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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시국(市國),즉 바티칸시티(Vatican City State)는 우리나라를 1984년 5월과 1989년 10월에 방문한 고(故)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그와 함께 '바보'로 통하는 고(故)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모습이 연상되는 곳이기도 하다. 약소국인 폴란드에서 조실부모하고 온갖 고생 끝에 학자가 됐고, 전세계 가톨릭신자 8억 명의 최고 목자로 추앙받는 교황의 자리에 오른 요한 바오로 2세는 방한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그는 김포공항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순교자의 땅,순교자의 땅"을 외치며 한국의 땅에 애정어린 입맞춤을 했다. 그 감격스러운 광경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요한 바오로2세가 대한민국의 땅에 감격의 키스를 퍼붓고 최상의 경의를 표한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우리 선인들이 이 땅에 순교의 피를 얼마나 많이 뿌렸는가. 그 덕분에 대한민국은 추기경이 있는 가톨릭교회를 갖게 됐다. 이 땅의 가톨릭 순교자 103명은 성인(聖人)의 위(位)에 올랐다. 1984년 방한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 가톨릭 순교자 103위의 시성식(諡聖式) 미사를 우리나라 말로 집전했다. 이 미사는 피를 흘리며 가톨릭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최대 공로자 103분이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한 종교 행사였다. 
 
 
훌륭한 치유 기적을 많이 시현한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성직자다. 아직 성인이 아니다. 고인은 2011년 5월 1일 성인의 한 단계 아래인 복자(福者)로 추대된다. 그러기 위해 거쳐야 할 절차는 시복식(諡福式)이다.  그의 유해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 성베드로성당)에서 세바스티안 예배당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고 얼마 전 보도됐다. 대한민국은 가톨릭 전파의 역사에서도 매우 자랑스러운 나라다. 추기경보다, 교황보다 더 높고 복자(福子)의 윗 단계인 성인(聖人)을 103분이나 조상으로 둔 매우 훌륭한 국가다. 그러니 아무리 교황이라해도 이 복음의 땅,선교자의 땅에 무릎 꿇고 경건한 마음으로 축복의 키스를 해야 마땅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방한 당시 한국어로 또렷하게 인삿말을 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슴깊이 절절하게 느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당시는 내가 기자가 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때였다. 교황은 공자의 논어 도입부에 나오는 귀절인 '유붕(有朋)이 자원방래(自遠訪來)하니 불역낙호(不亦樂乎)아'를 인용해 방한 인사를 했다.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 라는 말씀을 우리는 공자님의 논어 첫머리에서 듣습니다. 이 말씀을 받아 '벗이 있어 먼 데로 찾아가면 그야말로 큰 기쁨이 아닌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의 친애하는 벗들이 베풀어주신 따뜻한 환영에 본인은 감격하고 있습니다." 
 
잊지 못할 그 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묻혀 있는 바티칸시티의 성벽이 눈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환호하는 사람도 여럿 눈에 띈다. 돈 보스코 성인을 받드는 살레시오 중학교를 나온 나는 가톨릭이 매우 친근하다. 성모 마리아상 앞에서 3년 내내 기도하던 옛날의 내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바로 엊그제 일인 것만 같다. 인생무상이다.  
 
로마에 도착한 다음날인 1월 18일 오전 7시 30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Vittorio Emanuele)역에서 가이드와 접선했다. 편도에 1유로 하는 지하철 티켓을 끊어 지하철에 올랐다. 로마에는 지하철이 A라인(동서)과 B라인(남북)이 있다. 비토리오 역은 A라인에 속한다. 이 역에서 중앙역인 테르미니 역을 거쳐 목적지인 바티칸시티 교황궁 인근의 오타비아노(Ottaviano S.Pietro)역에 가려면 일곱 정거장 째에서 내려야 한다.  
 
로마 자전거나라 가이드 김민주 대리는 "소매치기를 피하려면 지하철의 맨 앞이나 맨 뒷 쪽에 타야 한다"며 "지하철 깊숙히 들어가고,배낭이나 가방은 앞쪽으로 매라"고 가르쳐줬다. 지하철의 중간 칸은 상대적으로 혼잡하니, 소매치기들이 주로 이곳에서 활약한다는 것이다. 혼잡으로 정신을 차리지도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외국 관광객을 노리는 건 '소매치기의 정석'이다. 
 
