),재미(fun),즐거움(joy)을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언론사 사이트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기자들은 익명과, 거기서 배태되는 공격성· 상스러움을 싫어한다. 이른바 '눈팅족'을 자처하며 덧글을 함부로 쓰고 빠지는 네티즌들로 인해 마음이 상하는 걸 피하고 싶어 한다. 이런 이유로 사상이나 의견이 강하게 표출되는 글을 꺼리는 기자들이 적지 않다. 익명의 눈팅족들이 쏘아대는 불화살을 막는 방화벽(firewall)시스템도 있다. 조인스 닷컴의 경우 관리메뉴로 들어가면 각 '폴더 보기'를 어느 선까지 허용할 것인지 블로거 본인이 선택하도록 돼 있다.모든 방문객에 허용,(블로그에서 등록한)친구에게만 허용, 비공개 등 세 가지 중 하나를 골라 적용하면 된다. '덧글 쓰기'도 모든 방문객에게 허용,블로그 회원에게만 허용,비허용 중에서 선택할 수 있게 돼 있다. '사진 정보'도 보이거나 숨길 수 있다. 각각의 폴더에 이런 선택권을 블로그 주인에게 제공하고 있다. 주인은 더 무서운 조치도 취할 수 있다. 특정 블로거가 아예 블로그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문 사절 목록'에 올리면 된다 

조선 닷컴의 경우엔 로그인을 하지 않으면 덧글을 아예 달 수 없게 방화벽을 쳐놓았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로그인을 한 사람도 '1인 미디어'의 주인에게 눈엣가시로 보여 '이웃차단 목록 설정'란에 ID가 오를 경우 그 블로그를 볼 수 없다. 두 블로그 기능 중 어느 게 좋은지는 블로거들이 판단할 몫이다 

방화벽 시스템이 있다고 해서 블로그를 살벌한 미디어로 여긴다면 큰 오산이다. 거기엔 뜨거운 관심과 사랑, 훈훈한 인정이 살아 숨쉬고 있다. 조인스 블로그에선 오프라인 모임(일명 벙개,'번개'의 변형),이벤트,선물 주고 받기 등 흐뭇한 정경이 벌어지고 있다. 조인스 블로그에서 인기도와 방문객 두 가지 모두 1위를 달리고 있는 기자 블로거 '빈섬'(http://blog.joins.com/isomkiss)은 문학을 좋아하고 자신의 블로그를 찾는 일반 블로그들과 수차에 걸쳐 모임을 갖고 정을 나누고 있다. 모임의 후기가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속속 뜨고 있다. 빈섬과 필자 파우스트는 퀴즈 등 이벤트를 종종 벌인다. 상품으로는 문화상품권이나 책을 내건다.

일반 블로거 '보헤미안 토'(http://blog.joins.com/meisterts)은 파우스트의 이벤트에도 당첨된 바 있는 블로거다. 그녀는 밸런타인 데이 때 초컬릿과 모자·향수 등 선물을 택배로 파우스트에게 보내 조인스 블로그에서 화제를 뿌렸다. 클럽이나 카페처럼 운영자와 회원 간의 상하관계가 없는 블로그에서 나름의 독특한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문기자들이 국내에서처럼 블로깅을 권장, 권유 또는 독려 받고 블로그를 대거 운영하는 사례는 외국에선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일반 블로거들이 언론사를 압박하고 있다. 그들이 주로 활약하는 분야는 정치,군사 등과 각 전문분야다. 재미 저술가인 조화유씨는 일반 블로거들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200513일 언론사 블로그에 띄운 '파자마 군단(Pajama Brigade) 블로그 파워'라는 제목의 글에서 "미국의 신문,방송,시사주간지 등에 종사하는 주류 언론인들은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블로거들과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4년 온라인 영어사전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였고 지금도 7초에 하나씩 생겨나고 있는 게 블로그"라고 전했다. "자기 집안에서 잠옷 바람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블로거들을 주류 언론은 '파자마 군단'이라고 부른다. 블로거들의 인터넷 상 활동무대를 블로그스피어(blogsphere)라고 한다"고 썼다. 일반 블로거와 주류언론 기자의 대치 상황을 충분히 연상케 하는 글이다. '파자마 군단'은 뉴스의 생산자이자 파괴자다. 사회 감시역(watch dog)을 자처하는 주류 언론인들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본다.

국내에 보도된 것처럼 일반 블로거들은 저널리스트들을 무섭게 압박해오고 있다. 세계적인 방송사 CNN의 뉴스본부장 이슨 조던,CBS의 간판 앵커 댄 래더 같은 거물 언론인이 파자마를 입고 자판을 두드리는 일반 블로거 때문에 옷을 벗었다. 이슨 조던은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에서 "이라크에서 미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언론인 가운데 일부가 표적 살해됐다고 믿는다"는 말을 했다. 이를 지켜본 30대 블로거 로니 아보비츠(미국 의료 기술업체 사장)는 포럼의 공식 블로그에 '미군은 이라크에서 언론인들을 겨냥했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결국 조던을 사임케 했다. 또 댄 래더는 지난해 9월 대선 때 부시 대통령의 주방위군 복무 시절 특혜의혹을 들고 나왔으나, 부시의 상관이 남긴 메모를 작성했다는 타자기가 허위라는 블로거들의 글로 인해 은퇴해야 했다 

한국언론재단이 발행하는 월간지 'Media World Wide ' 20048월호에는 '블로거들의 침공은 이미 시작됐다'제하의 글이 실렸다. 미디어오늘 백병규 객원논설위원이 편역한 이 글의 필자는 온라인 저널리즘 리뷰(OJR) 2004526일자에 소개된, 기술혁신 전문 칼럼니스트 마크 그래서. 그는 패트릭 프레이라는 블로거의 말을 인용해 블로그의 영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LA타임스와 같은 주요 일간지에 필적할만한 영향력을 가진 블로거는 없다. 사실은 비교평가의 기준도 없다. 유명한 블로거 사이트의 글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읽는지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그러나 블로거 한 사람이 아니라, 블로거들의 '집단'으로 보았을 때 그들의 가능성은 가히 '혁명적'이다.(후략)"

한편 뉴욕 타임스 인터넷판은 200537, 미국 백악관이 가렛 그라프(23)라는 블로거에게 출입기자증을 발급하고, 일일 브리핑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언론 사상 처음이다. 이 블로거는 언론인을 위한 웹 사이트인 미디어 비스트로 닷컴에서 운영하는 피시볼 DC 블로그편집인 자격으로 출입증을 땄다. USA 투데이와 CNN 기자들과 백악관 출입기자단장은 그라프가 출입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블로그 통계의 경우 우리나라에선 사정이 좀 다르다. 조인스 닷컴의 블로그 시스템에선 하루에 몇 명이 방문했는지 알 수 있다. 조선 닷컴 블로그의 경우 특정 글(포스트)을 읽은 사람의 숫자까지는 알 수 없게 돼 있다. 이 때문에 일부 블로거가 특정 글을 몇 명이 읽었는지 알 수 있게 해달라고 운영자에게 올린 청원 덧글을 최근 본 적이 있다. 조인스 닷컴의 경우엔 블로그 방문객 숫자는 물론, 개별 글을 클릭한 숫자도 알 수 있다. 그 숫자에는 블로그 주인의 클릭 수가 포함돼 있으나, 실제 블로그 방문객 숫자와 특정 글을 읽은 사람의 숫자를 거의 정확히 알 수 있다.굳이 알고 싶지 않으면 '폴더 타입' 세 가지(방명록,섬네일,게시판) 중에서 방명록으로 설정하면 된다. 기자 블로거나 일반 블로거나 마찬가지다.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도 이와 비슷하다. 어쨌든 블로그 방문객 숫자를 알 수 있으니,국내 블로거들의 영향력을 국내에선 웬만큼 가늠할 수 있다 

