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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팔타커스
감독 스탠리 큐브릭, 안소니 만 (1960 / 미국)
출연 커크 더글라스, 로렌스 올리비에, 진 시몬즈, 찰스 로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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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되돌아보자면, 이따금씩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동양에서는 사관(史官)으로, 근세 서양에선 저널리스트(journalist)로 사회적 역할이 결코 적지 않은 (신문)기자가 로마시대엔 노예였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진실(truth)은 하나님만이 알기 때문에(Only God knows), 언론은 사실(truth)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보도 내용의 진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한다. 

이것이 언론이 지니는 명백한 한계라고 볼 수 있다. 언론인들은 국회위원들처럼 국정조사권도 없고, 검사들처럼 수사권도 없다. 때문에 탐사보도 기법을 활용하거나, 내부 고발자의 협조를 기대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것조차도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비판에 직면해 왔다. 

어쨌든 로마제국 시대엔 기자가 노예였다. 동양에서 춘추필법을 구사한 사관(史官)이 저널리스트의 원형으로 여겨지는 것과는 영 딴판인 셈이다. 현대적 신문은 유럽과 미국에서 태동하고 발전했다. 미국에서 기자들이 '전문직 저널리스트의 신분 보장'을 요구한 것은 1930년대 초반 경제 대공황 직후였다. 기자들은 대량실직을 당하자 힘을 합쳐 직종의 독립성과 전문성의 보장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는 신문사가 광고의 도입으로 경제적 자립의 터전을 마련했기에 가능했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 발명 이후, 다양한 형태의 변혁을 거쳐 신문은 정론지(政論紙,정파신문) 성격을 띠게 됐다. 이들 신문은 특정 정당이나 이익집단의 물질적 후원으로 저널리즘 활동을 했기 때문에 정파신문의 탈을 벗을 수 없었다. 

하지만 '푼돈 신문'인  '페니 프레스'(Penny Press)로 대중 속에 뛰어들고, 지면에 광고를 끌어들여 수입을 올림으로써 정치적 중립을 점차 확보해 나갔다. 그리고 입법,행정,사법에 이은 '제4부'라는 명예와 사회적 책무를 안게 됐다. 저널리스트가 버젓한 직업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로마제국 시대의 정보전달자,즉 통신원 자격의 기자는 힘들고,위험하고,때로는 더러운 일(3D)을 감당해야 했다. 로마 귀족들은 1년 중 대부분의 기간을 자신의 장원에서 보냈다. 귀족들은 수도의 정보를 잘 알고 있어야 했다.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삶을 즐길지라도 권력 유지를 위해선 정보가 필수적이었다. 그들은 고급 정보를 습득하고 해독해 슬기롭게 대처해야 했다. 

정보를 물어다주는 손발이 필요했다. 전쟁터에 나간 귀족(장군)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거둔 전승을 수도에 즉각 보고하고, 수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때문에 로마 귀족들은 정보를 전달해주는 통신원을 둘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소유인 노예 기자(slave reporter)를 활용하거나, 수도권 상황에 정통한 자유인 노예를 고용했다. 

이들 통신원은 상업과 정치 상황을 담은 지역 보고서를 귀족은 물론 주민에게 제공하고 곳곳에 퍼뜨렸다. 그 대가로 급여를 받았다. 노예기자들은 샐러리를 알뜰하게 모아 면천(免賤)하는 기회를 잡기도 했다고 역사는 전한다.서양의 원시적 저널리스트였던 노예기자들은 악투아리(Actuarri)와 노벨리스테(Nouvelliste) 등 두 가지 기능을 맡았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자면 전자는 사회부 기자, 후자는 정치부 기자에 해당한다. 악투아리는 사건사고와 법정의 판결을 속기하고 편집했다. 또 노벨리스테는 원로원과 평민원의 정객 움직임과 시정(市井) 소식을 맡아 처리했다. 노벨리스테는 원로원 회의장을 방청했고 원로원의 결의사항이나 연설 내용,투표상황 등을 보고했다. 

서양 저널리스트의 서글픈 3D (Difficult, Dangerous, Dirty)적 기원이다. 한편 최초의 서양 직업언론인은 '로빈손 크루소'의 작가인 다니엘 디포(1660~1731)였다. 그는 런던의 커피하우스에서 일했다. 커피하우스는 정치집회가 열리고, 지식인들과 예술가.은행가.상인 등이 모이는 곳이었다. 푼돈으로 커피를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페니 대학'(Penny University)이라고도 불렀다. 

저널리스트의 원형이 이처럼 동양과 서양에서 사뭇 다른 점에, 잠시 상념이 맴돈다. 예나 지금이나,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분명한 것은 저널리스트의 삶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언론계에 크고작은 파동이 일어날 때마다, 기자는 과연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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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