우리 팀은 모두 29명이었다. 중장년층은 두 커플이고, 나머지는 모두 젊은이들이었다. 부모들 덕분에 일찍 세상 만물과 접하는 행운의 세대다. 한편으론 "부모들은 뼈 빠지게 일하고, 스트레스를 칭칭 감고 사는데..."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들이 우리나라의 미래이니까. "요즘 일본 아이들은 자폐증환자처럼 자기세계에 갇혀 지내고 해외에 나가길 매우 싫어한다는데, 우리 아이들은 진취적이어서 나라의 앞날이 매우 밝다"고 옆지기에게 말해 줬다.    
 
로마 자전거나라의 가이드 김민주 대리는 '바티칸시티 교황궁 투어'참가자들에게 귀에 꽂는 무선 수신기를 나눠줬다. 수신기의 볼륨을 키우면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도 가이드의 말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김민주 대리의 이야기다. 
 
바티칸시티는 약90년 전 국경이 확정됐습니다. (아비뇽유수....중략)  바티칸시티 성벽에 붙은 심벌에는 두 사람이 등장해요. 오른쪽 사람이 라파엘로입니다. 매우 잘 생겼죠. 왼쪽 사람은 미켈란젤로입니다. 재수없게 생겼죠. 성질도 나빠 (다른 사람들에게) 얻어맞아 코뼈가 부려졌답니다. 라파엘로는 37세에 요절했고,미켈란젤로는 89세까지 살았죠. "
 
바티칸시티의 교황궁 안에 있는 바티칸미술관(Musei Vaticani)의 입장료는 15유로(1유로는 약 1500원)였다. 6개월마다 1유로씩 오르는 추세라고 한다. 하지만 학생의 입장료는 8유로다. 파격적인 할인이다. 단 국제학생증이 있더라도 (올해 기준으로) 1984년 이후 태어난 사람들에게만 할인해 준다. 티켓 창구는 1번부터 9번까지 있다. 8,9번 창구에서 학생 할인을 해준다. 바티칸시티의 교황궁에 들어가려면 입국심사를 받아야 한다. 칼이나 삼각대는 반입할 수 없다. 가이드는 "카메라와 휴대폰은 가방에 넣으라"고 조언했다. 
 
바티칸시티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주권국가(독립국)이다. 테베레 강(Fiume Tevere) 서쪽에 있으며, 면적은 13만 3천 여 평에 불과하다. '레오나르도4세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바티칸시티의 인구는 950~1000명을 유지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는데, 2010년 현재의 인구는 829명으로 나와 있다. 바티칸시티의 교황궁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 하는 사람(피고용인)들이다. 성직자들은 대부분 로마에 산다. 2011년 현재의 교황은 베네딕토 16세다. 
 
바티칸시티에서 볼만한 것은 교황궁 안의 바티칸미술관과 교황궁 밖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 등 2곳이다. 
 
 
바티칸시티도 명색이 독립국이니 입국심사를 받고 들어갔다. 심사대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바티칸미술관으로 이동했다.  2층의 카페테리아에서 그 유명하다는 에스프레소(1유로)를 마셨다. 
가이드가 가르쳐 준 대로 '무조건 빨리 계산하고 영수증을 제시해' 에스프레소를 받아왔다. 그리고 설탕을 타서 훌쩍 마신 뒤,찌꺼기로 입맛을 바꿔줬다. 
 
바티칸미술관 내 카페테리아 자리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동안,바로 옆 창문 밖의 투박한 조형물에 휴대폰 렌즈를 들이댔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점은 아이폰의 엄청난 위력이다. 몇 년 된 외제 디지털카메라를 2대 갖고 갔으나, 이 디카의 성능이 아이폰3보다도 못했다. 부부의 의견일치. 언젠가 코닥필름처럼 디카도 종말을 고할 지 모른다. 아이폰4는 아이폰3보다도 더 선명도가 높다고 하고, 캠코더도 디카의 기능이 우수하니 디지털카메라를 굳이 따로 장만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본다. 디지털카메라의 죽음이 눈앞에 그려진다.  
 