뉴미디어 시대의 기술에서 비롯된 퍼뮤니케이션 기능과 링크 기능을 통해 블로거들은 큰 힘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 전통적인 언론사들이 이들을 무시했다간 큰 코 다친다. '연예인 X파일'등의 사례에서 보듯, 그들은 정보를 삽시간에 유통시킨다. 때론 언론에 도움을 주지만,때론 언론에 큰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이런 판국에 어찌 일반 블로거들의 힘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이제 저널리스트들이 시대 상황에 신속히 적응하고 '미디어 빅뱅'도전에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때가 됐다. '블로그=1인 미디어'에 입각해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자신의 일기를 쓰고, 자료를 축적하는 정도로는 어림없다. '파자마 블로그 군단'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글(기사)의 정확도를 더 높이고, 개인의 전문성을 더 쌓아야 한다. 오프라인을 기본으로 하되, 온라인에서도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 외에 갖고 있는 마니아적 기질도 충분히 살려 '파자마 블로그 군단'과 호흡을 같이 해야 한다.특히 언론사에서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중견 언론인들은 블로그를 무시하거나 겁내선 안된다. 도토리가 무엇이고 전자화폐가 실제로 어떻게 유통되는지 알고 느껴야 하며, 인터넷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사진과 동영상을 컴퓨터 하드웨어에 저장했다가 쉽게 블로그에 끌어다 쓸 정도의 기본 지식은 갖춰야 한다. 특히 블로그의 묘미를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정 수준의 '자기 검열'을 할 필요가 있다. 기자 블로그의 성패는 유연성(재미,즐거움 포함)과 전문성 확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신문에 실리는 기사 외에 취재 뒷 이야기와 특정 전문분야에 관한 글의 양을 늘리고 질을 높여 나가야 한다 

이 미디어 빅뱅시대, 블로그의 시대에 우리의 자세는 무엇일까 곰곰 생각해 본다. '몸소(in the flesh)'가 아닐까. 백견(百見)이 불여일행(不如一行)!

 

Posted by A&Z

어떤 나라 임금님의 외동딸이 중병에 걸렸다.

임금님은 포고령을 내려 "내 딸의 병을 고친 사람에게 딸을 주고, 왕위도 물려주겠다"고 선언했다.

먼 나라에 사는 3형제가 공주의 병을 구하러 나섰다.

 

 

 

첫째 아들이 요술 망원경으로 공주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다.

둘째 아들이 가진 요술 융단을 타고 세 사람이 날아왔다.

셋째 아들이 가진 만병통치 요술 사과를 먹여 공주를 살려냈다.

임금님은 이 세 사람 가운데 누구를 사위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어야 하나?

답은 셋째다. 그 이유는?

  

 

Posted by A&Z
리뷰 메모/재미2016.10.20 19:48

매년 눈길을 끄는 핼러윈 복장이 상당수 등장한다. 핼러윈 복장은  ‘조커같든 것이든 켄 본’ (미국 대선 2TV토론에 참석해 각광받은 배 나온 아저씨) 같은 것이든 상관없다누군가를 흉내 낸 복장으로 핼러윈 파티에 가는 것 자체가 좋은 기회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느낌을 주고 싶다면, 얼간이(dick) 같은 복장도 좋다. 그건 대통령 후보 같은 복장을 뜻하는 게 아니라, 실제의 페니스(dick)를 본뜬 마스크 복장을 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마스크 비즈(Mask Biz)사가 제작한 얼굴을 모두 덮는 마스크(gross mask) 덕분이다. 

 

이 마스크에는 눈 구멍이 있어서 얼간이처럼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을 것이다. 이 마스크는  대화를 풀어가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값은 24달러 99센트(28천원). 핼러윈 이후에도 쓸모가 많을 것이니 미래에 대한 투자로 봐도 무방하다.

 

카페에 가서 거품이 없고 카페인이 약간 들어간 카푸치노를 주문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카풀 전용차선(carpool lane)에서 홀로 차를 몰고 달리는 것을 상상해 보라! 페이스북에서 별 볼 일 없는 장난 글을 퍼나르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럴 때마다 미안해요. 전 얼간이에요라고 당차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아름답고 깜짝 놀랄 수도 있는 여성 질 모양의 마스크도 있다. 이 마스크는 샌디에이고에서 활약하고 있는 공예작가 멜리사 코울터가 정성들여 만든 것이다. 그녀는 이 실리콘 마스크가 BDSM(구속·훈육, 지배·복종, 가학·피학 등 성적 활동)용으로 완전한 기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페니스의 경우처럼 웃음을 자아내지는 않겠지만, 이것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인상적인 느낌을 줄 것이다. 값은 520달러(583천원).

 

이런 핼러윈 복장으로 파티에 간다면 다른 사람과 똑같은 복장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는 미국 라이프스타일 웹사이트에 실린 더스틴 넬슨 기자의 칼럼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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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

<수퍼 시니어 10계명>

1.직(職)이 끝났다고 업(業)까지 끝난 것 아니다.

- 직장과 조직에서 밀려나도 좌절하고 낙담만 해선 안된다. 타이틀이 없어져도 업(業)은 살아 있다. 독일어 단어 Beruf(베루프)의 뜻 그대로 천직이다.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2. 발 밑을 우선 살피라

-조고각하(照顧脚下). 발 밑을 우선 살피라는 불가(佛家)의 용어. 제2인생 출구전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무지개의 환상을 좇는 대신, 당신의 발 밑을 조금 더 파봐라. 그 밑에 보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3.Up 업(業)

-지식,네트워크,기술의 무형자산을 시장이 원하는 유형자산 형태로 갈고 닦아 업그레이드 시켜놓자. 

킬러콘텐트가 없으면 1년도 버티지 못한다.

4.나팔

-나팔은 '나를 팔아라'의 준말. 요즘은 자기 마케팅의 시대.나무 밑에서 열매 떨어지길 마냥 기다리는 자에게 미래는 없다. 

5.플랜B

-플랜B, 즉 차선책을 준배해 두라는 말이다. 2막인생 줄곧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갑질 계속하면 갑갑해 진다. 

6.리셋

-컴퓨터가 망가지면 새로 프로그램 깔듯이 2막인생 앞두고 인간관계를 리셋해 볼 필요가 있다. 전화번호 많다고 절대 자랑할 일 아니다. 

7.명함은 잊어라!

- '아무리 나쁜 직업이라도 무직보다는 낫다'(A bad job is better than no job)는 명언, 놀아보면 실감할 것이다. 2막인생에 가장 큰 걸림돌은 타이틀 집착과 허세다. 

8.평생학습 

-아날로그시대는 연장자가 유리했지만, 디지털시대는 정반대다. 가르치려 들지 말고 먼저 배우자. 나이가 젊다해도 학습을 멈춘다면 그 사람이 '꼰대'다. 

