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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로마,피렌체,베네치아,밀라노를 자유롭게 여행한 기분이 아직 새롭다. 보름이 지났는데도 감흥이 사라지지 않는다. 젊은이들처럼 배낭여행에 가까운 자유여행을 하면서 발품을 심하게 팔고, 영어와 몇 마디 외운 이탈리아어로 길을 묻고 헤매던 일들이 즐거운 추억으로 뇌리에 아로새겨졌다고나 할까. 


6박 8일 동안의 이탈리아 자유여행을 마친 뒤,우린 내년 여름에 이탈리아 토스타나 지방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큰 돼지 저금통을 사서 하루에 1만원 씩을 넣기로 했다. 토스카나 지방 여행은 농촌 마을의 민가에서 묵을 것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하고 있다. 여행사 직원에게 '토스카나 상품'을 개발해보라고 부탁했을 뿐, 손에 잡히는 건 없다. 내년 여행 땐, 지방에 사는 셋째 처형 부부와 함께 가면 좋겠다.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으니 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탈리아 동반여행을 권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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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여정인 밀라노에서 깜짝 놀랄 만한 일을 만났다. 한국 여행사 '레드캡 투어'의 프리랜서가 밀라노의 호텔에 의뢰해 푸짐한 과일 바구니를 선물한 것이다. 과일 바구니를 가져온 호텔 보이가 "Just married?"라고 했을 때 깜짝 놀라 "결혼 25주년이 됐다"고 말하며 바구니를 물리쳤다. 하지만 프런트에서 만난 호텔 지배인은 "호텔 매니지먼트가 드리는 선물"이라며 자신이 보증한다는 뜻에서 명함에 사인까지 해줬다. 외국에서 이런 행운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돈으로 따지면야 얼마 되지 않으나, 내 인생이 극진한 대접을 받는 듯 뿌듯했다. 
 
 


 
 
 
○… 베네치아에서 우리 입맛에 맞는 해물탕과 해물 파스타를 먹었던 추억도 내세울 만하다. 제3세계에서 온 웨이터들이 길가에서 손님 유치전을 벌이는 것도 참 재미있었다. 일명 '삐끼'를 물의 도시에서 보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건 대도시의 유흥가에서나 볼 법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 이탈리아 여행 중 최고 코스는 피렌체였다. 피렌체 호텔의 우아함과 쾌적한 공간은 크나큰 행복감을 안겨줬다. 세련되고 멋진 객실 디자인과 샤워기등 최신식 아이디어 장치를 부착한 화장실도 부수적인 쾌감을 불렀다. 또 피렌체 두오모(대성당)의 웅장한 위용과 좁다란 400계단을 올라간 돔(dome)에서의 피렌체 전경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됐다. 피렌체 두오모는 일본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아름다운 스토리와 합쳐져 '행복의 시너지 효과'를 톡톡이 냈다고 본다. 
 
 
 
 
○… 무엇보다도 로마 시스티나 예배당(성당)의 천장화를 온갖 간난을 무릅쓰고 완성한 미켈란젤로의 투혼,예술혼,불굴의 의지는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교훈이 될 것 같다. 삶이 나를 속이거나,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미켈란젤로를 떠올린다면 강력한 활력소가 될 것으로 믿는다. 미켈란젤로의 교훈은 며칠 뒤 이어진 일본  패키지여행에서 가이드가 언급한 '1만 시간 투자론'과 맞물려 재충전의 빵빵한 전력이 될 것이다.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어떤 분야에선 일가견을 갖게 된다는 말,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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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이드북은 출판 시차 때문에 선의의 오류를 내게 마련이다. 특히 여행하는 나라의 관광 정책이나 세금제도가 별다른 예고없이 바뀔 땐 그렇다.  출판사는 가이드북과 사이트를 연계해 정보를 업데이트해주면 좋겠다. 새로 바뀐 정보를 사이트의 '별도 박스'에 소개하면 어떨까. 물론 연계되는 페이지는 가이드북에 친절하게,눈에 띄게 소개하면 될 것이다.  
 
○… 로마공항에서 내린 뒤, 로마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타는 특급열차인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의 요금이 2011년 1월부터 1인당 11유로에서 14유로로 올랐다.
 
○… 베네치아의 수상버스 노선 가운데 82번이 없어졌다. 현지의 안내 정보가 부실한 편이어서 헛갈린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가이드해주면 좋겠다. 
 
○… 인터넷이나 핸드폰(아이폰,스마트폰) 정보를 더 쉽고,자세하게 알려주면 좋겠다. 오프라인인 가이드북은 지면의 제약이 있으니, 출판사 사이트에 그래픽이나 사진 등을 최대한 활용한 알짜정보를 많이 담아주면 어떨까. 대체로 인터넷의 경우 노트북을 갖고 갈 경우,호텔 프런트에서 접속코드(access code)를 받아 쓰면 하루 1만 원 안팎을 물어야 한다. 사전에 알고 쓴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으나,사후에 비용을 청구 당하면 기분이 썩 좋지 않다.  
 
○… 추가할 중요 내용이 있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made in china'가 이탈리아에도 너무 많다. 여행자들이 물건을 살 때 반드시 확인하도록 경고를 강력히 해줘야 한다. 특히 세계적 패션의 도시인 밀라노에서 의류를 살 경우, 나중에 물건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를 발견하면 왕짜증이 솟는다. 주의사항 추가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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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율리우스2세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성바오로 성당)을 짓기로 했다. 교황은 22세의 미켈란젤로에게 '피에타'를 만들어 봐라고 했다. 후불로 결제하기로 하고 작업을 맡겼다. 강옥 대리석으로  예수의 얼굴을 4가지 방향에서 본 조각을 만드는 게 그의 작업이었다. 
'피에타'의 완성을 보기 전에 교황 율리우스2세가 죽었고, 미켈란젤로의 작품 '피에타'는 도둑 맞았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피에타'의 예술성에 감탄하면서도 그게 누구의 작품인 줄도 몰랐다. 부아가 치민 미켈란젤로는 밤중에 몰래 '피에타'가 있던 성당으로 들어가 조작품에 자신의 서명을 새겼다. 이렇게 해서 미켈란젤로의 작품 가운데 서명이 있는 유일한 조각품 '피에타'가 전래됐다고 한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성바오로 성당)에 있는 '피에타'는 촬영이 가능했다. 하지만 초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유리 방탄막으로 차단된 공간에,그것도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 정신 이상자가  1973년 '피에타'를 자신의 마음 속에 담고,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파괴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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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연인들의 성지라는 피렌체의 두오모(대성당)를 확인한 뒤 곧장 아카데미아 마술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선 다른 작품은 거의 감상하지 않았다. 
 
다비드상을 전후좌우의 4방향과 네 귀퉁이에서 관찰하고 느끼려고 애썼다. 인간의 근육과 신경조직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이를 조각에 반영한 미켈란젤로의 천재적 예술성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다비드상만 뚫어지게 바라본 시간이 1시간 안팎에 달한 것 같다. 한 곳에 하도 오래 머물러서 그런지 미술관 지킴이 여성이 관심있게 바라보고 있음을 다비드상을 떠날 때서야 인식했다.  
 
감시의 눈을 피해 급히 찍었다. 하지만 다비드상의 골격은 웬만큼 나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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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을 오랫동안 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 가르치거나, 알려주는 직업인은 특히 그럴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새로운 방식을 개발하려고 애쓰는 건 인지상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행사의 관광 가이드도 그런 직업인 가운데 수위 그룹에 속한다. 코스마다 익숙해진 컨텐츠를 주절주절 숱하게 풀어 놓아야 하니 얼마나 힘들까. 관광 투어 안내를 하면서 상대하는 사람들이 달라지고, 계절이 바뀌고, 날씨와 기후에 차이가 있고, 약간의 상황 변화도 일어나겠지만 기본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질 조건을 상당분 내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선 그걸 훌쩍 뛰어넘은 관광 가이드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열정적으로, 매우 친절하게 바티칸미술관 투어를 가이드 해 준 사람은 로마 자전거나라(검색으로 공식명칭을 확인해 봤더니 '유로자전거나라(romabike.com)' 소속의 '로마 자전거나라'로 돼 있다. 조직이 사업부제인지, 지사 형식인지는 모르지만)의 김민주 대리다. 

그녀는 1시간 40분 안팎의 바티칸미술관 투어에 앞서, 29명의 일행을 불러모아 특유의 '썰(說)'을 풀었다. 투어에 필요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여러 가지 유머로 좌중을 즐겁게 해줬다. 김민주 대리는 특히 미켈란젤로의 4년 8개월에 걸친 투혼을 비롯한 재미있고 의미있는 이야기로 로마 여행의 가치를 확 높여줬다. 미칼란젤로의 투혼이란 그가 온갖 고난을 딛고 불후의 명작인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완성한 역사적 사실을 일컫는다. 

 가이드의 자질과 노력,그리고 열정과 책임의식에 따라 평범해 보이는 여행도 얼마든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그녀는 여실히 증명해 보였다. 바티칸미술관에 들어간 순간, 난 준비해간 노트를 꺼내 열심히 메모했다. 하지만 본인의 무식함과 기억력 감퇴 및 시간 부족 등으로 그녀의 해박한 설명을 제대로 복기(復記)하지 못해 안타깝고 미안하다.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뒤 노트를 보며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으나 역부족이었다. 오류나 없는지 모르겠다.

로마 자전거나라의 탁월한 가이드인 김민주 대리의 설명을 듣기 전, 산 피에트로 대성당(성베드로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뒤에 빨간 스웨터를 입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청년은 이틀 후 피렌체에서 또 우연히 만났다. 로마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꽤 많았다. 아마도 한국 관광객의 숫자가 일본 관광객 숫자를 훨씬 앞지르고 있지 않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잠시 동안의 휴식시간이 끝난 뒤 우리 투어 일행은 미술관 한 귀퉁이에 모였다. 그리고 김민주 대리의 재미있고 유익한 썰에 혼신을 맡겼다. 그녀는 그날의 자신을  " 신 들려 작두를 타는 가이드"로 묘사했다. 

