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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13 개에도 격(格)이 있다
종명 수필/단상 회상2011. 3. 13.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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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가 요즘 난데없는 수난을 겪고 있다. 오뉴월 복날도 아닌 따뜻한 봄날에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굴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바야흐로 ‘견공(犬公) 수난시대’다. 개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비웃음과 비아냥, 더 나아가 욕설의 대상이 된다. 이들에게 영혼이 있고, 견격(犬格)이 있고, 인간과 비슷한 법적 권리가 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우선, 인간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명예훼손 소송이라도 걸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인간들을 본따 이른바 ‘점증하는 좌절의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겠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 최근 KTF 광고에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는 카피가 등장했다. 때맞춰 ‘견격회복추진협의회’(약칭 견회추)가 결성됐다고 치자. 이 위원회는 당장 거품을 물고 달려들 것이다.  인간들이 접근하기 힘든 깊은 산속에서 ‘견회추(犬回推)’ 한국비상대책회의가 열렸다. 협의회 회장이 나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지구 상의 많은 견공 가운데 잉글리쉬 코커 스패니얼 종족에 속한다.

“여러분, 인간들은 참 의리도 없고 비열한 것들입니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건 아닙니다. 우리를 한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 분들은 우리를 끔찍이 아껴 미용도 시켜주고, 맛있는 것만 골라주지요. 우리가 죽으면 아들딸이 죽은 것처럼 슬퍼하고 심지어는 식음을 전폐하기도 합니다.  또 장례식을 성대하게 올려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파렴치한 인간들이 훨씬 더 많지요. 우리 견공 가운데 일부 종족은 살아선 인간들에게 똥개니 뭐니 놀림감이 되고, 죽어선 보신탕이라는 이름으로 먹잇감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인간들 때문에 매년 복날이 가까워지면 사시나무 떨 듯 공포에 질리고, 피눈물을 흘리다가 세상을 등지는 우리 동족이 숱하게 많습니다. 인간들의 말대로 ‘개죽음’을 당하는 거죠.”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회장이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분을 참지 못하겠는 듯, 게거품을 물었다. 회의장에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회장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숨을 돌린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견회추를 결성하긴 했지만, 구체적인 투쟁목표와 실천 프로그램을 제대로 짜기 위해선 소위원회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선 인간의 오염된 언어, 말도 안되는 언어를 바로잡는 차원에서 문제점을 논의하겠습니다. 만장하신 견공 여러분, 좋은 의견을 많이 내주시기 바랍니다.”

 

 

 

# 털을 말끔하게 단장하고, 멋진 옷을 갖춰 입고, 헝겊 신발을 곱게 신은  시츄 공이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었다. 미용실에 갔다가 막 나온 듯, 폼 나는 모습이었다.

“저는 인간들의 각 나라에서 함부로 쓰이고 있는 말을 바꾸라고 인간들을 윽박지르는 소위원회가 시급히 결성돼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우리 견공들을 너무 얕봅니다. ‘아무 가치도 없다, 보잘것 없다’ 는 뜻으로 그들이 쓰는 말만 해도 부지기수입니다. ‘개 뼈다귀 같다, 개 발싸개 같다, 개 방귀 같다, 개 코구멍으로 안다, 개떡 같다, 개똥 같다, 개코 같다,개뿔도 아니다’와 같은 표현이 모두 그런 것들이죠. 이거 말이 됩니까. 우릴 뭘로 알고...”  시츄 공이 뒷발로 단상을 몇 차례 박차고, 분을 삭이지 못하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 인간들을 이따금 물어뜯어 공포의 분위기를 빚는 불독 공이 나타났다. 양옆으로 찢어져 늘어진 입을 씰룩거리면서 단상에 올랐다. 

