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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8 발각된 비상금은 내 알몸,사라진 비상금은 내 죽음
종명 수필2011. 3. 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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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금을 도둑질 당하면 죽고 싶다. 아마도 남성들은 대부분 그런 아픈 추억에 몸을 부르르 떨지도 모른다. 발각당한 비상금은 나의 알몸이고, 사라진 비상금은 내 인생의 종말이다.

비상금과 관련된 조사 결과를 종종 본다. 아내들 가운데 남편이 500만 원 이상의 비상금을 갖고 있는 걸 용서하는 아내는 7.4%에 불과하다는 어떤 단체의 조사결과가 술자리에서 화제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남자들만의 술자리에서나 생명력을 가질 따름이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약 36%가 남편 용돈으로 50만원 미만을 용인한다고 하니 씁쓸한 웃음을 짓는 남자들도 꽤 될 것 같다. 


남자들게겐 용돈을 얼마나 많이 꼬불치냐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무엇보다도 용돈의 안전에 목을 맨다. 아내에게 진실만을 말하고 살겠다고 굳게 맹세한 남편에게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위기는 용돈의 발각이다. 어느날 갑자기, 아내 몰래 상당한 액수의 용돈을 갖고 있는 사실이 들통하는 날이면 한마디로 개망신이다. 이보다 더 청천벽력 같은 대재앙은 용돈을 발견한 아내가 시치미 뚝 떼고 용돈을 가로채는 사건이다. 




어릴 때의 일이다. 1만원 짜리 몇 장을 돌돌 만 뒤 헝겁으로 감싸고, 그것도 모라자 꽉 묶어서 장롱 밑 틈새로 손을 넣어 감춰 뒀다. 이 성스러운 물건은 평상시엔 절대로 손을 대선 안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비상금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 성물(聖物)을 함부로 손대면 저주받을 것이라는 악마의 주문까지 걸어놓았다.

그런데 어느날, 학교에 갔다가 친구들과 실컷 논 뒤 집에 돌아왔더니 천지가 뒤집혀 있었다. 방의 벽이 깨끗히 도배되고, 가구가 완전히 재배치돼 있었다. 돌연 눈앞이 캄캄해 졌다. 내 비상금이 부정스러운 눈들을 피해 성스럽게 머물고 있던 자리는 휑하게 비어 있었다. 내가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이었고, 일순간 눈이 확 뒤집혔다. 동생들을 한 명씩 따로 불러 협박 반, 애원 반으로 성물의 존재와 안전을 캐물었다. 마침내 한 동생이 친구들을 모두 불러 갑자기 횡재한 돈으로 실컷 군것질을 했다고 실토했다. 아! 그러나 절반은 남아 있었다. 죽은 비상금의 추억이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비상금이 살얼음을 걷게 하기도 한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부부동반으로 부서 회식이 있었다. 맛있는 바다가재 요리 등으로 배를 불리고, 맛있는 양주로 기분을 띄웠다. 그런데 한 사람이 얼마전 뜻밖에 나온 성과급 이야기를 꺼냈다. 순간 좌중엔 공포의 분위기와 분노의 분위기가 섞여 묘한 광경을 연출했다. 마침내 한 동료가 아주머니에게 불려 나갔다. 고문의 시작이었다. 한참 흥이 난 회식은 그것으로 끝났다. 그 후 들은 이야기로는 그 비상금(성과급) 탓에 부부싸움이 한 달은 족히 끌었고, 남편의 신뢰는 땅 밑에 묻혔다고 한다.


사실 비상금은 팍팍한 샐러리맨들의 삶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는' 성물이다. 후배에게,친구에게 술 한 잔 밥 한 끼 사려고 해도 비상금이 없으면 한낱 마음에 그친다. 경조금도 일일이 아내에게 보고하고 쓸 수도 없고, 작은 취미도 누릴 수 없다. 특히 부모님에게 조금이라도 용돈을 드라자면 비상금은 '머스트 해브(MUST HAVE)'아이템이다. 

비상금은 '둥지 속 알'(NEST EGG)이다. 닭이 자기가 낳은 튼튼한 알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성치 못한 알로 둥지를 위장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러니 비상금은 샐러리맨 남편들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 아내의 눈을 쬐끔 속이는 알인 셈이다.  이 알도 꽤 여러 개 모였다면 투자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장롱의 밑이나 속, 책갈피 같은 어두침침한 곳에 두는 것보다는 자산종합관리계좌(CMA),머니마켓펀드(MMF),건실한 주식투자 계좌에 넣어 두는 게 경제적이고 안전하다.  어쨌든 비상금을 둘러싼 애환은 지구의 종말이  올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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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