우리에게 열과 성을 다 쏟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김민주 대리의 말을 종합해 보건대, 그녀의 설명을 듣는 우리 투어 일행의 눈들이 반짝거리고 적절한 반응을 즉각즉각 보였던 것 같다. 좀비족처럼 맥없이 반응하는 사람이 적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그 때문에 김민주 대리가 나름대로 신바람을 내서 우리를 열정적으로 안내한 것임에 틀림없다. 

김민주 대리의 투어 가이드가 감동적이어서, 그녀가 속해 있는 회사의 사이트를 찾아봤다. 유로자전거나라 본사가, 서소문에 있는 신문사를 퇴직한 뒤 옮겨온 내 사무실에서 썩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탈리아 로마자전거나라'를 클릭해 들어갔더니 "엇?" 김민주 대리가 찍힌 사진이 나온다.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오른손으로 V자를 그리고 있는 이가 김민주 대리다. 그녀는 사춘기 여고시절 여행에 빠지기 시작했고, 엄마의 가슴 아프고 슬픈 죽음 이후엔 여행 매니어가 됐고, 로마에서 "머리에 후광이 있는 나이 든 오빠"를 만나 얼마전 결혼했다고 한다. 그녀와 같은 훌륭한 가이드가 있는 여행사는 믿음직하다. 이탈리아 여행을 떠날 계획인 분들에게 강추!!!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고 존경해 마지 않는, 생면부지의 '후광 오빠'에게 간곡히 부탁 드린다. "(그녀의) 서러운 세월만큼 안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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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는 역시 세계적인 패션의 도시였다. 가이드북의 '최첨단 패션의 도시' '쇼핑 애호가라면 참을 수 없다' '미의 보고(寶庫)' 등 미사여구에 손색이 없는 도시였다. 비스콘티 가문이 14세기부터 500년에 걸쳐 지었다는 이탈리아 최대의 고딕 건축물인 밀라노 두오모(대성당) 인근의 패셔너블한 숍들은 혀를 내두르게 했다. 
 
여러 모로 감동을 안겨 준 밀라노의 미켈란젤로 호텔에서 내다본 거리 풍경. 이 호텔에선 지배인 명의로 풍성한 과일 바구니를 선물받았다. 창문 밖 왼쪽으로 중앙역이 있다. 
 
밀라노의 지하철 안. 밀라노 지하철은 1,2,3호선과 연락선으로 이뤄져 있다. 1호선으로 갈 수 있는 곳은 두오모다. 또 2호선으로 갈 수 있는 곳은 모스코바,포로라 제노바 등이다. 3호선으로는 두오모와 몬테 나폴레오네 등에 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명소 두오모는 1호선과 3호선이 만나는 지점이다.  
 
밀라노 두오모는 바티칸시티에 있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성베드로 성당) 다음으로 크다고 한다. 첨탑 135개로 꾸며진 두오모 근처엔 쇼핑가가 널려 있다. 몬테 나폴레오네 길, 스피가 길, 브레라 지구는 온통 쇼핑가다. 
 
밀라노 중앙역의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두오모 광장과 라 스칼라 극장 사이의 아케이드는 짧기는 하지만, 영화나 잡지 등에 많이 나오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유리 천장으로 위용을 뽐낸다. 밀라노에선 명품 브랜드가 가는 곳마다 있다. 발에 차일 정도로 많다. 이 때문에 브랜드숍의 제품들이 명품이 아니라 일반 생필품 같은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스피가 길에서 몬테 나폴레오네,두오모에 이르는 길목도 두오모 아케이드에 못지않게 화려한 숍들이 줄지어 있다. 그런데 좀 실망한 게 있다. 30~50% 할인율로 왕창 세일을 하고 있는 어느 점포에서 예쁘고 패셔너블한 쉐타를 하나 사려고 작정한 뒤 계산을 하다 '메이드 인 차이나'라벨을 발견했다. 100달러 지폐로 계산하고 약간의 잔돈을 받아야 하는 단계였으나, 점원에게 잘 설명해 거래를 취소했다. 
 
점원은 옷의 마무리만 중국에서 했다고 말했으나, 마누하님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중국 입장에선 국제 패션의 도시 밀라노의 브랜드숍 매장에 상품을 내놓아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국내서도 '메이드 인 차이나'를 너무 자주 만나 짜증을 내는 마당에  밀라노까지 와서 싸구려 라벨이 붙은 의류를 구입하는 건 아무래도 마음에 내키지 않은 일이다.  
밀라노의 쇼핑가엔 벌써 봄,여름 패션을 선보였다. 올해의 전세계 패션 트렌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뉴 컬렉션들은 눈을 시원하게 만든다. 밀라노의 명성이 왜 높은지 알 것만 같다. 정말 대단한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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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글로벌화가 눈에 띄게 진행되고, 우리의 식생활도 많이 바뀌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외국에서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먹기란 썩 쉬운 일이 아니다. 물의 도시,대운하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맛있는 해물 요리를 먹은 행복한 기억이 새롭다. 
 
베네치아엔 피렌체에서 기차로 왔다. 베네치아 메스트레 역 바로 앞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이 일대는 운하가 없는 주거지역이다. 메스트레 역으로 나가 1유로 씩 내고 지방열차로 산타 루차 역으로 가야 운하로 연결된 '물의 도시'를 만날 수 있다. 수상버스를 타는 역(정거장)은 산타 루차 역 바로 앞에 있다.  
산타 루차 역으로 가는 지방열차를 타기 전, 포즈를 취했다. 피렌체에서 베네치아 쪽으로 올 때 타는 열차는 트레니탈리아(TRENITALIA)열차였다. '유로스타(EUROSTAR)의 장거리 특급열차(AU)다. 이에 비해 메스트레 역에서 산타 루차 역까지 갈 때 타는 열차는 트레보(TREVO)열차다.단거리 지방( 레지오날)열차로 후지다. 
 
산타 루차 역에서 내리면 수상버스인 바폴레토(vapoletto)의 역(정거장)인 '페로비아'역이 코앞에 있다. 이탈리아 여행 가이드북에 나오는 급행버스 82번을 타려고 했으나, 그런 건 없었다. 아마 교통체계의 개편이 있었던 것 같다. 
 
2번 노선의 바폴레토를 타고 도시를 한 바퀴 돈 뒤,페로비아 역에서 다시 섬 정거장 '리알토' 역으로 이동했다. 베네치아에선 가급적 무슨 광장이나 성당 같은 유적지를 찾아가지 않기로 했다. 로마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실컷 봤기 때문이다. 대운하를 일주하며 바닷바람을 맘껏 쐬고, 맛있는 걸 먹고, 발품을 덜 팔고 편하게 투어하기로 한 것이다.  
 
 
해상도시 베네치아는 참 아름다웠다. 바다는 겨울바다가 좋다. 여름 바캉스철엔 바다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숱한 인파에 묻히기 때문이다. 수상버스 바폴레토를 타고 베네치아의 바닷바람을 실컷 맞았다. 
 
이탈리아의 '미친 겨울 날씨' 덕분에, 한국과 달리 한파가 없었다. 강한 바람을 그냥 맞아도,겨울날씨치곤  썩 춥지 않았다. 그런데 바폴레토에서 내려 리알토 일대의 거리를 걸을 땐 약간 추웠다.   
베네치아 거리를 걷다보면 곳곳에서 운하를 잇는 다리와 그 밑 물에 평화롭게 떠다니는 곤돌라를 만날 수 있다. 베네치아에선 곤돌라를 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곤돌라는 그들에게 낭만의 상징이다. 
 
곤돌라 한 대에 6명(정원)까지 탈 수 있는데, 70유로 이상을 요구한다고 한다. 값은 흥정하기 나름이라고 가이드북은 전한다. "가급적 함께 타고 싶다"는 한 한국인 그룹의 가벼운 권유를 가볍게 거절하고,우린 수상버스와 걷기로 베네치아 관광을 마무리했다. 
 
 
바폴레토의 리알토 역에서 또 물어물어 리알토 다리를 찾아갔다. 리알토 다리는 16세기에 만들어 졌다. 당대 최고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하나, 이탈리아에 와서 예술작품을 워낙 많이 봤기 때문인지 이렇다할 감흥은 없었다. 투어를 웬만큼 했다고 느꼈을 때 여행 가이드북에 올라 있는 '알라 마돈나'라는 음식점을 찾아 갔다가 이곳이 2009년 1월에 없어졌음을 확인했다. 
 
 
이 지도를 보고 이 음식점이 있다는 곳을 빙빙 돌고 있으니 방글라데시 쯤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이방인이 접근했다. (이탈리아의 밑바닥 계층에 방글라데시에서 온 사람들이 매우 많은 것 같다.) 그와 대화를 나눈 끝에 '알라 마돈나'가 문을 닫았음을 알게 됐다. 그 이방인은 우릴 꼬드겨 자신이 일하는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마르코 호텔(Hotel Marco) 옆에 있는 플로리다 리스토란테(Ristorante Florida)였다. 
주문한 해산물 요리(seafood). 바닷가재,큰 새우,작은 새우, 가리비 등 해산물이 짭짤하다. 싱싱한 것과 소금에 절인 것이 섞여 있다.  소스가 우리 입맛에 딱 맞다. 
빵이 마치 과자 같다. 바삭바삭하고 한 입에 쏙 들어와 먹기에 좋았다. 건빵과 빵의 중간? 
 
이 음식점의 요리 값은 해산물 요리가 18유로, 오징어 먹물 스파게티가 14유로, 해산물 수프가 15유로였다. 부가가치세 12%는 별도다. 서양식 요리만 먹어 속이 거북해 느끼함을 없앨 필요가 있는 여행자에게는 이 리스토란테가 제격이다. 강추! 
플라자 호텔 모습이다. 이번 여행에서 묵은 로마의 우니베르소 호텔, 피렌체의 브루넬리스키 호텔, 베네치아의 메스트레 호텔,밀라노의 플라자 호텔 가운데 이 호텔의 만족도가 가장 낮다. 로마의 우니베르소 호텔은 로마의 땅값과 물가 등을 감안해 이해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베네치아 노선 열차의 끝에서 두 번 째 역 근처의 이 호텔 시설은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객실이 좁고, 인테리어가 후지고, 화장실 시설도 썩 좋지 않다. 여행사들이 재고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선 비교적 어렵지 않게 투어를 마쳤다. 이제, 패션의 도시 밀라노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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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2001년, 에쿠니 가오리.츠지 히토나리 원작)의 배경은 이탈리아의 피렌체 두오모(대성당)와 밀라노다. 이 가운데 가슴 짜릿한 감동을 안겨주는 장소,두오모에 드디어 왔다.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다.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곳. 
 
