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저모/리뷰2010. 7. 1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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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역사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세계사 > 세계사이야기
지은이 레이 태너힐 (우물이있는집,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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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시대에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었다. 수렵,어로,채집으로 먹거리를 얻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인간은 식물을 기르고, 동물을 키우는 방법을 터득했다. 지구의 환경과 생태에 큰 변화가 일었다. 

신석기 시대의 인간은 돌멩이로 비벼 왕겨를 떼어내고, 껍질의 일부를 문질러 벗겨 냈다. 낱알을 물에 불린 뒤 갈아서 물과 섞고 반죽했다. 또 낱알을 불에 굽고 발아시켰다. 마침내 인간이 요리법을 개발한 것이다. 


기원전 20세기 경의 일이다. 이집트 중왕국은 발효 빵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종전의 밀을 개량해 수확한 신 품종으로 빵을 만들었다. 이 빵은 좀 더 부드럽고, 더 오래 보존할 수 있었고, 맛도 더 좋아졌다. 

기원전 7세기 경 메소포타미아에선 보리로 만든 죽이나 빵에 양파와 콩을 곁들여 먹었다. 맥주와 대추야자로 술을 빚어 마셨다. 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요리해 먹었다. 

기원전 540년 경 그리스에서의 일이다. 사람들은 푸줏간에서 소를 잡아 신에게 제사 지냈다. 종교적 희생제의가 행해진 것이다. 이는 당시의 항아리에 그려진 푸줏간 그림에서 엿볼 수 있다. 쇠고기는 매우 귀한 음식이었다. 제사 지낸 뒤나 큰 잔치 때 외에는 쇠고기를 먹기가 쉽지 않았다.  
 
고대 로마시대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기원전 70~19년)의 '농경시'에 끼워진 그림에는 피리 부는 목동이 염소와 말에게 풀을 뜯기는 장면이 나온다. '농경시'에는 농경,목축,양봉의 방법이 담겨져 있다. 일종의 농업사전에 해당한다. 

서기 1~2세기 경, 중국 한(漢)나라 산둥 지방에서는 다양한 요리법과 음식이 개발돼 성행했다. 식재료가 과거에 비해 많이 늘고 외식업도 발달했다. 

서기 15세기 경,유럽에선 농민들이 봄이면 씨를 뿌리고 버터나 치즈를 만들어 먹었다. 당시 유럽 인구의 90%는 장원에 소속된 경작 농민이었다. 그러나 피지배 계층에 관한 기록은 군주와 부자 상인들의 그늘에 가려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농민들은 여름에는 양털을 깎고 건초를 수확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특히 8월엔 무더위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호밀,밀을 거둬 들였다. 가을에는 양곡을 비축하고, 씨를 뿌렸다. 겨울엔 가축을 내다 파는 경우가 많았다. 먹이를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한겨울에도 영주의 저택에서 온갖 시중을 다 들어야 했다. 1년 내내 뼈 빠지게 일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오는 먹을거리는 거의 없었다. 

반면 상류층은 배불리 잘 먹었다. 그들의 만찬은 호화판이었다. 귀족들은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 그들이 바닥에 버린 뼈는 개들이 먹었다.  

귀족들은 한 접시의 음식을 2~4명이 함께 먹었다. 이 때문에 식사 예절이 생겼다. 식사 전에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반드시 손을 씻어야 했다. 손으로 귀를 후비거나 코를 풀 수 없었다. 음식을 먹다가 접시에 내려 놓을 수 없었고, 접시를 뒤적거리지도 못했다. 

비슷한 시기, 아랍에서는 이슬람 세계가 열렸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유목민 생활을 끝내고 무역과 농업에 종사했다. 아랍인들은 로마인,페르시아인,유목민 등의 조리법을 바탕으로 새 원재료와 요리법을 개발해냈다. 그들은 이를 지중해 국가들에 퍼뜨렸다.  

15세기 말에는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항해에 나섰다가 이룬 쾌거였다. 이후 옥수수,감자,고추,토마토,초콜릿,땅콩,바닐라,파인애플,타피오카,칠면조 등 많은 식품이 전세계로 퍼지기 시작했다. 

1580년 대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옥수수 밭을 계획적으로 갈았다. 옥수수를 익지 않은 것, 반쯤 익은 것, 잘 익은 것으로 나눠 수확했다. 

18세기 유럽의 경우 당장 내일 먹을 양식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굴 요리 등 진귀한 음식을 즐기며 잔치를 열었다. 반면 가난한 농민들은 감자 등으로 연명해야 했다. 

1895년 프랑스의 '르 프티 저널'은 '맷돌로 돌아가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1840년대 도입한 철제 롤러 제분기가 밀을 갈 때 여러 가지 영양 성분을 없앰으로써, 흰 빵을 먹은 어린이들이 각종 결핍성 질병으로 고통받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몇 년 뒤 영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캠페인이 벌어졌다. 결국 제빵용 밀가루는 비타민B1,니코틴산 등의 성분을 일정 비율 이상 함유토록 의무화하는 규정이 생겼다.   

20세기 초, 영국에선 런던의 공장 근로자들이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불량 주택과 형편없는 식사 때문에 굶주림과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죽어 갔다. 런던 근로자의 약 3분의 1이 공공 자선기관에서 목숨을 잃었다. 

오늘날은 어떤가. 한 쪽에선 식량과 음식물이 무더기로 버려지고, 한쪽에선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 많이 먹어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너무 못 먹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음식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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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