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명 수필/단상 회상2010. 7. 14.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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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글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
그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제자인 플라톤의 기록에 바탕을 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아마추어 민주주의가 군중독재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우려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잠시 조각가로 일하다 소피스트가 된 그는 말장난으로 돈벌이하는 걸 포기했다. 대신 정치의 도덕적 근거를 밝혀내는 데 심혈을 쏟았다. 아테네의 엘리트 청년들에게 독자적인 사고 방식을 가르쳤다. 그들을 훌륭한 정치가로 키우는 데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때문에 돈벌이가 거의 없었다. 집에서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마누라가 바가지를 득득 긁는 건 당연하다. 그는 마누라 크산티페에게 역사적인 악처의 오명을 씌웠다. 크산티페의 욕설과 항의에 맞서 소크라테스가 변증법을 더욱 발전시켰을 것이라는 해석은 우스갯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반어)'라는 방법을 통해 상대방을 무력화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던 그는 어느날 고소를 당한다. 죄목은 청소년 타락,고풍(古風)거역을 사주한 혐의였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법정 변론에 나섰다. 하지만 재판부는 과반수 찬성투표로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린다. 그는 아테네의 법에 따라 형량을 스스로 매기도록 허용된다.
하지만 그는 이에 불복했다.재판부를 향해 오히려 화살을 쏘았다. 죄가 없는 사람을 법정에 세웠으니 보상을 해줘야 한다며 재판부를 성토한 것이다. 
이러니 무사하겠는가. 법정모독죄까지 뒤짚어쓴 그는 결국 사형선고를 받았다. 제자들은 탈주를 도와주겠다고 했으나,그는 거절했다. 폴리스 밖에서 살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오늘날처럼 미국이나 스위스 등 다른 나라로 망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일가(一家)를 이룬 그가 철학자답게 살 수 있는 곳이라곤 없었다.

사마천은 흉노족에 투항한 이릉(한 무제의 손윗 처남)을 비난한 죄로, 세 가지 형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허리를 잘리고 죽거나,금전 50만 전을 내고 풀려 나거나,궁형(거세의 형벌)을 당해야 했다.사마천은 결국 '사기'를 남기기 위해 궁형을 택했다.누가 사마천을 준법의 화신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소크라테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크라테스는 법정투쟁을 벌였고,형량의 자기 선택권까지 거부하며 보상을 요구하다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죽음을 택했다. 조국을 떠난다는 것은 그에겐 죽음보다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비교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 학자는 소크라테스와 그리스도가, 속물적인 군중(mob)이 내세우는 명분의 희생양이 됐다고 분석한다. 속된 떼거리들이 정통적 가르침이라는 명분을 그럴 듯하게 내세워 행하는 폭력적인 정치,즉 우민정치(愚民政治,mobocracy)야말로 소크라테스가 경멸하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준법 교육을 위해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긴 채 독배를 마시고 죽어간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사례로 드는 것은 부적절하다 "며 교육인적자원부에 교과서의 수정,보완을 요청했다. 
헌법재판소는 "소크라테스 사례는 권위주의 정권의 논리"라며 "중학교 사회교과서에 소크라테스의 사례가 등장하는 것은 기본권의 양보를 요구하고, 헌법과 기본권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던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밝혔다. 
법률의 목적과 내용이 정당해야 한다는 '실질적 법치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우리 헌법 체계와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재는 "앞으로 소크라테스 일화는 실질적 법치주의와 법률의 형식만을 중시하는 '형식적 법치주의'의 비교 토론을 위한 자료로 소개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당시 소크라테스의 강력한 저항권 행사와 그가 처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상황을 가볍게 여겨선 안된다. 그가 독배를 마신 건 준법정신이 아니라,일종의 순교이며 차원 높은 체념이라 볼 수 있다. "악법도 법이다"라며 독배를 마셨다는 것을 준법정신의 표본으로 여기는 '정통적,교과서적' 가르침은 이제 교과서에서 걷어내야 마땅하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어록을 남긴 적이 결코 없다. 

(2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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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