피렌체 두오모 입구에서 가파르고 좁은 400계단을 헐떡거리며 오르면 두오모 돔(dome)에 오르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인 일본 남성 쥰세이 아가타(수채화 복원 전문가)와 보석상에서 일하는 일본계 중국 여성 아오이가 10년 전 약속한 시간에 만나는 운명의 장소,변치않을 사랑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곳이다. 
 
" 피렌체의 두오모는 연인들의 성지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곳. 언젠가 함께 올라가 주겠니? "

" 언제? "

" 글쎄... 한 10년 뒤 쯤?  약속해 주겠어? "

" 좋아. 약속할게 ."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 도착했다. 경찰의 도움말을 바탕으로 길을 수 차례 물은 끝에 피렌체 두오모(대성당) 옆에 있는 고급 호텔 브루넬리스키 호텔을 찾았다. 체크인하고 짐을 풀어 놓은 직후 두오모 광장으로 나왔다. 
 
광장을 확인한 뒤 그 유명한 '다비드상'이 있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찾아 구경한 뒤, 다시 두오모 광장으로 나왔다. 가이드 없는 해외여행은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두오모 돔(dome,꼭대기,cupola)으로 올라가는 입구를 발견하지 못하고 빙빙 돌다가 겨우 찾았다. '아는 길도 물어서 가라"는데 그냥 표지판 같은 걸 찾으려고 애쓰다 가까스로 찾아냈다.  
 
 
"와! 드디어 찾았다"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두오모 돔 입구는 겨울이어서 그런지 전혀 붐비지 않았고 눈에 썩 잘 뜨이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입장료 8유로씩을 내고 두오모 돔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두오모 돔은 여름에 오면 오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무려 400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계단이 좁아 뚱뚱한 사람은 고생길이 훤하다. 나이가 들어 무릎이 아프면 올라가길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두오모 돔 계단의 중간에 이르면 원형 난간이 나온다. 이곳에선 가다가 멈춰선 안된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기 때문에 지체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두오모 천장 그림이 아름답다. 
 
이탈리아에선 모든 게 예술이다. 건물도 그렇고, 패션도 그렇고, 심지어 사람도 그렇다. 눈이 매우 예쁜 남녀가 적지 않다.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배우처럼 보인다. 로마에서 피렌체로 오는 기차에서 나란히 앉은 젊은 두 남녀 가운데 여자는 내 옆에,남자는 마누하님 옆에 앉았다. 원래 좌석은 우리가 창쪽이었으나 젊은 그들에게 양보했다. 
 
대각선으로 앞에 앉은 남자의 눈이 너무 아름다워 경탄을 하며 힐끗힐끗 쳐다봤더니 마누하님이 "당신, 호모에요?"라며 낄낄댔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사랑을 영원히 약속하는 두오모 돔으로 난 올라가고 있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고 피렌체 두오모 관광을 오랫동안 꿈꿨다는 마누하님은 정말 감개가 무량한 것 같다. 로마에서 투어를 같이 했던 젊은이들을 여기서 만나자 인삿말을 건넨 데 이어 곧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혹시 봤으냐고 묻는다. 여러 커플이 봤다고 답했다. 그들은 역시 영화 속 낭만과 사랑을 꿈꾸는 젊은이들이었다. 돔을 한 바퀴 빙 돌면서 사진을 여러 차례 찍고 나니 약간의 현기증이 몰려온다. 내게 고소공포증이 '쬐끔'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누하님은 돔에 가급적 오랫동안 머물고 싶어 했으나, 내 상황을 알아채고 내려가자고 한다. 집에 돌아와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를 보곤 피렌체에서의 행복한 시간들을 다시 떠올려 본다. 피렌체 브루넬리스키 호텔은 객실 디자인이 대단히 독특하고 예술적이었고, 시설도 고급 호텔로서 손색이 없었다. 마누하님이 가장 만족한 호텔이다. 브루넬리스키 호텔은 피렌체 두오모 돔과 함께 영원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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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비 분수를 찾아 동전 한 개 던지려고 온갖 고생을 다했다. 가이드 없이 찾아다니는 자유여행을 한 탓이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피로감이 부쩍 부쩍 쌓였다. 당초 이탈리아 여행을 배낭여행 수준으로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걱정이 컸다. 
 
젊은 나이도 아닌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만류하는 분위기 일색이었다. 하지만 비용 문제도 고려했고,무엇보다도 두 번 다시 하지 못할 수도 있는 '자유여행'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오후 늦게 로마에 도착해 우니베르소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낸 뒤, 사실상 첫 로마 관광은 가이드 투어를 했다.하지만 이후엔 모두 옆지기와 내가 물어물어 찾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호텔에서 지도를 보고 여행계획을 세웠다. 
 
로마 지하철 테르미니 역에서 세 번째인 스파냐(Spagna)역에서 내려 스페인 광장(Plazza di Spagna) 앞의 명품 숍들을 둘러보고 아우구스투스 황제 묘를 본 뒤, 트레비 분수-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원기둥-판테온-베네치아 광장-캄피돌리오 광장-진실의 입 광장-포로 로마노-콜롯세움을 구경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오후 7~8시에 콜롯세움의 모습이 가장 예쁘다는 말을 듣고 짠 관광계획이었다. 콜롯세움을 본 뒤 바로 옆에 있는 콜로세오(Colosseo) 역에서 지하철을 타면 세 정거장 째가 테르미니 역이다. 
 
이 역에서 숙소인 우니베르소 호텔까지는 걸어서 2분이면 갈 수 있다. 하지만 엄청 헤매는 바람에 코스가 많이 헝클어졌다. 
 
로마의 스페인 광장 앞이다. 이 사진의 왼쪽 일대엔 구찌 등 각종 명품의 거리가 즐비하다. 여자들이 눈 쇼핑(eye shopping)을 하기에 딱 좋다. '지름신의 강림'에 맞서야 함은 물론이다. 
 
스페인광장에 있는 계단이다. 계단 위로 트리니타 델 몬티 교회가 보인다. 스페인광장 앞의 명품거리에서 이곳저곳 많이 들러 구경했다.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아이쇼핑이고, 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아이쇼핑이다. 다행히 몇 달 전부터 스타일에 대해 관심을 가진 터라 함께 아이쇼핑을 하는 게 전혀 괴롭지 않았다. 
 
밟히는 게 명품 숍이다. 스페인광장에 도착했을 땐 너무 이른 아침이라 숍들이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묘를 둘러본 뒤 다시 와서 쇼핑을 하기로 했다. 지도를 보고 묘를 향해 떠났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 와 있었다. 이탈리아 여행 가이드북의 부록인 로마 지도의 축약이 몇 분의 1인지는 모르겠으나, 지도가 매우 정교하게 그려져 있으니 이 점에 주의해야 겠다. 하지만 지도 읽는 감각이 무딘 탓에 여행이 끝날 때까지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아우구스트 황제의 묘를 찾아 걷는다는 게 엉뚱한 유물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현장을 확인해보니 스페인광장에서 서쪽으로 가야 하는데, 북서쪽으로 한참 와 있다. 포폴로 광장에 발을 딛고 서 있다. 
이왕 온 김에 기념사진을 찍고 다리를 쉬게 했다. 탑 등 조형물엔 라틴어로 쓰여 있어 정확히 의미를 파악하는 건  무리다. 독법을 잠깐 배우긴 했으나, 로마에 대한 짧은 지식으로는 제대로 풀이하기가 어렵다.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 지도를 보고 다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묘를 찾아 떠났다.  
 
가까스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묘에 도착했다. 이곳에선 관광객을 볼 수가 없었다. 너무 이른 시각이거나 로마 관광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리는 게 분명하다.  이곳이 종점인 버스가 있는데도 한산하다. 
 
이 황제의 묘는 참 쓸쓸하다. 관리소도 없다. 역사 속의 그를 떠올리며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스 계획을 바꿨다. 스페인광장 앞으로 돌아가 명품 아이쇼핑을 한 뒤 판테온에 들렀다가 트레비 분수로 가기로 했다. 아이쇼핑을 한 뒤 판테온 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번에도 한참 걷다보니 또 엉뚱한 곳에 와 있다. 확인해 보니 테베레 강 옆이다. 이것 참! 하는 수 없다. 이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강 근처 길가에 있는 타베르나 리페타 리스토란테(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메뉴를 달라고 해보다가 웨이트리스에게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파스타와 닭고기 요리 각 한 종류와 전채 요리, 그리고 이탈리아 맥주를 추천받았다. 파스타는 면이 넓적한 것이다. 
 
그럭저럭 입맛에 맞다. 전채 요리는 맛있다. 닭고기 요리는 맛이 약간 독특하다. 하지만 도전했으니 심리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비르(맥주)는 뭐,아무런 문제가 없다.  49유로나 썼다. 
로톤다 광장이다. 이 광장 옆에 웅장한 고대 신전인 판테온이 자리잡고 있다.  광장 옆에는 레스토랑과 술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관람객들도 상당히 많다. 광장의 오벨리스크 옆에 앉아 발품을 쉬게 한 뒤 기념 사진 찰칵! 
 
판테온은 공사 중이다.(공사 중인 사진의 행방이 묘연하다.뭔가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판테온 전면의 오른쪽 출구를 통해 들어 갔다. 판테온은 '모든 신들의 성전(聖殿)'이르는 뜻이라고 한다. 판테온은 고대 건축물이니 2000년도 더 된 세계적인 유물이다.  판테온은 이후 교회로 바뀌었다고 한다. 내부엔 기도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아르젠티나(아르헨티나) 광장에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기념관으로 가는 사이에 있는 로마 유물 발굴 현장이다. 이 근처 여러 곳에서 이런 현장을 발견했다. 로마 사람들은 건축을 하다 유물이 발견되면 재산 상의 피해를 보기 때문에 유물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주 같은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개발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에 유물이 발굴되는 걸 당연히 싫어한다.  
 