9.유머와 친구 

-너무 진지하고 매사 불만인 사람보다 활력 있고 유머 넘치는 사람이 필요한 시기다.유머가 있어야 인생엔진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10.오늘이 선물이다.

-불만 없는 직장 없고 문제 없는 가정 없다. 인생에 고민 없는 시절이 있었던가.먹구름 몰려와 잠시 쉬게 된다면 시원한 스콜이라고 생각하자.하늘은 다시 맑아질 것이다.  (손관승에게서 배우는 지혜)

  

  

Posted by A&Z
꼬부랑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공원 산책길을 걸어간다. 그래도 그 정도의 부자유스러움은 약과다.

더 힘든 삶을, 죽지못해 꾸려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럴 바엔 차라리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 하고 싶은 것 맘대로 하다 암이나 심장마비로 일찍 삶을 마감하는 게 훨씬 더행복한 것 아닌가?
금욕적 다이어트 4개월 째에 문득 든 생각이다.

Posted by A&Z

베트남에서 큰 아들이 일시 귀국했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운영하는 글로벌YBM 과정(국내 1개월 포함 총 10개월 반 과정)을 무난히 마치고 수료(2016년 6월12일) 1개월 전, 취업에 성공했다. 미국 회사에 옷을 공급하는 의류벤더가 직장이다.

YBM과정의 교육훈련은 혹독한 것 같다. 하노이문화대학교 기숙사에서 단체생활한다. 매일 오전5시30분 기상, 구보로 하루를 시작한다. 외출은 주말에만 허용된다. 베트남어를 집중교육하며, 비즈니스 영어등을 교육한다.(이에 앞서 국내 과정 1개월 합숙교육 땐 무역실무,경영실무 등 MBA과정을 연상케 하는 커리큘럼을 운영한다. )

글로벌YBM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회장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지난 연말 연세대 상경경영대학 동문회 때 참석한 김우중회장님.사모님과 우리 마누하님이 함께 찍은 사진을 하노이 큰아들에게 카톡 전송해 줬더니 꽤 좋아했던 게 기억난다.

큰아들도 국내에서 일하고 싶겠지만, 사실상의 청년 실업자가 200만 명이 넘는 심각한 현실을 감안해 해외취업을 결심했을 것이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학습으로 강행군하는 '제2의 군복무'  베트남 YBM과정을 잘 견딘 아들이 대견스럽다.

수습 6개월 후 정규직이 되며, 해외주재원 대우(해외근무수당,결혼 시 주택제공 등 각종 지원)를 해준다고 한다. 부지런히 돈을 모아 김우중회장이 기획한 국제청년실업가로 힘차게 성장하길 바란다.

Posted by A&Z
늦깎이 군인인 둘째아들이 오늘 아침 육군 20사단에서 전역했다.
가수지망생으로 부모 속 깨나 썩인 둘째는 기획사 '플래닛905'의 연습생(보컬)으로 맹훈련을 받았으나,데뷔 직전 소속사가 망하는 바람에 기회를 잃고 긴 세월 방황했다. 주변에 보면 아들이나 딸이 연예인 지망이어서 속을 끓이는 사례가 참 많다. 동병상련이다.

사라진 기획사 '플래닛905'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출연한 김 준의 소속사였다. 둘째아들과 그 멤버들은 그 회사의 두 번 째 작품으로 기획됐으나, 자금난 등으로 물거품이 됐다.

둘째는 군 복무 중에 장기자랑에서 노래와 춤, 사물놀이 등 예능끼를 잘 발산한 덕에 휴가를 밥 먹듯 나왔다. 우리 부부가 "기네스북에 오를 최다휴가 장병"이라고 놀려대곤 했다.

몇 년 전, 둘째 때문에 겪은 숱한 애환을 조인스 블로그에 시리즈로 올린 적이 있다. 둘째는 술집에서 철야근무 알바를 해서 받은 돈으로  아빠가 좋아하는 명품 만년필.볼펜 세트를 생일선물로 사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피를 판 돈으로 마련한 선물이었다. 엄마 생일 땐 가락시장에서 장을 보아 미역국을 맛있게 끓여주었다. 

둘째 아들은 군대 전역해 무사귀환하고, 큰 아들은 베트남에서 일시 귀국해 5말.6초가 우리 부부에겐 잊히지 않는 큰 추억거리가 될 것 같다. 앞으로 어찌 될 지 걱정이 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둘째아들도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가길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Posted by A&Z
약 2년 전에 금이빨 몇 개(아마도 4개?)를 9만 여원에 팔았던 것 같다. 성남시 대원사거리에 있는 금은방(금화당)에서다. 당시 어머니댁 근처 수유역의 금이빨 거래점에서 6만원 정도 준다고 했다. 하지만 미심쩍어 검색으로 성남 금은방(금화당)을 찾아냈다. 그 덕분에 거금을 손에 쥐고 '대박'기분에 젖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최근 짐 정리하다 발견한 금이빨 2개를 같은 금은방에서 3만6천원에 팔았다. 일전의 그 사장님이 영업 중이었다. 금이빨 중 한 개에 불순물이 많아 그것만 녹인 뒤 무게를 쟀다. 어느 치과에서 한 금이빨인지는 모르겠지만 양심불량 치과에 다닌 적이 있는 게 분명하다. 어쨌든, 이번엔 '횡재'한  기분이다. 최저임금(6,030원)으로 6시간 알바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뜻밖에 얻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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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링크 추가>  http://news.donga.com/NewsStand/3/all/20160904/80120504/1

 

Posted by A&Z

 

 

 

곽재원 박사(한양대 석좌교수)는 내 삶에서 매우 중요한 분이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의 고비 고비에서 적지않은 영향을 줬을 뿐만아니라, 평소 적극적인 태도로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곤 한다. 요즘도 이런 저런 좋은 말을 '모셔온 글'이라는 멘트와 함께 페이스북에 올려 삶의 용기를 주신다. 말하자면 이 분은 내 인생의 멘토라 할 수 있겠다.  2014년 계획의 원동력을 이 분의 다음 글로부터 끌어올려 본다.  

 

다음은 그의 페이스북에서 끌어온 글.

 

 

<어느 95세 어르신의 수기>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 결과 나는 주변에서 실력을 인정 받았고 존경을 받았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다.
그 후 10년을 아무 할일 없이 보내면서 75세 생일을 맞았으며
그런 내가 또 다시 10년이 흐른 후인 85세 생일을 맞았고
또 다시10년 후인 95세 생일을 맞으면서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즐기자."
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덧없고 아무런 희망이 없는 삶,
가끔 골프나 치면서…
그런 삶을 30년이나 그렇게 보내 버렸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이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허송 세월을 보낸 것이었다.
너무나 잘못된 판단이었던 것이다.
.......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 째 생일 날!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남은 내 인생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모셔온 글
오늘은 앞으로 남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날입니다!


 

 
Posted by A&Z
TAG 곽재원

<어느 회사의 사훈>
심오한 한자의 세계!!!

 

 

 

 

 


 
어느 회사에서
임직원들에게 사훈을 공모했다.

 

여러 공모작 가운데 직원 투표로 일등을 차지한 것은......

 

▶日職集愛 可高拾多
(일직집애 가고십다)
☞한자뜻 풀이
[하루 업무에 애정을 모아야
 능률도 오르고 얻는 것도 많다]

 

그랬더니  경영자 측에서 다른 의견을 냈다.

