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명 수필2010. 12. 2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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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저장성 상인들은 100년 전 쯤 알려지기 시작했다. 닝보((寧波)상인들이 상하이에서 상권을 이루며 두각을 나타내면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이들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새로운 상업 정신과 전통을 만든 셈이다. 그런 점에서 저장성 상인들은 능력과 지혜를 높이 평가받고 있다. 

저장성의 면적은 중국 전체 국토의 1.06%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은 중국 4위이며,경제력은 7위를 기록하고 있다. 포브스지가 뽑은 중국의 부호들 리스트에 17명이 명단을 올렸다. 진상이나 후이상보다 100~200년 늦게 역사의 무대에 올랐지만 승승장구하고 있는 셈이다.저장성 상인 가운데 호설암은 24세의 나이에 은 30만냥을 들여 명의와 약사들을 스카웃하고 민간요법을 수집했다. 그리고 민간에 널리 퍼뜨릴 수 있는 효능 좋은 약을 만들도록 했다. 결과물은 환약,가루,고약,시럽 등 의약품 40여 종. 중국 사상 첫 제약산업의 기틀을 마련한 셈이다. 이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펑건성이었다. 그는 저장성 경제가 시장에 진입하는 물꼬를 튼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14세에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호설암의 후칭위탕에 견습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뼈를 깎는 노력 끝에 백년 전통 후칭위탕의 최고책임자 자리에 올랐다. 후칭위탕은 백족지충(百足之蟲)으로 통했다. 모든 의약품을 취급한다는 뜻이다. 펑건성은 훗날 쓰러진 후팅위탕을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 

저장상인은 막대한 부를 창출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시대정신을 창조하는 놀라운 업적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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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