판테온에서 트레비분수 쪽으로 가야 하는데, 로마박물관과 아르젠티나 광장 일대를 빙빙 돌면서 다리를 힘들게 했다. 특히 아르젠티나 광장을 네 차례나 밟는 시행착오를 저질렀다. 우! 힘들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과 소통이 힘들다. 하는 수 없이 아르젠티나 광장 옆 커피숍에서 쉬면서 이탈리아어로 길을 묻는 표현을 적어 묻기로 했다. 
 
행인이 가르쳐준 방향으로 왔는데, 또 엉뚱하게 비토리오 에마누엘레2세 기념관에 이르렀다. 이 기념관은 이탈리아의 현충원에 해당한다. 뜻밖에 마주친 곳이나 나름대로 의미를 두기로 했다. 이탈리아 통일을 이룬 초대 국왕을 기념하는 곳이며, 무명용사의 묘,위령비가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또 하나의 큰 착오가 발견됐다. 
 
아르젠티나 광장 옆 커피숍에 이탈리아 관광 가이드 책을 놓고 왔음을 알게 됐다. 몸과 마음은 피곤하고 화가 치밀었으나 꾹 참았다. 무척 미안해 하는 마누하님에게 괜찮으니 다시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책을 찾은 뒤 다시 트레비 분수를 찾아 떠났다. 수 차례 묻고,수 차례 지도를 확인하고, 길을 오르고 내려가고 한 끝에 드디어 트레비 분수를 찾았다. '고생 끝에 낙'인가. "아이쿠 다리야!" 
트레비 분수다. 분수 바닥엔 뜻밖에 동전이 썩 많지 않았다. 시 당국이 최근 건져냈을까?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지 않으면 두 번 다시 이탈리아에 올 일이 생기기 않는다는 속설을 거스리지 않기 위해 분수에 동전을 힘껏 던졌다. 
 
이곳에도 젊은 한국 관광객이 적지 않다. 교교생 또는 대학 새내기로 보이는 여학생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여학생은 "두 분이 참 잘 어울려요."라고 덕담을 해줬다. 
발품을 참 많이 팔고, 묻기도 참 많이 해서 트레비 분수에 왔으니 달콤한 맛을 봐야 겠다. 인근의 젤라토(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개 당 3유로나 주고 사서 먹었다. 시원하고 달콤하다. 마누하님이 이탈리아에서 가장 필이 꽂힌 것 가운데 하나가 젤라토다. 
 
트레비 분수에서 길을 물어 바르베리니 역까지 오는 도중에 그림도 하나 샀다. 길거리 화가가 그린 그림인데, 무척 섬세하게 그려놓아 놀랐다. 바르베리니 역을 확인한 뒤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약국을 발견, 일본제 파스(살렘 파스)를 2만 원 넘는 돈을 주고 샀다. 너무 비싸지만 발바닥과 무릎 보호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  
 
호텔로 돌아와 씻은 뒤 잠을 청하고 싶을 정도로 피로했지만, 콜롯세움 관광을 강행했다. 방글라데시 등 후진국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잡상인들이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바람에 화가 났다. 하루 종일 걷고, 묻고,헤맨 탓에 신경이 날카로워 졌다. 
 
그 옛날 네로 황제 등의 유희를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하다. 콜롯세움엔 부서진 곳이 많아 걱정이 됐다. 고건축 복원 기술자들의 섬세한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밤이라 지나는 행인이 혹 강도로 돌변하지 않을까 불안했다. 로마 둘쨋 날 혼자 밤에 거리에 나갔다가 준(準)강도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눈이 불량하게 생긴 로마인 두 명이 다가와 "당신 영어 할 줄아느냐"고 묻더니 "폴리스!"라고 외치면서 가짜 신분증을 꺼냈다. 순간 "노! 탱큐"라고 크게 외쳤다. 인근의 레스토랑에서 나오던 젊은이들이 관심을 기울여 줬다. 순간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숙소 우니베르소 호텔로 부리나케 돌아왔다. 어느 나라, 어느 거리에도 소매치기나 사기꾼 또는 강도가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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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초인적(超人的)인 예술혼(藝術魂)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아무리 무식하다고 하더라도 그의 예술을 향한 투혼을 언젠가 듣거나 읽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이를 피부로 느낀 것은 태어나 처음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의 혼을 체감하고, 크나큰 교훈을 얻은 것만으로도 여행 경비의 몇 배는 건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아마 몇 년 뒤 내가 또다른 멋진 모습을 보인다면 그건 거의 미켈란젤로의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미켈란젤로는 내 가슴 속에 있다. 
그는 찬란한 기계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루지 못할 일을 해냈다. 그의 위대한 예술정신은 무엇보다도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에 깃들여 있다고 생각한다. 미켈란젤로가 생존했을 당시의 여러 상황이 그에게 매우 불리하고,특히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억압적 청탁'의 무게를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교황이 아무리 윽박질렀더라도, 원래 건축가인 미켈란젤로가 온갖 역경을 뚫고 시스티나 성당(Capella Sistina,영어 Sistine Chapel)의 천장 그림을  완성한 대목에 이르러선 인간적으로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펑펑 울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미켈란젤로는 고난의 4년 8개월 만에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려냈다. 
추기경들이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장소인 '카펠라 시스티나'는 '시스티나 예배당'이라고 번역하는 게 정확하다고 하나, 국내 언론에선 '시스티나 성당'으로 표기해 왔다. 시스티나 성당 안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플래시가 그림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시스티나 성당이 있는 바티칸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여름엔 3시간 동안 줄을 서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워낙 북적이기 때문에 미술관 등의 내부 체감온도는 섭씨 40~50도나 된다는 것이다. 

매년 500만 명 정도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보고 감탄을 토내 낸다. 미켈란젤로는 아파트 7층 정도 높이의 천장에 그림을 그렸다. 건물을 지을 때 설치하는 비계를 깔고,천장에 구멍을 뚫고 천장 밑에 또 하나의 천장을 만들어 밑에서 자신을 보지 못하게 작업공간을 구축했다. 미켈란젤로는 그 비좁은 공간에서 4년 2개월에 걸쳐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하루 평균 무려 20시간이나 그림을 그리는 데 열중했다. 그 때가 그의 나이 33~37세로 최절정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그의 혹독한 작업열은 그의 심신을 망가뜨렸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작업을 하면서 신경쇠약에 시달려야 했다. 또 어깨가 망가져 통증을 호소했다. 몸이 한 쪽을 돌아가고 뒤틀려 침대를 놓고 누운 자세로 그림을 그려야 했다. 피부병에 걸리고 척추가 망가지고 눈이 돌아갔다. 이런 역경을 뚫고 미켈란젤로는 마침내 1512년 방대한 천장화를 완성했다. 

미켈란젤로의 아버지는 그에게 죽은 큰 아들의 이름을 붙여 줬다. 그의 엄마는 미켈란젤로가 6세 때 세상을 떠났다. 소년가장처럼 지내던 미켈란젤로는 14세 때 아버지에게 "화가가 되겠다"고 선언하고 공방에 들어갔다. 그는 15세 때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선배들에게 대들다 맞아서 코뼈가 망가졌다고 한다. 그는 채석장과 돌,석공에 매료됐다. 돌 빛깔과 석공들의 근육질 몸매에 사로잡혔다. 이 때문에 미켈란젤로는 "인간은 다 아름답다"며 조작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나이 16세 때의 일이다. 

메디치가의 원조를 받게 된 그는 커다란 석고를 하나 구했다. 그리고 '낮잠 자고 있는 큐피터'을 만들어 똥을 묻히고 동물의 뼛가루를 뿌리고 땅 속에 묻어 두었다가 시간이 한참 지난 뒤 꺼내어 추기경에게 비싼 값으로 팔았다고 한다. 옛 유물인 것처럼 꾸미고 속임수로 높은 값에 팔아넘긴 희대의 사기극을 연출한 셈이다. 하지만 재능을 인정받은 미켈란젤로는 '술의 신 바쿠스' 조각의 제작을 맡기도 했다.  

미켈란젤로는 22세 때 교황 율리우스2세의 부름을 받아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 있는 조각품  '피에타'를 만들었다. 그는 31세 때 또 교황에게 불려갔다. 교황은 그에게 "10000만의 무덤을 만들어라"고 지시했다.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돈과 신용으로 이탈리아 곳곳에서 작업에 쓸 대리석을 사들여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가 큰 생겼다. 

교황이 작업만 지시하고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에게 항의했다. 그 때 브라만테라는 건축 설계자가 교황에게 "미켈란젤로에게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하시죠. 그래야 조각가인 그가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걸 포기할 것입니다"라고 건의했다. 원래 조각가인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는 걸 거부하면 그걸 핑계삼아 돈을 주지 않을 속셈이었다.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려보라는 제안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교황 율리우스2세와 브라만테의 예상을 깨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다. 미켈란젤로는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천장화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가리고 그리겠다는 게 그 하나였다. 두 번 째 조건으로는 천장화를 다 그리면 자신이 받을 돈을 다 달라는 것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가운데 '노아의 방주' 3꼭지를 그리는 데는 1년 8개월이 걸렸다. 20m 밑에서 '노아의 방주'에 그려넣은 비둘기가 보이지 않자 미켈란젤로는 스케치 방식을 바꾸고 배경을 없애고 그림을 크게 고쳤다. '아담의 탄생'의 완성에는 6개월이 걸렸다. 미켈란젤로는 3가지를 얼개로 '아담의 탄생'을 그렸다.

첫째 빛과 어둠이요, 둘째는 해와 달과 초목,셋째는 땅과 하늘.인간.휴식이었다. '아담의 탄생'에선 하나님의 엉덩이를 크게 그리는 바람에 종교재판에 회부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하나님과 아담의 속끝과 손끝은 닿지 않게 그렸고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바람을 상징하는 망또로 '바람을 타고 오시는 하나님'을 형상화했다. 그런데 아담의 눈은 하나님을 보지 않고 이브를 보게 그렸다. '천지창조' 가운데 '빛과 어둠을 가르신 하나님'은 불과 하룻 만에 해치웠다. 