 

▶溢職加書 母何始愷
(일직가서 모하시개)
☞한자뜻 풀이
[일과 서류가 넘치는데
 애들 엄마가 좋아 하겠는가]

 

그래도 직원들이 굽히지 않자, 결국 사훈을 이렇게 정했다.

 

▶河己失音 官頭登可
(하기실음 관두등가)
☞한자뜻 풀이
[물 흐르듯 아무 소리 없이 열심히
 일하면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사훈을 이렇게 정하니  사원들이 다음과 같이 댓글을 달았다.

 

▶鹽昞下內(염병하내 )
세상의 소금이며 빛과 같은
 존재이지만 늘 자신을 낮춘다.

 

 

 

Posted by A&Z

 

 

1952년 에드먼드 힐러리는 세계 최고봉인 8,700미터 높이의 에베레스트 정복에 도전했다. 그런데 도전에 실패하고 나서 얼마 뒤 그는 영국의 어떤 모임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연단 앞으로 걸어 나간 힐러리는 주먹을 들고, 벽에 걸린 에베레스트 사진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에베레스트여, 처음엔 네가 날 이겼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내가 널 이기겠다.
왜냐하면 넌 이미 성장을 멈췄지만
 난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한 해 뒤인 5월 29일,  힐러리는 에베레스트 최초 동반자로 역사 속에 기록되었다.

Posted by A&Z

나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감사할 일을
 미리 먼저 마음속에 그려보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
책을 읽는 시간,
맛있는 음식,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
다정한 친구들을 생각했다.

그 효과는 대단했다.
그것은 행복과 건강을 가져다 주었다.

 

 


- 데일 카네기, "인생은 행동이다" 중에서-

Posted by A&Z

 

 

 

어리석은 개미는
 자신의 몸이 작아
 사슴처럼 빨리 달릴 수
 없음을 한탄하고

 똑똑한 개미는
 자신의 몸이 작아
 사슴의 몸에 붙어
 달릴 수 있음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단점을 들여다보며
 슬퍼하고

 똑똑한 사람은
 자신의 장점을 찾아내어
 세계에서 Only one으로 만들어 나간다.

Posted by A&Z

그는 자기가 소유한 식당 및 숙박업을 몇 년 동안 경영해 오다, 약 20만 달러의 돈을 받고 사업을 넘길 것을 제의 받았으나 아직 은퇴할 생각은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2년 후, 주 정부에서 그의 사업장을 우회하는 새로운 간선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그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는 65세에 완전히 파산을 하게 되었고, 사회 보장 제도로 나오는 적은 액수의 금액 이외에는 수입도 없었습니다. 다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늙어 버렸으니 술을 마시며 신세를 한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작별 키스를 한후, 자신의 아이디어를 팔기 위해 고물 차에 실은 압력 조리기와 자기만의 특별한 조리법을 가지고 길을 떠났습니다. 힘든 길이었습니다. 호텔에서 잘 돈이 없어서 차 안에서 자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만나는 모든 식당은 그의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1009번 거절 당한 후에야 그의 꿈을 믿어 주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후 그는 식당을 열었고, 그 식당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이 식당은 이 지역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현재 전 세계 수천 개의 지점을 가지고 있는 회사로 성장한 KFC매장 앞에 푸근한 미소로 손님을 반기는 바로 그 할아버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을 세운 전설적인 인물인 '커넬 샌더스'입니다.
- 새로운 도전은 아름답습니다 -

 

 

Posted by A&Z
리뷰 메모/재미2013.04.30 00:40

서울대 중문과 허성도 교수의 강연 내용 가운데 일부랍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인데, 재미 있어서  블로그에 원형대로 공유합니다.  





◈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 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 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놨습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 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 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핵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고 물어볼 것이고, 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약진입니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 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 이순지가 이것을??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 여기서부턴 수학에 관한 내용인데, 관심있는분만 읽어보셔요 ------------------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 홍대용이 조선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구체의 체적이 6만 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도 42분 51초, 다시 말씀 드리면 sin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몇 자리까지 있나 보려고 제가 타자로 다 쳐봤습니다. 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 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眞線에 있다.
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 이때는 子午線이라고 안하고 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線上에 있다. 甲地는 北極出地, 北極出地는 緯度라는 뜻입니다. 甲地는 緯度 37도에 있고 乙地는 緯度 36도 30분에 있다. 甲地에서 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鼓?)가 12번 울리고 종료(鍾鬧)가 125번 울렸다. 이때 지구 1도의 里數와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하라. 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鼓? )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
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 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
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기록할 記자, 리는 백리 2백리 하는 里자, 里數를 기록하는, 고는 북 鼓자, 북을 매단 수레 車, 수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중국의 동진시대에 나온 수레입니다.
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 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
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여기 고뢰, 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어서 딱 10리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 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 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
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수학적 사실

○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불국사 가보시면 건물 멋있잖아요. 석굴암도 멋있잖아요. 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선생님을 너무 너무 존경합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에스파냐, 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 ‘삼국사기’를 보면 682년,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 관리를 길러야 되니까 논어, 맹자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김부식 선생님은 어떻게 써놓았냐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명산과입니다. 밝을 明자, 계산할 算자, 科. 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
수학과를 세웠습니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 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 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 찾아보십시오.
이것을 산관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가르쳤느냐가 제일 중요하겠지요?
정말 제가 존경하는 김부식 선생님은 여기다가 그 당시 책 이름을 쫙 써놨어요. 삼개(三開), 철경(綴經), 구장산술(九章算術), 육장산술(六章算術)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
구장산술은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최소한도 진나라 때 나왔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좋은 책이면 무조건 다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방정이 영어로는 equation입니다.
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 몸에 소름이쫙 돋았습니다. 저는 사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 방정이라는 말이 뭘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소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쓴 것을 저는 외국수학인 줄 알고 배운 것입니다.

○ 9 장을 보면 9장의 이름은 구고(勾股)입니다. 갈고리 勾자, 허벅다리 股자입니다.
맨 마지막 chapter입니다. 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릅니다. 여기에 구고(勾股)정리라고 그래도 나옵니다. 자기네 선조들이 구고(勾股)정리라고 했으니까.

여러분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
24문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당히 힘들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삼국시대에 이미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 마이너스, 정사각형 넓이, 원의 넓이, 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외국수학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강력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 학교 책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늦어도 682년 삼국시대에는 플러스를 바를 正자 정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 부담하는 부(負)라고 불렀다.
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 또 π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 
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이다, 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
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시간에도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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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발행하는 '신문과 방송' 2013년 4월호. 


오랜 만에 원고 청탁을 받아 썼다. 

신문,방송사 퇴직자 재활용 또는 활용 문제를 생각해 봤다. 

정년 60세 관련 법안이 며칠 사이 관심을 끌고 있다. 

어느 직종이나 퇴직 후 삶이 걱정이다. 



[언론현장] 언론도 실버 시대 경험과 지혜를 겸비한 선배가 돌아온다

신문과 방송 2013/04/23 09:33
신문 · 방송 분야 퇴직자의 
제작 참여 사례


신문과 방송 퇴직자들도 다른 대부분 직업인과 마찬가지로 청춘을 바쳐 일한 직장을 떠나는 순간 ‘찬바람이 쌩쌩 부는 허허벌판’에 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론사 퇴직자의 활용 또는 재활용 사례를 전·현직이 함께 살펴보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뜻 깊은 일이다. 

