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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명 수필/단상 회상2010. 7. 1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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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할머니 무릎에 누워 듣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산골에 사는 부부가 어린 아들을 돌림병으로 잃었다.
엄마는 곡기를 끊고 연일 대성통곡했다. 반면 아빠는 곰방대를 물고 먼 산만 쳐다보았다. 참다 못한 엄마가 아빠에게 한 소리 한다. "당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요? 금지옥엽 아들을 잃고 담배나 피고 있으니,말이요."
아빠가 조용히 말했다. "요강을 가져와 보시요."
영문을 모른 채 엄마가 요강을 가져왔다.
아빠가 말한다. "요강에 침을 뱉어보시요."
엄마가 슬픔으로 엉킨 침을 뱉었다.
이번에 아빠 차례다. 놀랍게도 요강 속에는 결핵 환자가 내뱉은 것 같은 핏덩어리가 가득했다.  
오늘 밤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가 쓴 '만화 같지 않은' 만화책 '아버지'를 읽고 핏덩이를 토해냈다는 이야기 속 아버지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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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아버지는 순수하지만 고집불통 인간이다. 돗토리의 대화재로 집을 잃은 그는 처가에서 재기하라고 빌려준 돈을 다 갚기 위해 아둥바둥 일만 했다. 결혼 전 장인,장모에게서 "양조장 집 딸의 돈을 노리고 접근한 게 아니냐"는 말을 가슴에 아로 새긴 채 빚을 청산하기 위해 묵묵히 일만 한다. 다른 사람과 결혼할 예정이었던  그의 아내는 멋을 잃은 남자의 곁을 떠난다. 큰 딸의 담임선생님을 따라 가출한다. 철 모르는 주인공은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를 평생 증오한다. 중학교 때 아버지의 이발소 금고에서 돈을 훔친 뒤 물어 물어 찾아간 엄마는 새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안고 있었다. 충격받은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려 집으로 돌아온다.  이후 그의 친부 증오는 극에 달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중학교 때는 육상부,고교 때는 사진부 활동에 몰입한다.그리고 고향을 영영 등지기 위해 도쿄로 유학을 떠난다. 그로부터 14년 뒤 어느 날 부친의 부음을 듣고 영안실에 나타난 그는 외삼촌과 만난다.외삼촌이 회고하는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은 아버지가 얼마나 곧고, 성실하며,다정다감한 지 깨닫게 된다. 특히 주인공이 아끼던 강아지를 아버지가 정성껏 돌봤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들이 그토록 아끼던 개를 고향에 돌아와 품 안에 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는 아버지.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시체가 화장되는 현장에서 울음을 토한다. 아버지를 절절하게 느낀다. 때는 이미 늦었다. 그러나 그는 까마득한 옛 추억에 젖는다. "내가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어떤 법칙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어느 봄 날 오후,나는 아버지의 이발소 마루바닥에 앉아 놀고 있었다.따뜻한 봄 햇살의 온기가 한가득 머문 마루. 아마도 그건 어린 시절 중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한 한때였으리라."
그는 다시 그 따스한 봄 날의 햇살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말한다.
"고향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고향이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돌아오는 것이라고..."
          


만화 다니구치 지로의 ‘아버지’


“아버지…당신이 미웠어요”

다니구치 지로의 <아버지>(애니북스 펴냄)가 나왔다.
일본에선 1995년 단행본(원제는 <아버지의 달력>)으로
소개되었는데 2001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수상할 만큼 최근까지 상찬이 이어진 작품이다.

이렇게 화려한 책 바깥과 달리 책속은 소박하다.
군더더기 없는 펜선따라 전해지는 이야기는 한없이 나직하다.
만화적 과장과 왜곡 따위가 일절 배제됐다. 하지만 속 깊이
울리는 것은 곡절의 삶을 지나온 ‘가족’을 섬세하게,
사실적으로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듣는 요이치. 미동도 없이 두 가지를
셈해본다. 아버지의 나이, 그리고 자신이 고향을 떠나 지내온
세월. 15년이었다. 고향 도토리현에서 도쿄까지 기차로 8시간이
걸리는 거리가 비행기 1시간 거리로 줄어드는 데 걸린 시간인
셈.반면 자신은 애면글면 가족, 특히 아버지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발버둥쳤던 아득한 시간이었다.

중학교 때 “아직 가족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무력을 뼈저리게 느”낄 만큼 아버지가 싫었던 요이치.
이유는 초등학생일 때 지켜본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이었다.
그 탓이 아버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장난감을 든 꼬마
요이치의 머리를 봄볕이 지나고 있었고, 한쪽에서 이발사인
아버지는 손님의 머리를 깎고 있었다. 요이치에게는 이것이
‘고향’이고 ‘가족’이었지만, 아버지로 인해 풍경은 지워졌다고
확신했다.

‘가족사 곡절’ 나직이 되밟아

문상 때 만난 다른 가족들을 통해 요이치는 내막이 다
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각각 이유로 떠난 이가 다시
돌아와도 여전히 같은 품을 지닌 고향인 양 묵묵히 요이치를
지켜보고 기다렸던 아버지가 비로소 고향을 떠난 때였다.

다니구치의 실제 이야기가 바탕이 되었다. 이혼하게 된 배경
한 가운데 도토리 대화재 사건(1952년)이 있다. 6천이 넘는
가옥이 탔고 시가지의 3분의2가 잿더미가 된 재앙이었다.
‘가족’은 애썼지만 넘어서기 어려운 고빗사위였다. 지난해
소개되어 이미 감동을 줬던 또 다른 작품 <열네 살>처럼
따뜻한 실사영화를 한편 보는 듯하다. 다니구치 특유의 감성과
작법이 오롯하기 때문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Posted by 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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