한편 작업 초기의 어느날,미켈란젤로는 교황과 말다툼을 하다 얻어 맞았다. 분개한 그는 작업을 중단하고 피렌체로 도망가 버렸다. 이후 6개월 동안 교황의 복귀 지시를 따르지 않고 피렌체에서 버텼다. 교황 율리우스2세가 피렌체 당국에 미켈란젤로를 로마로 보내라고 요구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한편으로는 미켈란제로에게 편지를 보낸다. 교황은 미켈란젤로에게 '경(卿)'이라는 칭호를 쓰면서 미켈란젤로에게 로마로 복귀해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작업을 속개해 달라고 간청했다. 미켈란젤로는 교황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결국 교황의 사과를 받은 미켈란젤로는 로마로 돌아와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4년 8개월 만에 천장화를 완성했다. 

피렌체 도피 6개월을 뺀 나머지 기간 중 미켈란젤로는 그림을 그리는 데 전심전력을 기울였다. 이 대목에서 감격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미켈란젤로가 보여준 예술혼과 극한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투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전심전력을 쏟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자신감을 안겨준다. 로마 자전거나라 가이드 김민주 가이드는 "실직하신 분, 직장을 잡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젊은 분들 모두 미켈란젤로에게서 교훈을 얻어가시라"고 말했다. 언즉시야(言卽是也)!  말인 즉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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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코테카(Pinacoteca)는 그림(Pinaco)를 모아둔 방(teca)을 뜻합니다. 서기 1100년 이전의 것은 회화라고 할 수 없고, 12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것은 회화라고 부릅니다. 원근법과 사람,얼굴이 등장한 시기죠."
 
로마 자전거나라 김민주 대리의 가이드는 탁월했다. 매우 열정적이고,유머러스하고,지식이 잘 정리돼 있었다. 그녀의 가이드를 받은 건 큰 행운이었다.  
바티칸시티 교황궁 안의 바티칸미술관(Musei Vaticani)은 어두웠다. 미술관의 조명 원칙은 자원 채광이다. 밖에서 스며드는 햇빛으로 회화를 감상하게 돼있다. 빛은 그림에 썩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곳곳에서 그런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사실 한국을 떠날 때부터 메모를 잔뜩하리라 마음먹었다. 받침대 역할을 할 하드커버 노트를 챙겨갔다. 첫 번 째 방부터 노트를 꺼내 열심히 메모하기 시작했다. 마치 숙제를 하기 위해 미술관을 찾은 중고교 학생 같았다. 가이드의 설명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는 듯한 열정이 샘솟았다.  
"지금은 유럽 학교의 현장학습기간이라 학생 관람객들이 많아요. 피에타(pieta)는 죽은 예수와 애통해 하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그린 미켈란젤로의 작품입니다. 피에타는 영어 'pity'의 어원이에요. 세계에서 유명한 피에타는 3곳에 있습니다. 바티칸,필리핀,그리고 한국의 분당 마리아성당에 있습니다." 
 
미술관 안에선 아이폰3의 렌즈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 청년이 내게 다가와 메모지 한 장만 뜯어달라고 부탁한다. 이날 투어에선 내가 학습열과 관심을 높이는 데 한 몫 한 것 같다. 전체 관광객들의 집중도를 높이는 데 한줌의 도움이 됐길 바란다.  메모는 계속된다. 
 
"1200년대 이전엔 문맹자(illiterate)가 많았습니다. 종이와 책을 거의 못 봤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읽지 못하므로 성당에 와서 그림을 읽고 가라는 의미에서 회화를 많이 부착해 놓았습니다. 계란 노른자와 물감을 섞어, 나무 위에 그린 그림이 적지 않습니다. 그 당시엔 신과 인간을 구분했죠. 머리 위에 후광이 있으면 우리와 차원이 다른 신을 뜻합니다. 사람을 먹고 있는 뱀은 '지옥'을 의미합니다."  
" 피렌체의 두오모(대성당 이라는 뜻)의 그 유명한 돔을 만든 사람이 지오토(좃토)라는 화가입니다. 양치기 소년 출신인 그는 옷에 그림자와 주름을 그려 넣었습니다. 입체감을 살리고 사람을 모델로 얼굴을 그렸다. 지오토가 그림에 파리 한 마리를 그려넣은 적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그의 그림 선생이 파리를 쫓기 위해 그림 위에서 손으로 저었는데, 파리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참 후 선생은 실제 파리가 아니라 그림인 걸 알고 서럽게 울었다고 합니다. 제자에게 뒤지는 자신의 재능을 탓하며 통곡한 겁니다. 이 일화는 지오토의 친구인 단테의 시에도 나옵니다. " 
그림 속 머리의 후광은 천사를 뜻합니다. 이 시대 그림에선 가운데가 가장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림을 잘 이해하려면 손에 들고 있는 것(아이콘,icon)을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열쇠'를 들고 있으면 베드로(시몬 또는 사이몬,갈대 라는 뜻)이며, 반석을 뜻하는 돌(피에뜨로,피에르,피터,베드로) 을 들고 있어도 제1대 교황 베드로입니다. 
 
열쇠는 교황의 상징이며 '하늘의 열쇠 권한'을 가진 자죠. 털옷을 입고 있는 남자는 세례 요한(예수가 세례받은 선지자)이고,  털옷을 입고 있는 여자는 마리아 막달리나(창녀)입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는 성모 마리아입니다. 순례자의 지팡이와 성경을 들고 있으면 '스페인 소(小)성인'을 뜻합니다. 즉, 산티 이아고(산티아고)죠. 가리비를 들고 있으면 야곱(야고보 성인)입니다. 큰칼을 차고 있으면 목이 베이는 참수형을 당한 사울인데, 그는 예수를 만난 적이 없는 관리로, 예수를 박해한 인물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시각장애인(소경)이 됐다가 예수의 권능(안수기도)으로 눈을 떴습니다. 그는 회개한 뒤 높은 자에서 낮은 자(바울,빠오로)가 됐습니다. 사울은 로마 시민권자여서 고문을 못하기 때문에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당시 가장 나쁜 형벌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것이죠. 예수는 매를 2450대 맞고 손목과 뼈 사이에 못을 박아 죽이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수염이 없는 남자로 어리고 예쁘게 생겼다면 그는 마지막 사도인 예수의 제자 요한입니다.(세례 요한과 다르다) "   
"템페라는 나무에 물감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가브리엘천사가 마리아에게 임신 사실을 통보하는 '수태고지' 같은 게 템페라죠.  멜라쪼 다 포로리(포로리 출신의 멜라쪼)의 작품인 '음악천사'는 이탈리아 교도소에서 정신병자들에게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 1300~1400년엔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뀌고,  신을 인간으로 느낀 겁니다. 피렌체의 메디치가(家)는 원래 농사를 짓는 가문으로, 약초 농사를 짓고 알약을 제조해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래서 메디치가의 문양엔 알약이 그려져 있죠. 고리대금업을 하지 않고 합리적인 이자를 적용해 채권.어음으로 시민.귀족.교황에게 돈을 빌려줬습니다. 이를 통해 명망을 얻었습니다. 메디치가의 남자들은 유전병으로 50세 이전에 사망했는데 좋은 일을 더 많이 하기 위해 아카데미아(일종의 예술대학)를 세워 보티첼리,미켈란젤로,레오나르도 다 빈치,보카치오 등에게 장학금을 줘 공부하게 했습니다. 
 
메디치가의 여자인 안나 마리아(당시 우피치 가문)는 죽으면서 메디치가의 전 재산을 피렌체에 기증했습니다. 그녀는 "외국인에게는 관람료를 받아라"는 등의 유언을 남겼습니다." 
 
"시스티나 성당은 교황 식스토4세가 건립했습니다. 그의 가문 문양으로는 도토리가 쓰였죠. 당시의 추기경 70명 가운데 9명이 그의 조카(또는 아들)였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교황이 됐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게 한 교황 율리우스 2세입니다." 
 
"이탈리아 남쪽에선 돔과 벽화가 발달했습니다. 반면 북쪽에선 스테인드글라스가 발달했죠.햇볕이 적어 반죽 그림이 잘 안먹혔기 때문이랍니다."  
 
"'론지누스의 창'은 예수의 옆구리를 칼로 찔러 확인사살한 자의 창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에 적혀 있는 라틴어 I.N.R.I ( IESVS · NAZARENVS · REX · IVDÆORVM)는 그의 죄명이고,  "그는 '나사렛 사람 예수,유다인의 왕'이라고 합니다"라는 뜻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엔 인간 중심의 그림이 그려졌습니다.사람 얼굴이 예쁘죠. 화가들이 순정만화처럼,그리스 조각상(8등신)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림이 좌우 대칭을 이루는 것도 르네상스 시대 그림의 큰 특징입니다." 
 
메모 노트가 꽤 여러 장 채워 졌다. 12번 째 문에 이르러선 정신이 혼미해 졌다. 미술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데 중간중간 사진 찍고, 가능한 한 많이 메모하고, 일행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아둥바둥 대자니 적지않게 힘이 들었다. 
 