퇴직자 활용 사례는 방송 부문에선 KTV(한국정책방송원, 원장 김관상)의 ‘늘푸른기자단’ 운영을 중심으로, 신문 부문에선 중앙일보의 ‘홈커밍 리포트팀’ 운영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후자는 필자가 중앙일보 행정국장 시절에 시행됐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사회에 발언하고 봉사할 기회 될 것”

KTV의 늘푸른기자단은 방송기자와 일반인으로 구성돼 있는 데 비해, 중앙일보의 홈커밍 리포트팀은 전원이 중앙일보 기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 전자는 정부 예산으로 운영하느라 지원 폭이 좁은 데 비해, 후자는 기획 및 보도 기간 동안 신문사 중견기자가 받는 수준의 보수를 받았다.

늘푸른기자단의 경우 아직 보상이 충분치는 않으나 공공기관인 한국정책방송원이 방송 퇴직자들을 활용한 첫 사례인 만큼, 앞으로 이 같은 프로그램이 어떻게 확대 및 발전해 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KTV는 지난해 10월 26일 늘푸른기자단 발대식을 했다. 이 기자단에는 34명이 참가했다. 이후 기획 등 준비를 거쳐 11월 5일 오전 7시 30분에 첫 ‘시니어 리포트’가 방송됐다.

KTV의 ‘열린 소통 시리즈’ 제2탄(제1탄은 ‘캠퍼스 리포트’)에 해당하는 ‘시니어 리포트’의 첫회 주제는 ‘우리도 일할 수 있어요’(보도 : 나윤옥 시니어 기자)였다. 

앵커는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뉴스를 심층적으로 다루게 될 시니어 기자들의 활약상을 기대해 달라”라고 말했다.

첫 번째 보도는 노인 일자리와 관련된 소식으로, 경기도 구리시 여성노인회관에서 열리고 있던 ‘중장년층 채용박람회’ 현장을 소개했다. 

시니어 기자는 “노후생활이 비참한 나라는 결코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아니라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납니다”라는 멘트로 보도를 마무리했다.

늘푸른기자단에는 박대석(66세) 전 KBS 기자 등 방송기자와 카메라기자 출신이 상당수 있고, 방송에 관심이 많은 비방송인 출신도 있다. 신문기자나 증권회사 임원 출신도 있다. 

이들은 보도 기획에서부터 촬영, 편집 및 보도를 맡고 있으며, KTV 측은 이들에게 월 1건 이상을 보도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늘푸른기자단을 관리하는 KTV 방송보도과 김현근 기자는 “리포트 1건당 20만 원밖에 지급하지 못하는데도 시니어 기자들이 뜻밖에 매우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늘푸른기자단 프로그램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김현근 기자의 말이다. “언론인 엄효섭 씨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방송기자클럽(BJC)의 제안으로 시작이 됐습니다. 만 55세 이상으로 방송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분에게 취재와 촬영 등을 직접 하는 시민 기자단으로 활동하는 기회를 주자는 게 취지였죠.”


방송기자클럽과 KTV 업무협약으로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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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V의 ‘늘푸른기자단’이 2012년 10월 20일 발대식을 가졌다.(위) KTV 스튜디오를 견학하는 늘푸른기자단.(아래))


이 프로그램의 기획서에는 ‘해마다 고령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까지 맞물려 은퇴 빈곤층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KTV는 제2의 일자리를 찾는 노년의 삶에 일조하고, 현역 시절 축적한 다양한 경험과 지식, 지혜를 활용해 사회를 향한 발언과 봉사의 장을 마련하고자 늘푸른기자단을 기획했다’라고 돼 있다.

이에 따라 KTV는 한국방송기자클럽과 업무제휴 협약을 맺었다. 방송기자클럽은 경험이 풍부한 전직 방송 언론인을 중심으로 이뤄진 늘푸른기자단의 방송 활동을 지원키로 했다. 

또 비방송인 출신의 실버기자도 선발해 교육으로 실무 능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KTV 김관상 한국정책방송원장과 엄효섭 한국방송기자클럽 회장이 체결한 협약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BJC는 네트워크를 활용해 늘푸른기자단 모집 등을 적극 홍보한다. △KTV는 선발 과정을 적극 지원한다. △BJC는 늘푸른기자단의 뉴스 제작을 지도 · 독려한다. △KTV는 기자단이 제작한 뉴스 아이템을 편성 · 방영하고, 소정의 사례비를 지급한다.

이 같은 토대 위에서 늘푸른기자단은 첫 방송된 지난해 11월 5일부터 올 3월 말까지 100건 이상의 리포트를 해냈다.
 
KBS 앵커로도 활약했던 박대석 전 KBS 기자는 지금까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을까 △생각하지 않는 민족은 망한다 △85세 이한우 화백 대작 완성 등 3개 주제로 리포팅했다.


신문의 퇴직자 참여는 중앙일보가 첫걸음

한편 중앙일보가 자사 기자 출신들을 객원기자로 임명하고 홈커밍의 형태로 기획보도 하게 한 것은 퇴직자 활용 사례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7 ~ 2010년 가동된 중앙일보의 홈커밍 리포트팀 프로그램은 특히 물질적 지원이 상당한 수준에 달해 퇴직자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리포트팀은 2007년 10월에는 제2의 인생을 개척하는 노년을, 2008년엔 은퇴자들을 활용하는 기업을 각각 취재해 중앙일보에 보도했다. 

기업 취재 땐 김재봉 씨가 일본 출장까지 갔으며, 중앙일보 도쿄특파원이 그와 동행해 도움을 줬다. 출장비는 중앙일보가 모두 실비로 충분히 지급했다.

중앙일보의 홈커밍 리포트에 줄곧 참가했던 곽태형(66세, 디지털사진학회 고문) 씨는 “홈커밍 리포트팀은 2009년부터 중앙일보 그룹의 온라인과 잡지를 대상으로 실버세대와 관련된 기획보도를 했다”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참가한 퇴직자들의 호응도 컸고 사회의 반향도 컸다. 곽태형 씨는 “중앙일보가 취재교통비는 실비로 처리해 주고, 원고료는 근무일수에 따라 계산해주었는데 급여가 400 ~ 500만 원에 달해 리포트팀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최고경영자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밥과 술을 산 사람도 매우 많아 실버세대로서 행복감에 젖곤 했다”라고 회상했다.

중앙일보 홈커밍 리포트팀은 실버 문제를 신문 · 잡지에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보도 내용을 보완하고 확충해 ‘Again 이제 다시 시작이다’라는 책(형성라이프, 232쪽, 1만 원)을 2008년 11월 펴내기도 했다.
 
곽태형 씨는 “이 책을 쓰기 전에 중앙일보와 협의했으며,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책의 원고료로도 1인당 70 ~ 80만 원 정도를 받은 것 같다”라고 밝혔다.


국가적, 사회적 관심과 배려 필요

‘Again 이제 다시 시작이다’에는 중앙일보 홈커밍 리포트팀의 경험과 연륜, 지식과 지혜가 녹아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노년을 열정으로 꾸려가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 15명이다. 

가수, 발명가, 사이버 외교관, 대형 할인점 사원, 평화 운동가, 밴드 단장, 헬스 트레이너, 결혼 이주여성 교사,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법정관리인, 법률 도우미, IT 강사 등이 그들이다. 