“요즘 집에서 우리 아저씨와 함께 TV를 보다가 열불이 났어요. 탤런트 변우민인가 뭔가 하는 작자가 나오는 CF인데, 아 글쎄,  카피가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고 돼있잖아요? ‘고생’이라고 해도 충분히 말뜻이 통합니다. 그런데, 왜 굳이 우리를 욕보이는 겁니까. 그 저의가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단 말입니다. 이 것 뿐인가요. 좋지 않은 뉘앙스의 말 앞에 꼭 ‘개’라는 접두사를 쓸 데 없이 붙인단 말이에요. 우리가 뭐 그렇게 만만한 존재인가요? 하도 화딱지가 나서 전 가끔 인간들을 사정없이 물어뜯습니다. 그리고, 낯짝이 좋아 보이는 작자들을 씹을 때 ‘개기름이 번지르르 흐른다’고들 하는데 지들이 사람이지 개입니까? 왜 우리를 물고 늘어지나요? ‘개나발을 분다. 개똥상놈이다, 개망나니다, 개망신을 당했다, 개불상놈이다, 개새끼다, 개수작을 부린다, 개싸움을 한다, 개잡년. 개잡놈이다, 개죽음을 당했다, 개지랄을 떤다, 개코망신이다...’ 입에 다 주워담기도 힘드네요.”  불독 공이 물러나자, 발발이 공이 발언하겠다고 나섰다. 이때, 회장은 잠시 정회를 선포했다. “여러분, 집에서 싸오신 간식을 좀 드세요. 귀족 동네에 사시는 분들은 변변치 않은 동네에서 오신 분들과 사이좋게 나눠 드시길 부탁 드립니다.”    

 

 

 

# 발발이 공이 발발거리면서 단상으로 겨우 올라갔다. 헛헛 기침을 하더니 말을 꺼냈다. 

“앞에서 좋은 말씀을 해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욕설화하는 표현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와 우리의 조상들을 싸잡아 욕보이는 짓이죠. ‘개가 똥을 마다한다, 개가 웃을 일이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같은 게 좋은 예죠. 그리고 떳떳하지 못하게 어떤 계집이 사내와 붙어 먹을 때, 그 사내를 가리켜 왜 ‘개구멍 서방’이라고 합니까. 우리가 뭐 그 계집하고 ‘부적절한 관계’라도 맺었나요? 억울합니다. 인간들이 가장 많이 쓰는 욕설도 그렇지요. ‘개새끼’라는 욕 말입니다. 우리에게 불륜의 덫을 씌우려고 하는지 뭔지 도통 알 수가 없네요. 요즘엔 잘 쓰지 않는 것 같던데 ‘고뿔’에 걸리면 왜 ‘개좆부리에 걸렸다’고 하는지,원 참...  ‘개차반 같은 놈’이라고 할 때는 우리가 먹는 밥까지 더럽히는 셈이죠. 아, 그리고 또 국회의원이라는 작자들이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는데도 왜 ‘개판을 쳤다’고 합니까? 우리가 여의도를 점령이라도 했나요?”

  회의의 열기는 갈수록 뜨거워 졌다. 견공들의 명예를 더럽히는 말을 바로잡는 조치를 취해 나갈 소위원회를 구성하는 데만도 한참이 더 걸릴 것 같았다. 이들의 말을 듣다보니 ‘개 같은 세상’이라는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사람이 사는 세상이 왜 개 같다고 표현돼야 할까, 그리고 개판은 언제나 걷힐 것인가 사뭇 궁금해지기도 했다. (2009.03)

  


 [어느 학부모의 항의 메일]
 
시간대 물문하고 나오는 저 광고에 뜨악했습니다. 

어린이들의 입에서 곧 개고생이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흘러나올것이며 
개를 붙인 다른 단어도 생성해내서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참신하고 기발함을 생각한 그들의 변명이 더 
어이가 없었습니다. 

누군가는 산뜻이라고도 표현하더군요.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드라마까지 삽입하니 
산뜻할 수 밖에요..

언어는 사람의 생각을 만들어내고 
성품을 변화시킵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더더욱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 광고를 늦은 시간에만 보낼수 있게 하든지 
언어순화를 할 것을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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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