로마 자전거나라 가이드(김민주 대리)에 의하면 여행은 일주일부터 보름 사이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어떤 여행자는 이 기간에 "십자가를 보면 부러뜨리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로 피로감이 쌓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이드가 아무리 재미있게 이야기해도 모두들 '좀비'처럼 웃지도 않고,사진도 잘 찍지 않고,음식도 맥없이 먹는다고 한다. 바티칸미술관의 첫 번 째 방부터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청하며 메모를 했더니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 심판하는 예수님은 푸른색 옷(코발트 블루)을 입었습니다. 이 옷은 금보다 더 비쌌습니다.  '베드로(바울) 성인의 죽음'에선 머리가 물이 튄 자국처럼 3번 튄 모습을 보이는데,이는 예수보다 더 힘들게 거꾸로 십자가형(책형,磔刑)을 받은 것을 묘사합니다. 가장 나약한 존재,즉 우리를 뜻합니다. 400년 후에 똑같은 그림이 나오는데, 발에 못을 막을 때 베드로 성인이 고함을 치죠. "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죽은 예수를 성모 마리아가 안고 애통해 하는 그림입니다. 피에타 이후 유사 작품에선 예수를 요한이 안고 있습니다. "  
"라파엘로 특별관에서 보는 '그리스도의 변용'은 예수의 얼굴이 바뀐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이 변한 거죠. 이 작품은 라파엘로의 유작입니다.이밖의 작품으로는 '성모의 대관식''모나리자' 등이 있습니다. 이 시기의 특징은 45도 각도와 손이 등장하고 , 연기 기법(Sfumato) 즉 사람에 초점을 맞추면 뒤로 갈수록 희미해지는 기법이 쓰입니다. 해부 기법도 중요한 사실입니다. 라파엘로는 죽을 때 '판테온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  
 
 "후기 르네상스 그림의 특징은 매너리즘(mannerism)입니다. 13등신 성모마리아,9등신 아기 예수 등 무리하고 터무니없는 그림이 많습니다. " [ 예수의 12제자 중 가롯 유다는 그리지 않았다. 30냥에 예수를 팔아넘긴 그는 자살했다. / 도마(손가락 하나)=의심 많은 사람. 도마가 예수의 옆구리에 손가락을 넣은 장면./ 정신병자 화가 카라바초 '관 속의 성모 마리아' (모델 폭행죄 등으로 옥살이했고 도망다녔다) / 천사의 성(교황 그레고리 9세가 미카엘 천사장을 본 뒤 페스트의 창궐이 끝났다) /deposition(관에 집어 넣는 장면) ]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화)는 화가 귀도 레니의 작품입니다. 강간한 아버지를 무참히 살해한 죄로 '천사의 성'에서 처형됐죠. 이 그림은 그녀가 마지막 죽기 전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입니다.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이 이 그림을 보고 미술관을 나가다 숨이 막혀 기절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같은 현상을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불렀답니다. "  
  "전쟁 시기 이탈리아의 그림은 침침하고 우울합니다. 여자가 남자의 목을 베는 모습은 '유디트'라는 유대의 과부입니다. 카바라죠(미켈란젤로 다 카바라죠)의 작품입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유디트는 적진으로 잠입해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애국자입니다. '유디트'는 목을 자르는 모습을, 살로메는 잘린 목을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유의해야 합니다.  구스타프 클림프의 유디트와 비교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기나긴 터널을 거쳐 바티칸미술관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왔다. 이제 조형관(조각관)으로 넘어갈 차례다. 실내로 들어가기 전에 마주친 이른바 '솔방울 정원'은 사진도 찍고, 맑은 공기도 마실 수 있는 고마운 공간이다. 특히 흡연자에겐 구세주와 같은 존재다. 솔방울 정원의 공작새는 영원불멸을 뜻한다. 공작새는 시신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초대 로마 황제 옥타비아누스의 상이다. 일명 '아우구스토'황제의 상이며, 아우구스토에서 영어 단어 '8월(August)'이 나왔다. 카이사르는 로마가 전쟁을 끝내고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도록 후계자로 17세의 옥타비아누스를 지명했다. 옥타비아누스는 병약했다. 카이사르는 위대한 장군이고,옥타비아누스는 위대한 정치가다. 옥타비아누스는 설사병으로 평생 고생했으나 77세까지 장수했다. 그는 '팍스 로마나'를 이뤘다. 
 
깨어지는 지구의 모습을 상징하는 공 모양의 조형물도 나름대로 멋있다. 계속 돌아간다. 
바티칸시티 우체국의 전시실이다. 우체국에서 엽서 한 장을 사서 한국에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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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시국(市國),즉 바티칸시티(Vatican City State)는 우리나라를 1984년 5월과 1989년 10월에 방문한 고(故)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그와 함께 '바보'로 통하는 고(故)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모습이 연상되는 곳이기도 하다. 약소국인 폴란드에서 조실부모하고 온갖 고생 끝에 학자가 됐고, 전세계 가톨릭신자 8억 명의 최고 목자로 추앙받는 교황의 자리에 오른 요한 바오로 2세는 방한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그는 김포공항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순교자의 땅,순교자의 땅"을 외치며 한국의 땅에 애정어린 입맞춤을 했다. 그 감격스러운 광경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요한 바오로2세가 대한민국의 땅에 감격의 키스를 퍼붓고 최상의 경의를 표한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우리 선인들이 이 땅에 순교의 피를 얼마나 많이 뿌렸는가. 그 덕분에 대한민국은 추기경이 있는 가톨릭교회를 갖게 됐다. 이 땅의 가톨릭 순교자 103명은 성인(聖人)의 위(位)에 올랐다. 1984년 방한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 가톨릭 순교자 103위의 시성식(諡聖式) 미사를 우리나라 말로 집전했다. 이 미사는 피를 흘리며 가톨릭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최대 공로자 103분이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한 종교 행사였다. 
 
 
훌륭한 치유 기적을 많이 시현한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성직자다. 아직 성인이 아니다. 고인은 2011년 5월 1일 성인의 한 단계 아래인 복자(福者)로 추대된다. 그러기 위해 거쳐야 할 절차는 시복식(諡福式)이다.  그의 유해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 성베드로성당)에서 세바스티안 예배당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고 얼마 전 보도됐다. 대한민국은 가톨릭 전파의 역사에서도 매우 자랑스러운 나라다. 추기경보다, 교황보다 더 높고 복자(福子)의 윗 단계인 성인(聖人)을 103분이나 조상으로 둔 매우 훌륭한 국가다. 그러니 아무리 교황이라해도 이 복음의 땅,선교자의 땅에 무릎 꿇고 경건한 마음으로 축복의 키스를 해야 마땅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방한 당시 한국어로 또렷하게 인삿말을 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슴깊이 절절하게 느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당시는 내가 기자가 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교황은 공자의 논어 도입부에 나오는 귀절인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訪來)하니 불역낙호(不亦樂乎)아'를 인용해 방한 인사를 했다.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 라는 말씀을 우리는 공자님의 논어 첫머리에서 듣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 '벗이 있어 먼 데로 찾아가면 그야말로 큰 기쁨이 아닌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친애하는 벗들이 베풀어주신 따뜻한 환영에 본인은 감격하고 있습니다." 
 
잊지 못할 그 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묻혀 있는 바티칸시티의 성벽이 눈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환호하는 사람도 여럿 눈에 띈다. 돈 보스코 성인을 받드는 살레시오 중학교를 나온 나는 가톨릭이 매우 친근하다.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3년 내내 기도하던 옛날의 내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바로 엊그제 일인 것만 같다. 인생무상이다.  
 
로마에 도착한 다음날인 1월 18일 오전 7시 30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Vittorio Emanuele)역에서 가이드와 접선했다. 편도에 1유로 하는 지하철 티켓을 끊어 지하철에 올랐다. 로마에는 지하철이 A라인(동서)과 B라인(남북)이 있다. 비토리오 역은 A라인에 속한다. 이 역에서 중앙역인 테르미니 역을 거쳐 목적지인 바티칸시티 교황궁 인근의 오타비아노(Ottaviano S.Pietro)역에 가려면 일곱 정거장 째에서 내려야 한다.  
 
로마 자전거나라 가이드 김민주 대리는 "소매치기를 피하려면 지하철의 맨 앞이나 맨 뒷 쪽에 타야 한다"며 "지하철 깊숙히 들어가고,배낭이나 가방은 앞쪽으로 매라"고 가르쳐줬다. 지하철의 중간 칸은 상대적으로 혼잡하니, 소매치기들이 주로 이곳에서 활약한다는 것이다. 혼잡으로 정신을 차리지도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외국 관광객을 노리는 건 '소매치기의 정석'이다. 
 
우리 팀은 모두 29명이었다. 중장년층은 두 커플이고, 나머지는 모두 젊은이들이었다. 부모들 덕분에 일찍 세상 만물과 접하는 행운의 세대다. 한편으론 "부모들은 뼈 빠지게 일하고, 스트레스를 칭칭 감고 사는데..."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이 우리나라의 미래이니까. "요즘 일본 아이들은 자폐증환자처럼 자기세계에 갇혀 지내고 해외에 나가길 매우 싫어한다는데, 우리 아이들은 진취적이어서 나라의 앞날이 매우 밝다"고 옆지기에게 말해 줬다.    
 
로마 자전거나라의 가이드 김민주 대리는 '바티칸시티 교황궁 투어'참가자들에게 귀에 꽂는 무선 수신기를 나눠줬다. 수신기의 볼륨을 키우면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도 가이드의 말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김민주 대리의 이야기다. 
 
바티칸시티는 약90년 전 국경이 확정됐습니다. (아비뇽유수....중략)  바티칸시티 성벽에 붙은 심벌에는 두 사람이 등장해요. 오른쪽 사람이 라파엘로입니다. 매우 잘 생겼죠. 왼쪽 사람은 미켈란젤로입니다. 재수없게 생겼죠. 성질도 나빠 (다른 사람들에게) 얻어맞아 코뼈가 부려졌답니다. 라파엘로는 37세에 요절했고,미켈란젤로는 89세까지 살았죠. "
 
바티칸시티의 교황궁 안에 있는 바티칸미술관(Musei Vaticani)의 입장료는 15유로(1유로는 약 1500원)였다. 6개월마다 1유로씩 오르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학생의 입장료는 8유로다. 파격적인 할인이다. 단 국제학생증이 있더라도 (올해 기준으로) 1984년 이후 태어난 사람들에게만 할인해 준다. 티켓 창구는 1번부터 9번까지 있다. 8,9번 창구에서 학생 할인을 해준다. 바티칸시티의 교황궁에 들어가려면 입국심사를 받아야 한다. 칼이나 삼각대는 반입할 수 없다. 가이드는 "카메라와 휴대폰은 가방에 넣으라"고 조언했다. 
 
바티칸시티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주권국가(독립국)이다. 테베레 강(Fiume Tevere) 서쪽에 있으며, 면적은 13만 3천 여 평에 불과하다. '레오나르도4세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바티칸시티의 인구는 950~1000명을 유지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는데, 2010년 현재의 인구는 829명으로 나와 있다. 바티칸시티의 교황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 하는 사람(피고용인)들이다. 성직자들은 대부분 로마에 산다. 2011년 현재의 교황은 베네딕토 16세다. 
 