리포트팀은 그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 안에 잠자고 있던 특별한 힘을 발견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어려움을 뚫고 제2의 인생을 활기차게 살고 있음을 보여줬다. 

또 이 책에서 홈커밍 리포트팀은 ‘실버를 위한 Special 기업’으로 홈플러스, 대우조선해양, 기업은행, 한국농촌공사 등을 꼽았다.

그렇다면 이런 알찬 ‘신문사 퇴직자 활용’ 프로그램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곽태형 씨의 회고담이다. 

“신문사에는 개성이 강하고 잘난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치약을 짜듯 짜서 버리는 풍토가 있다고 느꼈죠. 그런데 중앙일보의 한 간부가 퇴직자들을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 덕분에 2007년 이른바 ‘중앙일보 홈커밍 리포터 프로그램’이 생겼고 이에 따라 홈커밍 리포트팀이 2007년 10월 꾸려진 겁니다.”

중앙일보 홈커밍 리포트팀은 가장 막내격인 곽태형 씨를 비롯해 김성호 · 김재봉 · 신종수 · 정규웅 · 한규남(가나다 순) 씨 등 모두 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 중앙일보 퇴직자는 부장, 국장, 논설위원 등을 지낸 뒤 은퇴한 저널리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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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 게재된 ‘홈커밍 리포트’ 연재면.)


이들은 첫 홈커밍 리포트 때 ‘다시 뛰는 실버’라는 표제어로 국내 실버세대가 은퇴한 뒤 제2의 인생을 개척해 가는 사례를 현장 중심으로 취재, 보도했다. 

또 두 번째 홈커밍 리포트 때인 2008년 6월엔 ‘이제는 기업이 나선다’라는 표제어로 우리 사회의 은퇴자들을 활용하는 기업을 집중취재 하여 보도했다. 이들은 모두 중앙일보에서 20 ~ 30여 년 기자로 일했던 베테랑이다.
 
리포트팀은 매번 주제를 소화하면서 자료 수집에만도 일주일 정도 매달렸고, 이후 아이템별로 취재 범위를 나눈 뒤 본격 취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홈커밍 리포트팀은 2008년 6월 보건복지가족부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한국의 고령화문제를 다각도로, 지속적으로 파헤친 것을 높이 평가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기자협회로부터 ‘214회 이달의 기자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성인용 기저귀 품평회에 참가해 달라는 요청을 관련 기업으로부터 받는 등 사회 각계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런 좋은 프로그램이 왜 요즘엔 가동되지 않는지 궁금했다. 

곽태형 씨는 “다시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적지 않은데, 활동 재개 논의는 중앙일보 사우회(회장 김재봉)를 중심으로 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저널리즘 종사자들에 대한 이 같은 국가적 · 사회적 관심이나 배려는 여러 모로 좋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신문 · 방송 퇴직자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안이 조속히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김영섭 /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 

Posted by A&Z
리뷰 메모2013.04.05 18:19
잠 투정이 심한 아기를 잘 재우는 7가지 방법은? 



1. 하루 1번 외출하기

2. 낮잠은 두 시간 정도만
 
3. 엄마 옷을 아기 이불 위에 

4. 잠옷은 흡수성이 좋은 면 소재로

5. 토닥 토닥은 엄마의 싱장 박동처럼

6. 잠 들고 15~30분 뒤 이부자리로 옮기기 

7. 한밤중 수유하는 습관 없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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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

허리 근육통으로 이틀 째 신세지고 있는 일원동 생명수한의원 최변탁 원장님. 

서울대 동양사학과 80학번이다. 서울경제신문에서 편집부 기자로 일하다 뜻하는 바 있어 다시 한의대에 들어가 졸업한 뒤 개업했다고 한다. 

침술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노인 환자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간호사들도 어찌 그리 싹싹한지... 


용하다고 소문이 자자하다. 소문을 듣고 일전에 찾아가 침술의 효능을 직접 체험한 마누하님의 강력한 추천으로 나도 찾아갔다. 

침,구, 부황 및 물리치료 덕분에 허리 통증이 거의 없어졌다. 내일 한 번 더 갈까 말까는 오늘밤 결정해야 겠다. 

우연히 만나 안 사이인데, 언론계 선배라고 깎듯이 대해줘 고맙다. 의료종사자들이 모두 이렇듯 친절하면 얼마나 좋을까. 

Posted by A&Z

밤길을 걷다가 갑자기 사람을 만나면 울찔 놀란다. 더욱이 야생동물과 맞닥뜨리면 깜짝 놀라게 마련이다. 오늘은 한밤중에 산책을 나갔다가 너구리들과 여러 차례 조우했다. 영동6교 밑에서 두 차례, 우성아파트단지 안에서 한 차례 너구리와 만났다. 특히 일원동 우성아파트단지에선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한 쌍의 너구리 때문에 적지않게 놀랐다. 


휴대폰을 갖고 나가지 않아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오늘 양재6교 밑에서 본 첫 번 째 너구리는 실하게 생긴 녀석으로, 천변의 가장 낮은 산책길을 질주하고 있었다. 두 번 째 만난 너구리는 불이 환하게 켜진 다리 밑 산책로의 벤치로 다가오다 나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쳐들고 한동안 위세를 부렸다. 하지만 인기척을 잇따라 냈더니 슬그머니 뒤로 돌아 사라져갔다.   


아파트단지로 돌아와  자전거 보관대 옆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였다. 너구리가 짝을 지어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위세도 부리지 않았고, 일정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다. 너구리가 담배 냄새를 좋아하는지, 아니면 담배연기를 좋아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담배연기가 굴뚝 같은 방안을 두고 "너구리 잡는다"고 하는 걸 보면 너구리가 연기를 찾아 왔는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오늘 앉은 벤치에서 10m 정도 떨어진 다른 벤치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는데, 갑자기 벤치 옆에서 너구리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와 너무 놀랐다. 아마도 당시에 짧은 비명을 지른 것 같다. 나도 놀라고, 너구리도 놀랐다. 너구리 녀석이 으르렁거렸다. 순간 신발을 신은 채 벤치 위로 올라갔더니, 자신을 위협하는 줄 알고 너구리 녀석이 공격 자세를 취했다. 실제로 몇 차례 공격해 오다 자기 갈 길을 갔다.  


오늘 연 4마리의 너구리와 마주친 뒤 아파트로 들어가려던 순간, 경비 아저씨가 다가오길래 "너구리가 밤중에 나타나 놀라게 된다"며 너구리를 생포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경비 아저씨는 119대원들이 출동해 수색작전을 벌였으나 새끼 너구리 두 마리를 잡았을 뿐, 어른 너구리들은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낮 양재천에서 너구리를 볼 때면 야생동물들과 더불어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하지만 밤중에 산책길을 가로막거나 벤치에 고즈넉하게 앉아 있을 때 불쑥 튀어나오는 너구리엔 호감을 가질 수 없다. '양재천 너구리'를 검색해보니 천변 아파트에 사는 분이 찍은 동영상이 하나 나온다. 그래, 바로 이 녀석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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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메모/재미2012.08.08 12:59
다음tv팟에서 퍼온 마이플레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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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직장을 그만둘 때 블로그에 작성했던 글을 읽은 몇 사람이 놀려댔다. 오랫 동안 호주머니에 넣고 다닌 신분증을 반납하기 전에 비누로 깨끗이 씻은 게 우스꽝스러워 보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니면 설령 그렇게 했더라도, 그런 이야기를 쪽팔리게 왜 블로그에 쓸까 하는 생각에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20년을 훨씬 넘게 다닌 회사에 작별을 고하자니 매우 쓸쓸하고 아쉬워 기록으로나마 남기고 싶었다. 옛 추억을 더듬다가 벌써 1년하고도 반이 지난 날의 에피소드를 떠올리고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한 줄 썼다. 


