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속 맞춤법 때문에 자살을 포기한다고?
자신이 함께 살고 있는 아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출생의 비밀을 알고 쥐알만할 때부터 우울하게 살아온 남자 고교생.
그는 사랑하는 여고생이 병든 홀어머니 병간호 등 이유로 원조교제하는 걸 우연히 알게 돼 큰 충격에 휩싸인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세상에 하직 인사를 남기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는 유서를 병 안에 넣어 물에 띄운 채, 욕조의 물 속에서 숨을 멈추고 자살을 꾀한다. 하지만 유서 속에서 부모에게 남긴 마지막 문장 중 '~ 다음 생에서 뵈요'라는 내용이 너무 너무 마음에 걸린다. 과연 '뵈요'가 맞는지 '봬요'가 맞는지 몰라, 고민 끝에 자살을 과감히 포기한다. 죽어서까지 무식으로 쪽 팔릴 수 없다는 우아한 판단에서다. ('뵈어요' 또는 봬요"가 맞춤법에 맞다!)
정윤철 감독의 영화 '좋지 아니한가'(Shim's Family, 2007) 속 내용이다. 결코 잘 생기지 못한 외모의 여고생 심용선(황보라 분)의 오빠 심용태(유아인 분)의 자살 시도 및 포기 스토리다. 시쳇말로 웃기는 짬뽕이다.
맞춤법은 일부 남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교제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한다. 내 주변에도 그런 경우가 수 차례 있었다. 맞춤법 실력이 너무 엉망인 사람이 나의 피붙이,살붙이와 사귀는 게 나도 썩 좋지 않다. 하지만 당사자들도 어지간히 싫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정도의 차별대우는 그나마 약과다.
여기저기 귀동냥한 바에 따르면 강남.서초 등 이른바 부촌에 사는 젊은이들 가운데 일부는 그 밖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는 만나는 기회 자체를 차단한다고 한다. 또 같은 강남 지역이라고 해도, 생활수준이 비교적 낮은 특정 초등학교 출신들과는 의식적으로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심해도 너무 심한 차별대우다. 그 떠들썩한 'SKY 캐슬'의 또다른 병적인 측면이 아닐까.
이런 망국적 태도에 비하면 이른바 '맞춤법 파괴자들'을 좀 무시하는 건 상당 부분 이해가 간다. 우리말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쓰자는 취지에서도 그렇다. 물론 그러자면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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