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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13 고흥길 사퇴와 노루배꼽


고흥길 한나라당 의원(국회 정책위원회 의장)이 한나라당의 내년 예산안 단독처리와 템플스테이 예산의 삭감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보직에서 물러난 데 대한 평가가 너무 야박한 것 같다. 

 야권은 그의 사퇴를 ‘(도마뱀의)꼬리 자르기’라던가 ‘조폭 영화 흉내내기’ ‘똘마니’라는 식의 각박한 표현을 쓰며 평가절하하고 있다. 하지만 난 그가 나름대로 정치인, 그것도 여당의 주요 포스트에 있던 사람으로서 책임을 통감했다고 믿는다. 

고 의원은 3개월 전 자신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트윗했다.

“여당의 정책위원회 의장으로서 정부의 구태와 관행적인 정책 및 사업을 철폐하고 온 국민이 다 같이 성공하는 공정한 사회가 되도록 국정감사에 임하겠습니다.” 

야권의 가치 배제나 야당을 적극 지지하는 분들의 정권에 대한 비판과는 별도로, 고흥길 의원의 사퇴는 어찌됐든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를 보여줬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예전에 정리해 올렸던 글을 다시 찾아 읽어본다.

 

"자벌레가 움츠리는 것은 그 몸을 넓게 펼치기 위함이며,노루가 제 배꼽을 물어뜯는 것은 위험에서 벗어나고자 함이다." 

일본의 기업가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의 정신적 스승은, 시공을 초월해 존재했던, 중국의 손무(孫武)였다. 병가(兵家)의 성(聖)으로 일컫는 손자(孫子)였다. 흔히 '손자병법'이라고 부르는 불후의 명저 '손자십삼편'을 남긴 손무는 오왕 합려를 도와 초나라를 쳐 승리한 뒤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거만하고 횡포해진 합려의 모습을 보고, 오나라의 미래를 밝게 보지 않았다. 월나라 왕 구천에게 살해된 합려의 아들 부차는 부왕의 원수를 갚고 패권을 잡기 위해 오자서를 손무에게 보냈다. 부춘에 칩거하고 있던 손무에게 출사를 권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손무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는 "여름에 겨울의 가죽 옷을 입고 있으니 우습지 않느냐"라는 비유의 말로 오히려 오자서에게 사직을 권했다. 하지만 책략은 들려주었다. 부차는 손무에게 들은 전략을 바탕으로 전쟁에서 이겼다. 그는 그러나 손무가 던진 세 가지 계책 중 하나를 지키지 못했다. 월나라 왕 구천을 살려둔 것이다. 이는 훗날 오나라 멸망의 씨앗이 되었다. 어쨌든 전쟁에서 이긴 부차는 사례하기 위해 손무를 다시 찾았으나,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 손무는 이후 모습을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

월나라 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범려는 물러날 때가 됐다고 여겨 재야로 내려왔다. 세상사의 격류를 등지고 강호에 묻힌 그는 남다른 눈과 판단력으로 장사를 해 큰 돈을 벌었다. 사람들은 그를 '상인의 시조'로 불렀다. 범려는 도지라는 곳에서 상행위를 해 떼돈을 벌었기 때문에 '도주공(陶朱公)'으로 칭송받았다.

손자와 범려는 '물러날 때'를 알고, 이를 실행에 옮긴 사람들이다. 크고 작은 권력을 내던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쉽지 않은 일을 결행한 연유로 그들의 이름과 언행이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아닐까. 자벌레와 노루의 몸짓이 범상치 않게 여겨지는 오늘이다. 


Posted by 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