"오늘 문득 '사회적 친정'에 생각이 미친다. 한 번 친정은 영원한 친정이다. 친정을 떠났어도, 친정이 잘 되고 친정 동생들이 튼튼하게 잘 자라야 마음이 편하다. 전생의 업이 쌓여 현생의 내가 있듯이, 내가 몸담았던 친정이 없다면 오늘의 나는 없다. 어쩌다가 친정에 서운함을 표시할 순 있어도,친정을 싸잡아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 그런 사람과는 더 이상 인연을 지속하기 싫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옛정을 그리워한다. 그런 사람 몇몇의 얼굴이 떠오른다. 막걸리 한 잔 하고 싶다." 


사실 옛 직장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고생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머님을 봉양하고 아이들을 키우게 해준 고마운 곳이다.  오늘 문득, 함께 웃고 함께 울던 많은 후배들의 얼굴이 사무치게 그립다.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 겠다. 






누구에게나 분신(分身) 같은 존재나 징표가 있게 마련이다. 월급쟁이에겐 신분증이 중요한 분신의 하나다. 신분증이 회사 출입증의 역할을 하거나 출결을 체크하는 데 통상 쓰이기 때문이다. 나를 드러내고 증명하는 신분증이야말로 개인의 분신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이제 근무일로 따져 월,화 이틀이 지나면 정든 회사를 영영 떠난다. 나는 회사가 마음에 썩 들지 않는 일이 있어도 이해하고, 애써 조직에 적응하려고 했다. 한편 회사는 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나를 예쁘게 감싸준 게 분명하다. 그 덕분에 그 오랜 세월을 '동거'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금요일 오후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퇴직 처리 절차에 따라 신분증과 노트북PC를 반납해 달라는 것이었다. 노트북은, 한 달 간의 말년휴가(연월차 휴가) 내내  '출근'한 마포 사무실에 있다. 양복 바지 뒷주머니의 지갑에서 회사 신분증을 꺼내 봤다. 이 증이 발급된 게 도대체 언제였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때가 꽤 묻어 있다. 

사람이 죽었을 때 고인의 몸을 정성껏 깨끗하게 씻어 드린다. 그런 다음 수의를 입힌다. 서양에선 고인의 얼굴 등 몸 치장까지 한다. 가톨릭 장례의식을 영화 같은데서 보면 고인은 얼굴에 화장을 하고 눈을 감은 채 관에 누워 있다. 조문객들은 사자(死者)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고 꽃을 가볍게 놓는다. 

고인의 몸을 청결하게 하는 건 시신을 땅에 묻는 매장의 경우에 한하지 않는다. 화장(火葬)할 때도 그렇게 한다. 그것은 떠나는,아니 돌아가는 고인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다.  땅 속에서 곧 영면에 들어가거나 불구덩이 속에서 몇 줌의 재가 될 터인데도 굳이 고인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인간의 일이다.






      

신분증은 아마도 1990년대 초반부터 내 분신이었다. 그런 귀중한 신분증을 며칠 뒤 장례 지내야 한다. 내 분신은 반납되면 파쇄기로 부숴지고 이내 쓰레기통에 쳐박힐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쓰레기 소각장에서 불에 타 육신을 잃을 게 분명하다. 죽은 사람에 비유하자면 매장이 아니라 화장이 된다고 할 수 있겠다. 


욕실로 신분증을 들고 가 깨끗히 씻어줬다. 오랫동안 풍파에 시달려 때가 덕지덕지 묻고 낡은 내 분신을 비누로 정성껏 씻어줬다. 어차피 며칠 후면 소각장의 불덩이 속에서 활활 탄다. 갓난 아이의 한 줌도 안되는 재가 돼 사라진다. 하지만 그냥 보내지는 못하겠다. 분신의 육신을 어루만져 준다. 따뜻한 위로의 말을 마지막으로 건넨다. 
"슬퍼하지 말아라. 만물유전(萬物流轉)이라, 모든 것은 흐른단다 ( Panta rhei )."


Posted by A&Z
리뷰 메모/음악2012.06.03 23:18
3일 결혼한 신부의 오빠인 일본 홋카이도대학교 김성민 교수가 작사/작곡하고, 신부의 사촌들인 김병훈,최재윤이 부른 노래입니다. 노래의 제목은 '내일도 오늘처럼'입니다. 저작권은 제 처가 조카들과 둘째 아들에게 있습니다. 

일본에서 작곡한 노래를 결혼식 날 전인 2일 잠깐 연습해 미흡한 점이 있겠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것으로 보입니다. 3일 결혼식이 열린 서울 중구 장충동 앰배서더호텔 예식장에 모인 하객들도 비교적 좋은 평을 해주셨습니다. 

작사,작곡 및 노래를 한 이들이 여동생, 언니, 누나를 시집보내면서 진심으로 행복을 비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노래입니다.   


새로 인생을 시작한 조카딸과 조카사위의 백년해로와 행복을 빕니다. 오랜 세월, 짝을 찾아 헤맨 끝에 드디어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 두 남녀가 서로의 반쪽을 모자이크해 잘 어울리는 한 편의 그림을 만들 것으로 확신합니다. 

새 부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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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메모/음악2012.02.16 17:10





앱 개발에 필요한  BGM 음원을 곡당 평균 13만 원에 살 수 있다. 전세계 최초로 앱 개발만을 위한 ‘30초 루프 음원 서비스’를 정식 오픈한 수파사운드( www.SupaSounds.net )에서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MP3 포맷은 TAG로 인해 루핑이 완벽하지 못하나, 수파사운드는 MP3 TAG 제거 기술로 루핑을 할 수 있는  MP3를 지원한다. 

음악 전문성이 없는 개발자라도 게임에 맞는 음악을 쉽게 고를 수 있다.  앱 게임 하나에 2~3곡의 BGM이 필요하므로 총비용은 25~38만 원 정도. 이는 기존의 음원 제작 방식의 5분의1 수준의 값이다.  
별도 가입절차 없이 프로젝트에 대한 간단한 정보만 입력하면 기입한 이메일로 ZIP 파일 형태의 음원을 자동으로 받아볼 수 있다. 현재는 ios 플랫폼에서만 이 음원을 쓸 수 있다. 
Posted by A&Z
리뷰 메모/재미2011.10.03 17:32
믹시 새 블로그 등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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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
TAG 믹시