바티칸시티에서 볼만한 것은 교황궁 안의 바티칸미술관과 교황궁 밖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 등 2곳이다. 
 
 
바티칸시티도 명색이 독립국이니 입국심사를 받고 들어갔다. 심사대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바티칸미술관으로 이동했다.  2층의 카페테리아에서 그 유명하다는 에스프레소(1유로)를 마셨다. 
가이드가 가르쳐 준 대로 '무조건 빨리 계산하고 영수증을 제시해' 에스프레소를 받아왔다. 그리고 설탕을 타서 훌쩍 마신 뒤,찌꺼기로 입맛을 바꿔줬다. 
 
바티칸미술관 내 카페테리아 자리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동안,바로 옆 창문 밖의 투박한 조형물에 휴대폰 렌즈를 들이댔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점은 아이폰의 엄청난 위력이다. 몇 년 된 외제 디지털카메라를 2대 갖고 갔으나, 이 디카의 성능이 아이폰3보다도 못했다. 부부의 의견일치. 언젠가 코닥필름처럼 디카도 종말을 고할 지 모른다. 아이폰4는 아이폰3보다도 더 선명도가 높다고 하고, 캠코더도 디카의 기능이 우수하니 디지털카메라를 굳이 따로 장만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본다. 디지털카메라의 죽음이 눈앞에 그려진다.  
 
"바티칸시티 교황궁의 투어는 곧 미술관(회화관) 구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 김민주 대리는 날씨가 맑으면 뒷쪽에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 선명하게 보이는 작은 광장에 일행을 집합시켰다. 광장의 소나무 아래가 약속장소로 쓰이는 모양이다. 광장에서 처음엔 잘 보이지 않던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 차츰 시야에 들어온다. 가이드는 이 대성당을 구경한 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천사의 성'을 구경하라고 권유했다. '천사의 성'옆에 있는 버스 40번 종점에서 테르미니 역까지는  25분이 걸린다고 한다. 
 
가이드는 바티칸미술관 관광에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고 예고했다.
 "피나코테카(Pinacoteca)는 그림(Pinaco)를 모아둔 방(teca)을 뜻합니다. 서기 1100년 이전의 것은 회화라고 할 수 없고, 12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것은 회화라고 부릅니다. 원근법과 사람,얼굴이 등장한 시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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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이탈리아 여행은 안성마춤이라고 할 정도로 좋았다. 한국이 혹한으로 고통스러운 반면, 이탈리아는 이상기후로 포근한 날씨가 계속됐다. 1월 17~24일 거의 대부분 날의 아침 최저기온이 영상을 기록했다. 게다가 비행기 숙박을 포함해 6박 8일(로마 2박 3일, 피렌체 1박 2일, 베네치아 1박 2일, 밀라노 1박 2일) 자유여행 상품이 1인당 약 215만원에 그쳤다. 내년에도 현지 기후.날씨를 파악해 올해와 마찬가지라면 이탈리아 자유여행을 강력 추천한다. 우리는 여행사 '레드캡 투어'를 이용했다.   
 
여행박사(www.tourbaksa.com)는 2월 5일 진에어로 출발하는 일본 규슈 사가공항 왕복 4박 5일, 2월 9일부터 3박 4일 왕복 항공권 9만 9천원 짜리 상품을 선보였다. 

2월 2일부터 5일 간의 설 연휴가 시작되면서 해외여행 출발의 마지막은 2월 4일이다. 긴 연휴 동안 해외여행은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난다. 여행상품 가격도 천정부지로 오르게 마련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 오른 가격은 2월 5일부터 바닥을 친다.   

이 때는 여행사 마다 확보해 놓은 항공좌석이 손님 없이 하늘로 사라지는 시기다. 좌석 확보에 열을 올렸지만 막상 연휴 끝 무렵에는 출발 손님이 없다. 빈 좌석을 그대로 떠나보내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싸게 고객에게 제공할 수밖에 없다. 덕분에 터무니없는 여행상품 가격이 쏟아진다. 

여행박사는 규슈 3박 4일, 4박 5일 왕복 항공권(49만 9천원)을 80% 할인해 9만 9천원에 판매한다. 또, 전통 료칸과 노천 온천욕을 할 수 있고 가족형 리조트로 인기 있는 아소팜랜드 숙박 패키지 상품을 55% 할인 판매한다. 

여행박사 심원보 홍보팀장은 “설날 연휴가 끝나고 바로 여행을 떠나기가 쉽지는 않다”며 “2월은 1년 중 가장 싸게 일본 여행을 할 수 있는 달”이라고 밝혔다.  50% 이상의 할인 가격으로 여행할 수 있는 지역은 규슈, 홋카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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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나라에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 시장을 찾아 나서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로마에 도착한 셋 째 날, 새벽 5시 30분쯤 새벽 장을 보러 갔다. 그 전 날 새벽에 혼자 산책을 나갔다가 만난 청과물 시장을 옆지기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시설이 형편없는 로마의 우니베르소 호텔에선 커피 포트도 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니글니글한 속을 달래려고 한국에서 챙겨간 컵라면을 화장실의 뜨거운 물을 받아 끓여야 했다. 외국인들에게도 최근 인기를 끈다는 라면을 익힌 듯 만 듯 조리해 먹었다.  "집 떠나면 모두 고생"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라면을 제대로 끓여 먹는 데 실패한 우리는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찾아 잠끝을 줄여야 했다. 

새벽 도깨비시장은 우니베르소 호텔 뒤편 골목에 섰다. 트럭으로 나른 청과물을 가판대에 뿌려놓는 장삿꾼들의 손이 잽싸다. 바나나,오렌지,밀감,서양 배,딸기 등의 가격표를 눈여겨 봤다. 낮에 가판대에서 만난 과일.채소 값의 절반에도 훨씬 못미쳤다. 

호텔,주점,식당 등 관광객들을 위한 시설만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에서 도깨비 시장이 얼마나 재미를 볼까 의아해 했는데, 가격을 보니 의문이 풀렸다. 이들 청과물은 거의 대부분 호텔에서 사들이는 것 같았다. 주변에 일반 가정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꼭두새벽에 우리 같은 관광객이 추위를 무릅쓰고 도깨비시장을 나서는 일도 드물기 때문이다. 

이 가게 종업원도 한국 사람에게 나름대로 호감을 드러냈다. 월드컵 때 우리나라가 이탈리아에 이긴 덕분인지도 모른다. 방글라데시 출신인 종업원은 "맛 있어' 등 몇 마디 한국어를 구사하며 조금이라도 더 팔려고 애쓴다. 

1996~1997년 영국에서 공부할 때의 경험 덕택에 서양 배는 더럽게 맛이 없는 걸 잘 안다. 또 사과는 붉은 색이 감돌면 푸석푸석하고 당도가 매우 낮다. 오렌지의 경우엔 알맹이를 봐야 알 수 있다. 이 역시 붉은 색이 감돌면 시고 맛이 없는 편이다. 딸기도 단맛이 한국보다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포도는 한국과 비슷하게 알이 굵고 붉은 색을 띄면 맛이 덜하다. 토마토,방울토마토는 오케이. 바나나는 만국 공통. 

같은 도깨비 시장 공간에서도 부지런한 사람과 덜 부지런한 사람의 가게가 눈에 띈다.학교나 회사에 지각하는 사람이 꼭 지각하듯, 가게들이 이틀째 좌판을 까는 데도 비슷한 시차가 보인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먹는다"는 속담은 도깨비 시장에서도 통하는 것 같다. 

 채소 가운데 신토불이 청과물과 사뭇 다른 것 가운데 하나가 가지다. 좌판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가지는 서양의 중장년 여자들처럼 뚱뚱하기 짝이 없다. 옆지기는 작은 양배추를 맛보고 싶어했으나, 고추장이 없어 포기했다. 어쨌든 경험칙에 따라 과일을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사과 맛 오케이. 딸기 맛 예상대로. 오렌지는 껍질을 벗겨보니 과육이 붉어 신맛이 강했다. 역시 경험은 중요하다. 세상사가 그렇고, 매사가 그렇다. 로마 자유여행이 힘든 것도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선험적 지혜도 필요하지만,경험적 지혜가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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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자유여행은 일종의 모험이다. 모든 걸 부닥치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더욱이 소매치기가 득실거린다는 '미확인 소문'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소매치기가 극성을 부렸다. 
 
경제발전이 되기 전엔 내국인,외국인 가릴 것 없이 호주머니와 지갑,가방을 털었다. 좀 잘 살게 된 뒤엔 주로 외국인을 겨냥했다. 로마도 사람 사는 곳인데 소매치기가 없을 리 없다. 주로 우리 같은 어벙벙한 외국인을 노릴 게 틀림없다. 바가지를 씌우는 로마의 사악한 택시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도 무성하다.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다.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해 파리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다.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 터미널 2E에 내려 셔틀버스를 타고 터미널 2F로 옮겨가 환승했다. 로마의 관문이라는 피우미치노 공항(일명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여기까진 식은 죽 먹기다. 또  "공항에서까지 소매치기들이 판 칠 리 없다"는 생각에 느긋한 기분이었다.   
 
 
공항에서 나오면 긴장의 도를 부쩍 높여야 한다. 당장 실수없이 로마로 가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여행자를 위한 가이드북 'Just go'엔 공항에서 로마까지 보통열차(FS-Train),심야버스,택시를 타고 갈 수도 있다고 돼있다. 
 
하지만 예약된 호텔이 테르미니 역(Stazione Centrale di Termini,테르미니 중앙역) 근처라면 굳이 다른 교통수단에 눈길을 돌릴 필요없다. 아마도 한국 여행사가 테르미니 역 근처에 숙소를 잡아줄 확률은 매우 높다. 공항에서 특급열차인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를 타면 된다. 
 
공항에서 짐을 끌고 기차 표시를 따라 가면 열차역이 나온다. 승차권은 자동 발매기를 이용해도 되나, 익숙하지 않으므로 곧장 개찰구 바로 앞에 있는 예약창구로 가서 손가락 두 개를 펴고 "테르미니 투(two)!"라고 외치며 돈을 냈다. 가이드북엔 편도 요금이 1인당 11유로로 나오나, 2011년 1월부터 14유로로 올랐다.(시공사는 가능한 한 빨리 정보를 업데이트 하길!) 
 
