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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분류하는 기준이 최근 두 가지로 바뀐 것 같다. 2단계론과 3단계론이 그것이다. 얼마전까지만해도 통상 2단계였다. 태어나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 둔 뒤의 삶을 '세컨드 라이프(제2의 인생)'라고 불렀다.

그런데 최근엔 3단계 분류가 왕왕 거론된다. 즉, 태어나 (남자의 경우 군복무를 해결하고) 학업을 마칠 때까지에 제1의 인생, 취업에 성공한 뒤 퇴직할 때까지에 제2의 인생, 그리고 퇴직후 죽을 때까지에 제3의 인생이라는 꼬리표를 각각 달아준다. 

왜 그럴까? 왜 삶을 3단계로 나누고 싶은 것일까. 몇 달 동안 틈틈이 생각했지만, 가슴에 확 닿는 개념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 봤다. 인생 3단계 분류법은 취업 전후를 구분한다는 데 큰 뜻이 있는 것 같다. 취업이 쟁점이 된 것이다. '88만 원 세대'니 '청년 실업자 대란'이니 하는 표현들이 취업 그 자체를 핫이슈로 보게 된 바탕이다.

1970년 대 초반까지는 제1 인생이니 제2인생이니 하는 그런 표현은 관심사가 전혀 아니었다. 1960년대엔 우리 사회엔 '고급 룸펜'이 널려 있었다. 나누고 뭐가 할 필요도 없었다. 삶이란 그저 고단할 현상일 뿐이었다. 

새마을운동과 산업화의 열매로 일자리가 부쩍 부쩍 늘어나고, 국민소득이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1970년 대 중반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 사회엔 에너지가 넘치기 시작했다. 이른바 경제 호황이다. 그렇더라도 '노후' 같은 건 안중에 없었다. 

가장들은 그냥 숨가쁘게 일하며 달렸다. 마이홈을 마련하면 가족들이 "꿈이냐, 생시냐"하며 살을 꼬집어보는 그런 시절이었다. 돌이켜보면 장년,노년층에겐 그 시절이 호시절이고 황금시대였던 것 같다.

그런데 세상은 나날이 변했다. 지금의 장년.노년층은 1980년대 초반의 석유위기를 나름대로 슬기롭게 헤쳐 나왔다. 그들에겐 일만 열심히 하면 밥을 굶을 염려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평생 직장'을 향한 꿈은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산산조각이 났다. 생애 봄날은 갔다. 뿐만아니라 하나 또는 둘 낳아 애지중지해 이기심만 키워준 자식들에게 노후를 맡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7080은 외롭다. 그들은 앞만 보고 달려왔다. 위에 짓밟히고, 아래에서 치받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온 샌드위치 세대다.  아이들은 캥거루다. 부모의 품을 떠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은 스펙 쌓기와 청년실업 대란의 시대 때문이지만, 휴학.해외연수 등으로 자식들이 대학에 머무는 기간은 고무줄처럼 늘어만 간다. 제 기간에 졸업하고 직장을 잡으면 오죽 좋으랴. 그러나 현실은 팍팍하기만 하다. 그 놈의 스펙을 적지 않게 쌓아도 취업이 쉽지 않다. 설령 취업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이 엄청 많고, 평생직장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노동의 유연성이란 상당히 많은 경우 근로자에겐 손과 발을 묶는 차꼬에 불과하다.  그러니 이제 취업과 직장 유지가 큰 문제로 떠올랐다. 삶을 2단계에서 3단계로 세분화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세컨드 라이프이건 제3의 인생이건 간에 '퇴직 후 삶'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조기 퇴직하든 정년 퇴직하든, 베이비부머들에겐 가시밭길 같은 인생 길이다. 건강하게 살다 빨리 죽으면 좋겠지만 그나마 뜻대로 되지도 않는다. 일전에 한 스님에게서 들은 말이 있다. 

여름휴가 때 참선과정에 참가한 사람들(주로 중장년)에게 '왜 사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답변은 "죽지 못해 산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노스님도 그 대답에 놀랐다고 한다. 이 하늘 아래엔 죽지 못해 하는 수 없이 사는 숱한 애늙은이들과 늙은이들이 숨쉬고 있다. 그들이 뿜어내는 가쁜 숨이 지하철 안과 전국 산과 공원과 거리의 공기를 덥히고 있다. 

좌절하는 숱한 젊은이들도, 죽지 못해 사는 많은 늙은이들도 참 딱하다. 이게 2011년 대한민국 국민의 자화상이다. 그걸 바로잡을 지도자는 정녕 이 나라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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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