마포에 둥지를 튼 지 약 11개월 만에 을지로3가로 이사했다.
그동안 준비해 온 일들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위한 작은 움직임이다. 상당 기간, 지인의 일을 도와둔 뒤 '홀로서기'를 시도할 계획이다. 허허벌판에 서있는 준고령자를 기꺼이 맞아준 지인이 고맙다. 그런 만큼, 열과 성을 다해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져 본다. 주로 할 일은 최근까지 노력해 온 분야다. 하지만 스스로 몸을 추스른 다음, 영업 측면에서도 기여할 수 있도록 애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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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매체 창간 작업을 스마트하게, 열심히 도우면서 이와 결코 무관치 않은 분야를 개척해 볼 생각이다. 일단 새 일을 시작해서인지 며칠 동안 숙면을 취하기가 쉽지 않았다. 여러 가지 상념이 머릿 속에 들어오고 나가기를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30년 가까이 일한 직장의 문을 나선 것도 '밥 벌레'가 되지 않기 위함이었으니, 새 사무실에서도 쓸모가 적은 부품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겠다. 같은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쉴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다. 
Posted by A&Z
죽는 날까지 떠돌이 생활에 익숙해질 때가 됐다. 
30년 가까이 일하던 분야를 떠나 새 길을 찾기 위해 더듬이를 부지런히 옮긴 지도 9개월이 다 돼간다. 주변의 지인들은 "사업을 하더라도 2년은 투자해야 길이 보인다"고들 말했다. 허허벌판에 나와 터벅터벅 걷다보니 그게 무슨 말인지 비로소 이해가 간다. 6월까지는 그래도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과 얼굴을 맞댔으니, 완전 룸펜으로 촉수를 가동한 것은 불과 2개월 밖에 안된다.

인생은 순간순간이 선택이라고 했다.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업,직장을 가졌으니 사실 딱히 '선택'이라고 할 만한 큰 사건은 내 앞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숱한 선택과 결단이 줄줄이 늘어선 것을 절감한다. 정처를 갖더라도 이내 곧 또다른 정처를 염두에 둬야할 게 불을 보듯 훤하다. 고민도 많겠지만, 적어도 지루한 일상은 없을 것으로 기대된다. 열정과 꿈을 잃고 쓰러지지 않는 한, 인생탐험은 계속된다. 불안감보다는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갈망으로 채워가는 삶을 살아야 겠다.   


떠돌이별하나가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최건 (시문학사, 2009년)
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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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
리뷰 메모2011.08.03 01:35

1. river wild
2. the light
3. 수상한 이웃들
4. company man /실직자들의 삶
5. 궁녀
6. 집행자 /사형 집행자의 고뇌
7. 패밀리 맨 /성공한 남자와 평범한 두  아이 아빠의 삶
8.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iness) / 의료기 세일즈맨
9. 매치 포인트
10. 127시간/계곡에 팔이 낀 남자 이야기
11. 타인의 삶/독일영화,도청
12. 히틀러, 악의 탄생
13. 1급 살인 /교도소
14. 오리지널 신 /안젤리나 졸리의 사기극
15. primal fear / 리처드 기어, 변호사
16. notorious / 빈민굴 출신의 흑인 작곡가 겸 가수 이야기
17. cash
18. 6월의 일기
19. stepfather
20. 라메리카노(더 아메리칸)/ 이탈리아 영화, 암살자
21. 인간의 증명/일드
22. 하비의 라스트 찬스/더스틴 호프만
23. 타인의 취향
24. 이태원 살인사건
25. 혜화,동
26. 멋진 하루
27. 행복/임수정,황정민
28. 소년, 천국에 가다
29. 예언자 /교도소 아랍인
30. 더 로드/인류멸망
31. 굿모닝 에브리원 /PD와 앵커 이야기
32. 더 코드/보석 털이
33. 리포맨/장기이식 기술의 불행
34. 어 굿 이어 2006/프랑스 포도밭,펀드매니저
35. DAMAGE
36. 초승달과 밤배
37. 국화꽃 향기
38. CAST AWAY(표류자)
39. 여행자/고아원
40. 악의 꽃 1997
41. 의뢰인/살인사건 목격한 꼬마와 여자 변호사
42. 컨트롤러
43. 엘시크레토(그의 눈속의 의문)
44. 러브 스토리
45. 맨 온 파이어
46. 콜드 마운틴
47. 캐치 미 이프 유 캔/위조지폐 등 사기꾼,FBI
48. 무등산 타잔, 박흥숙
49. 더 클리닉/아기공장
50. 조나 핵스/남북전쟁 후의 현상금 사냥꾼  
51. 거짓말
52. 모비딕
53. 셀다211(211호 감방)
54. 스윙어스 
55. 청춘 / 서정주 시 '내리는 눈밭에서'
56. 파이란/강백란
57. 언노운(unknown)/교통사고후 기억상실증 걸린 암살요원 
58. 포인트 블랭크/임신한 아내 구하기
59. 콘트롤/악인바꾸기 약물테스트...플래시보효과
60. 라이언일병구하기 
61. Blitz
62. Bad teacher
63. S다이어리
64. 비밀(일본 영화)
65. 테이큰 
66. 언디스퓨티드
67. 분노의질주
68. 투어리스트 
69. 한나 
70. 조한
71. 레지던트 이블
72. 인스팅트/앤소니 홉킨스
73. 미드나잇트/ 터키 감독
74. 아이덴터티
75. 미스핏츠(misfits)/영드.네이든
76. 헤이븐/미드
77. 더 타운
78. 지하도시의 비밀
79. 스와트
80. 태양의 제국 /영국인 꼬마의 중국 수난기
81. 그을린 사랑(앵쌩디)
82. 라스트 홀리데이
83. 진실 혹은 거짓(Nothing but the truth)
84. 블랙 북(Zwatr boek) /나치 치하의 네덜란드 
85. 풍산개
86. 더블 크라임
87. 유주얼 서스펙트
88. 더 콘스탄트 가드너 
89. 늑대의 제국 
90. 킹스 스피치
91. 트레이드
92. 평양성
93. 밴디트
94. 크로싱 오버
95. 위대한 유산
96. 뿌리 
97. 디파티트
98. 프레셔스
99. 더 유닛
100. 에브리바디 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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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러브 어페어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2. 파수꾼
3. 해바라기 
4.이웃집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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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

일부 신문이 언론통폐합으로 숨을 거뒀다 부활하는 TBC의 후신인 종합편성채널 jTBC의 개국 기념 일본 공연설을 보도했다. 외주제작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이 보도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소문을 보도한 신문은 삐딱한 시선을 보이고 있다. 종합편성채널이라는 게 내국민을 상대로 하는 방송국인데 왜 개국을 기념하는 공연을 일본에서 하느냐는 투다. 


사실 여부를 떠나 jTBC가 만약 일본에서 기념공연을 연다면, 이는 분명 파트너로 참가한 일본 아사히TV와의 향후 비즈니스를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국내 버라이어티 쇼의 원조 격인 "쇼쇼쇼' 같은 프로그램과 '아씨' 등 드라마로 이름을 떨치고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TBC의 부활체(jTBC)는 일본 시장의 본격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일본공연을 적극 검토할 수 있다. 그게 케이팝 가수들의 공연을 바탕으로 일본 문화 속에 한류를 뿌리내리게 하는 전략일 수 있다는 얘기다. 


종편 jTBC는 글로벌 방송을 지향한다. 그러므로 개국 시점부터 닫힌 시각을 떨쳐낼 필요가 없지 않다. 개국 공연을 어디서하든, 공연의 생방송이나 녹화방송을 하면 그만이다. 오프라인 현장이 꼭 국내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개국 이벤트를 극대화해 일본에서 공연의 기틀을 마련하고, 시청자들에겐 '한류 자부심'을 안겨주는 게 뭐가 문제되는지 잘 모르겠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하고, 기자는 기사로 말하고, 방송은 방송 자체로 말한다.    

Posted by 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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