"바티칸시티 교황궁의 투어는 곧 미술관(회화관) 구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이드 김민주 대리는 날씨가 맑으면 뒷쪽에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 선명하게 보이는 작은 광장에 일행을 집합시켰다. 광장의 소나무 아래가 약속장소로 쓰이는 모양이다. 광장에서 처음엔 잘 보이지 않던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 차츰 시야에 들어온다. 가이드는 이 대성당을 구경한 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천사의 성'을 구경하라고 권유했다. '천사의 성'옆에 있는 버스 40번 종점에서 테르미니 역까지는  25분이 걸린다고 한다. 
 
가이드는 바티칸미술관 관광에 1시간 40분 정도 걸린다고 예고했다.
 "피나코테카(Pinacoteca)는 그림(Pinaco)를 모아둔 방(teca)을 뜻합니다. 서기 1100년 이전의 것은 회화라고 할 수 없고, 12세기에서 18세기까지의 것은 회화라고 부릅니다. 원근법과 사람,얼굴이 등장한 시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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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자유여행은 일종의 모험이다. 모든 걸 부닥치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더욱이 소매치기가 득실거린다는 '미확인 소문'에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소매치기가 극성을 부렸다. 
 
경제발전이 되기 전엔 내국인,외국인 가릴 것 없이 호주머니와 지갑,가방을 털었다. 좀 잘 살게 된 뒤엔 주로 외국인을 겨냥했다. 로마도 사람 사는 곳인데 소매치기가 없을 리 없다. 주로 우리 같은 어벙벙한 외국인을 노릴 게 틀림없다. 바가지를 씌우는 로마의 사악한 택시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도 무성하다.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다.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해 파리에서 비행기를 갈아탔다.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 터미널 2E에 내려 셔틀버스를 타고 터미널 2F로 옮겨가 환승했다. 로마의 관문이라는 피우미치노 공항(일명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여기까진 식은 죽 먹기다. 또  "공항에서까지 소매치기들이 판 칠 리 없다"는 생각에 느긋한 기분이었다.   
 
 
공항에서 나오면 긴장의 도를 부쩍 높여야 한다. 당장 실수없이 로마로 가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여행자를 위한 가이드북 'Just go'엔 공항에서 로마까지 보통열차(FS-Train),심야버스,택시를 타고 갈 수도 있다고 돼있다. 
 
하지만 예약된 호텔이 테르미니 역(Stazione Centrale di Termini,테르미니 중앙역) 근처라면 굳이 다른 교통수단에 눈길을 돌릴 필요없다. 아마도 한국 여행사가 테르미니 역 근처에 숙소를 잡아줄 확률은 매우 높다. 공항에서 특급열차인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를 타면 된다. 
 
공항에서 짐을 끌고 기차 표시를 따라 가면 열차역이 나온다. 승차권은 자동 발매기를 이용해도 되나, 익숙하지 않으므로 곧장 개찰구 바로 앞에 있는 예약창구로 가서 손가락 두 개를 펴고 "테르미니 투(two)!"라고 외치며 돈을 냈다. 가이드북엔 편도 요금이 1인당 11유로로 나오나, 2011년 1월부터 14유로로 올랐다.(시공사는 가능한 한 빨리 정보를 업데이트 하길!) 
 
티켓을 받아들고 역무원이 가르쳐준 탑승구로 갔다. 여기서 주의 사항 하나! 탑승구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검표 기계가 있다. 티켓을 구멍에 넣으면 '찰칵' 소리와 함께 티켓에 구멍이 뚫리면서 확인된다.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는 30분마다 있다. 테르미니 역까지는 약 30분 걸린다. 
 
드디어 로마 최대의 중앙역인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과연 소매치기나 거지(홈리스)로 보이는 사람들이 꽤 많이 눈에 띈다. 바가지를 씌울 것으로 보이는 택시기사들도 이곳저곳에서 호객한다. "No,thankyou!"를 짧고 힘차게 외치고 역 밖으로 나온다. 
 