티켓을 받아들고 역무원이 가르쳐준 탑승구로 갔다. 여기서 주의 사항 하나! 탑승구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검표 기계가 있다. 티켓을 구멍에 넣으면 '찰칵' 소리와 함께 티켓에 구멍이 뚫리면서 확인된다.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는 30분마다 있다. 테르미니 역까지는 약 30분 걸린다. 
 
드디어 로마 최대의 중앙역인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과연 소매치기나 거지(홈리스)로 보이는 사람들이 꽤 많이 눈에 띈다. 바가지를 씌울 것으로 보이는 택시기사들도 이곳저곳에서 호객한다. "No,thankyou!"를 짧고 힘차게 외치고 역 밖으로 나온다. 
 
아예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줄 여유도 없다. 지갑과 가방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다행히 우니베르소(universo)호텔은 지도만 보고 찾기가 쉬웠다. 무릇 여행사는 이런 호텔을 잡아줘야 한다. 걸어서 줄잡아 2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니베르소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했다. 객실에 들어가 보니 별 4개 짜리 호텔치곤 너무 초라하다. 동행자의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마치 "내 인생이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좀 미안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유여행자를 위한 여행사의 조치인데. 방도 너무 작고 시설도 형편없다. 기억의 힘에 기대자면 외국에 나와서 이런 호텔에서 묵은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짜증이 솟았지만,마누하님을 더 불쾌하게 할까봐 꾹 참는다. 
짐을 방에 집어던지고 샤워부터 했다. 비행기 이코노미 석을 타고 먼 길을 날아왔더니 피곤하다. 비행기 안에서도 마누하님과 함께 "앞으로 더 나이가 들어 장거리여행을 할 땐 최소한 비즈니스 클라스를 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제를 놓고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또 "유럽 등 외국여행은 심신이 건강한 중장년에 다 끝내야 한다"는 데도 의견의 일치를 봤다. 
 
호텔 주변의 지형지물도 살필 겸 저녁식사도 할 겸 밖으로 나갔다.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리스토란테,ristorante)이 없다. 아메리칸식 식사를 하자고 했더니 옆지기가 기꺼이 응하지 않는다. 한참 걷다가 터키의 케밥 집을 만났다. "외국에 왔으니 색다른 음식에 도전해 보자"는 내 제안이 받아들여져 케밥 리스토란테에 들어갔다. 
 
한 외국인이 돌연 한국말로 "서울,한국(에서 왔느냐)?"라고 묻는다. 어쨌든 반갑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대충 의사소통이 된다. 케밥 리스토란테 주방장은 경기도 일원에서 산업연수생으로 몇 달 지낸 경험을 갖고 있다. 우리 말은 거의 초보수준이다. 그래도 아줌마,아저씨,맛있다 등 몇 마디는 할 줄 안다. 
 
반가운 마음에 두 사람이 각각 다른 종류의 케밥을 시켰다. 양이 엄청 많아 절반도 채 먹지 못했다. "돈 많이 벌어 부자 되라"는 덕담을 건네고 호텔로 돌아왔다. 내심 "저 방글라데시인이 한국에서 악덕 기업주를 만나 구박이나 폭행, 또는 임금체불 등을 당하지 않았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런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잠시 머무른 나라라고 우리를 반겨주었을 뿐이다. 
 
호텔 가이드 팸플릿에 보니 "인터넷은 무료"라고 돼 있었다. 안내데스크에 가서 와이파이 비밀번호(access code)를 물었더니 작은 서류를 프린트아웃해 건네준다. 곧장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세팅하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시도했다. 그런데 여기서 2박 3일을 보낸 뒤 체크아웃할 때 문제가 발생했다. 인터넷요금을 20유로나 내라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항의했더니 " 당신은 스스로 선택해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을 사용했기 때문에 유료"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호텔 비즈니스센터 옆에 있는 컴퓨터에서 잠깐 검색하는 것만 무료이고, 호텔 객실에서 내 마음대로 인터넷을 하는 것은 유료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1만원 정도를 내고 인터넷을 한 셈이다. 
 
기분이 매우 상했다. 가이드북을 보면서 내일의 일정을 의논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시차로 고생하기는커녕 코를 드르릉드르릉 골면서 잠만 잘잤다. 자유여행이지만, 내일 하루는 가이드를 따라 바티칸시국을 관광할 예정이다. (다음회에 계속) 
 
[이탈리아 여행 시리즈 예정]
* 바티칸시국은 미켈란젤로를 만나는 곳
* 트레비 분수를 찾아 엄청 헤매다
* 피렌체의 감동_호텔 그리고 두오모
* 베네치아 음식에서 '바다'를 맛보다
* 패션의 발상지 밀라노 다웠다
* 이탈리아의 으뜸 음식,으뜸 호텔
* 여행 가이드북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들
* 신들려 '작두 탄' 로마 자전거나라 가이드(김민주 대리) 
 
 
[로마에 관한 10가지 필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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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용카드는 호텔 체크인 할 때 deposit(보증금)으로 요청받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는 형식적인 것이다. 신용카드는 비자.마스터 등 해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2. 국제현금카드도 챙겨갈 수 있다. 제1순위는 현금으로, 유로화를 50만~100만원 어치 환전해 갖고 다니는 게 좋을 것 같다. 제2순위는 해외 사용이 가능한 신용카드이고,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고 현금을 많이 소지하지 않을 경우 제3순위로 국제현금카드를 갖고 가는 것이라고 한다. 

국제현금카드는 대부분의 국내 은행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한국에 있는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개념이며, 돈을 뺄 때마다 수수료(2달러 정도)가 나온다. 



3. 이탈리아에선 어댑터의 모양이 다르므로, 따로 준비해야 한다. 여러 가지 IT기기를 쓰는 사람은 2~3개 챙겨야 한다. 

4. 바퀴달린 여행용 캐리어를 갖춰 가는 게 좋다. 유럽은 포장도로의 사정이 한국처럼 좋지는 않다.

5. 치약.칫솔.면도용품은 따로 준비해야 한다. 피부가 민감한 사람은 샴푸와 비누도 자기에게 맞는 걸 준비하는 게 좋다.    

6. 여행 할 때 지니고 다닐 작은 가방을 따로 준비해야 한다. 바티칸의 경우 배낭이나 여행용 캐리어는 갖고 들어갈 수 없다. 입장 불가다. 

7. 이탈리아의 날씨는 한국의 서울과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처럼 한파가 몰려오는 경우도 많지 않다. 2011년 1월의 경우 로마.피렌체.베네치아.밀라노 등 주요 도시의 기온은 최저온도가 모두 영상이다. 

그러나 겨울인 만큼, 귀를 덮는 모자와 목도리.장갑의 준비는 필수다. 멋있는 야경을 구경해야 하므로 두꺼운 잠바도 준비해 가야 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입을 수 있는 잠바를 준비하면 짐을 많이 줄일 수 있다. 

8. 사진을 많이 찍으려면 메모리카드와 건전지를 넉넉하게 준비해야 한다. 

9. 최근에 나온 핸드폰은 대부분 유럽에서도 자동로밍이 된다. 아이폰 등 스마트폰 OK!  등급이 떨어지는 핸드폰은 임대폰을 사용해야 하는데,요금폭탄을 맞을 수 있다고 하니 사전에 반드시 체크해야 한다. 여행사 베테랑 직원들은 잘 알고 있다. 

10. 로마에서만 하루 정도 자유여행의 틀을 벗어나  '가이드 투어'를 하고 싶으면 여행사에 문의해 요금을 미리 내고 날짜를 예약해야 한다. 요금은 1인당 3만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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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영광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이탈리아 여행은 매우 매력적이다. 로마는 7개의 언덕, 피렌체는 분지,베네치아는 물 위에 뜬 섬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겨울 비수기 땐 1인당 210만~220만원으로 자유여행을 꿈꿀 수 있다. 

약간의 추위는 감수해야 한다. 커플에겐 추위가 오히려 귀한 추억거리가 될 수 있다. 자유여행을 선택하면 비행기 삯과 호텔비(간단한 고직 제공)을 빼곤 모두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2011년 1월 중순, 부부의 6박8일 이탈리아 여행 기본경비는 420만원 선이다.(여행사 '레드캡'의 경우)


이탈리아에서도 유로화를 쓴다. 2011년 1월 현재 1유료는 약 1500원이다. 여행경비는 하루에 1인당 최소 50~80유로가 든다. 식사를 폼나게 하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이 드는 건 물론이다.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점에서 점심을 때우면 10유로 안팎이 들며, 평범한 레스토랑에서 '경제적 점심식사'를 할 경우엔 20~30유로가 든다. 카페테리아 점심 값은 15유로 안팎이다. 

이탈리아에서 6박을 할 경우 1인당 여행 경비는 300~480유로. 두 사람의 여행경비를 1000유로(150만원) 잡으면 그런대로 잘 즐길 수 있겠다.  2011년 1월 1일부터 '로마'에선 호텔에 묵을 경우 1인당 2~3유로를 '여행자 세(稅)'로 내야 하며, 이는 현금으로 결제해야 한다. 

그러므로 비수기에 커플의 6박8일 이탈리아 자유여행 경비는 570만 원 정도로 보면 될 듯하다.선물.기념품 구입을 뺀, 빠듯한 경비가 이 정도다. 

에스프레소를 즐기는 사람에겐 이탈리아가 참 좋다. 단돈 1유로에 향기 그윽한 에스프레소를 종종 즐길 수 있다. 카페라테 값과  물(water) 값도 에스프레소 값과 비슷하다. 

이탈리아 여행객은 주로 도보 여행을 선호한다. 그게 기본이자 이 나라 여행의 묘미다. 때문에 교통비는 썩 많이 들지 않는다. 로마 지하철 1회 티켓은 1유로이다. 

하지만 지하철과 도로를 섞어 여행을 다니고자 한다면 1일 티켓을 4유로에 끊어 활용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입장료는 우피치 미술관이 6.5유로, 바티칸 박물관이 15유로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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