아예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줄 여유도 없다. 지갑과 가방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다행히 우니베르소(universo)호텔은 지도만 보고 찾기가 쉬웠다. 무릇 여행사는 이런 호텔을 잡아줘야 한다. 걸어서 줄잡아 2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니베르소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했다. 객실에 들어가 보니 별 4개 짜리 호텔치곤 너무 초라하다. 동행자의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마치 "내 인생이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좀 미안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유여행자를 위한 여행사의 조치인데. 방도 너무 작고 시설도 형편없다. 기억의 힘에 기대자면 외국에 나와서 이런 호텔에서 묵은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짜증이 솟았지만,마누하님을 더 불쾌하게 할까봐 꾹 참는다. 
짐을 방에 집어던지고 샤워부터 했다. 비행기 이코노미 석을 타고 먼 길을 날아왔더니 피곤하다. 비행기 안에서도 마누하님과 함께 "앞으로 더 나이가 들어 장거리여행을 할 땐 최소한 비즈니스 클라스를 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제를 놓고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또 "유럽 등 외국여행은 심신이 건강한 중장년에 다 끝내야 한다"는 데도 의견의 일치를 봤다. 
 
호텔 주변의 지형지물도 살필 겸 저녁식사도 할 겸 밖으로 나갔다.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리스토란테,ristorante)이 없다. 아메리칸식 식사를 하자고 했더니 옆지기가 기꺼이 응하지 않는다. 한참 걷다가 터키의 케밥 집을 만났다. "외국에 왔으니 색다른 음식에 도전해 보자"는 내 제안이 받아들여져 케밥 리스토란테에 들어갔다. 
 
한 외국인이 돌연 한국말로 "서울,한국(에서 왔느냐)?"라고 묻는다. 어쨌든 반갑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대충 의사소통이 된다. 케밥 리스토란테 주방장은 경기도 일원에서 산업연수생으로 몇 달 지낸 경험을 갖고 있다. 우리 말은 거의 초보수준이다. 그래도 아줌마,아저씨,맛있다 등 몇 마디는 할 줄 안다. 
 
반가운 마음에 두 사람이 각각 다른 종류의 케밥을 시켰다. 양이 엄청 많아 절반도 채 먹지 못했다. "돈 많이 벌어 부자 되라"는 덕담을 건네고 호텔로 돌아왔다. 내심 "저 방글라데시인이 한국에서 악덕 기업주를 만나 구박이나 폭행, 또는 임금체불 등을 당하지 않았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이런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잠시 머무른 나라라고 우리를 반겨주었을 뿐이다. 
 
호텔 가이드 팸플릿에 보니 "인터넷은 무료"라고 돼 있었다. 안내데스크에 가서 와이파이 비밀번호(access code)를 물었더니 작은 서류를 프린트아웃해 건네준다. 곧장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 세팅하고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시도했다. 그런데 여기서 2박 3일을 보낸 뒤 체크아웃할 때 문제가 발생했다. 인터넷요금을 20유로나 내라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항의했더니 " 당신은 스스로 선택해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을 사용했기 때문에 유료"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호텔 비즈니스센터 옆에 있는 컴퓨터에서 잠깐 검색하는 것만 무료이고, 호텔 객실에서 내 마음대로 인터넷을 하는 것은 유료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1만원 정도를 내고 인터넷을 한 셈이다. 
 
기분이 매우 상했다. 가이드북을 보면서 내일의 일정을 의논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시차로 고생하기는커녕 코를 드르릉드르릉 골면서 잠만 잘잤다. 자유여행이지만, 내일 하루는 가이드를 따라 바티칸시국을 관광할 예정이다. (다음회에 계속) 
 
[이탈리아 여행 시리즈 예정]
* 바티칸시국은 미켈란젤로를 만나는 곳
* 트레비 분수를 찾아 엄청 헤매다
* 피렌체의 감동_호텔 그리고 두오모
* 베네치아 음식에서 '바다'를 맛보다
* 패션의 발상지 밀라노 다웠다
* 이탈리아의 으뜸 음식,으뜸 호텔
* 여행 가이드북에서 바로잡아야 할 것들
* 신들려 '작두 탄' 로마 자전거나라 가이드(김민주 대리) 
 
 
[로마에 관한 10가지 필수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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