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온라인 세상은 한 유명 블로거의 공동구매 알선 논란으로 떠들썩하다. 150만 회원을 둔 ‘파워 블로거’ H씨가 안전성에 문제 있는 상품의 공동구매를 알선하고 2억여원에 이르는 수수료를 받기로 한 것. 이를 계기로 일부 유명 블로거들의 ‘도덕 불감증’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원고료’나 수수료를 받은 사실을 숨긴 채, 특정 제품에 대한 긍정적 리뷰를 쓰거나 공동구매를 독려하는 행위다. 논란이 커지면서 불로거들 사이에선 자정 노력도 시작됐다.
“무명 중소기업의 오존 세척·살균기를 단기간에 3000대나 팔 수 있었던 게 바로 파워블로거 H씨의 힘이었죠.”
녹색소비자연대 조윤미 본부장은 최근 문제가 된 파워블로거 H씨의 공동구매 알선·독려 논란에 대해 5일 이렇게 말했다. 네티즌들은 H씨가 고액 수수료 수령 사실을 감춘 채 문제 있는 제품의 공동구매를 알선한 사실에 놀라움과 배신감을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블로그 마케팅의 세계를 잘 아는 이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말 국내 문화·예술 분야의 유명 블로거 5명이 유럽의 한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경비를 댄 것은 전시마케팅업체 A사. 이 업체는 블로거들에게 답사여행기를 블로그에 올리되 반드시 그 도시 출신 모 화가의 작품을 언급할 것을 요구했다. 곧 열릴 이 화가의 전시회를 미리 홍보하려는 것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블로거들은 자연스럽게 이 화가의 작품을 블로그에 노출했고, 이들의 글을 본 사람들은 “너무 멋진데요. 이 화가의 전시회는 언제 하나요?” 등의 댓글을 올렸다. A사로선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이처럼 파워블로거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한 기업 마케팅이 본격화한 건 3~4년 전이다. 유명 블로거들의 막강한 영향력에 눈 뜬 기업들이 이들을 통해 제품을 홍보하거나 대량 판매를 시도하기 시작한 것. 전문 업체도 여럿 생겼다. 대기업들까지 나서 블로거에 제품을 기증하거나 일종의 ‘원고료’를 지급하고, 신제품에 대한 긍정적 리뷰를 부탁하는 일이 관행화됐다. 문제는 일부 업체들이나 블로거들이 이 같은 ‘지원’ 사실을 감춘 채 마치 자발적 선택인양 긍정적 리뷰를 반복적으로 게재하고 있는 점이다. 한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블로거 수준에 따라 리뷰 한 건당 10만~70만원의 원고료를 제공한다”며 “기업체 의뢰를 받고 리뷰를 쓰게 되면 아무래도 단점보다 장점 위주로 쓰게 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한 블로그 마케팅업체 관계자는 “입소문이 중요한 제품일수록 블로거의 힘을 빌리게 된다”며 “우리 회사도 수십 명의 파워블로거를 상시 관리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일부 블로거들은 기업 지원 사실을 회원들에게 고지하지 않는 점에 대해 "문제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요리·살림 분야의 한 파워블로거는 “조리기구나 식품에 대한 리뷰를 하려면 직접 요리를 해봐야 한다. 재료 구입비부터 조리와 리뷰 작성에 걸리는 시간까지, 투자해야 할 것이 많다”며 “원고료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공동구매 추진 때 기업으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것도 일인데 공짜로 진행하리라 믿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블로그들은 특히 유통망과 광고 채널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의 마케팅 창구로 각광받고 있다. 한 파워블로거는 실제로 “힘 없는 중소기업의 좋은 제품을 널리 알리는 데 일조한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 또한 블로그를 통해 소형 가전제품과 식품들의 공동구매를 수십 차례 진행한 바 있다.
하지만 모든 파워블로거들이 기업 마케팅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요리 관련 유명 블로그인 ‘올리브엣홈’ 운영자는 “파워블로거가 되니 기업 이곳저곳에서 공동구매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그러나 나를 믿는 이들에게 혹시나 피해를 줄까 걱정돼서 한번도 응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 블로거들은 자신의 블로그 회원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명목으로 기업체에 공동구매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 지난해 말 한 파워블로거는 청소기를 판매하는 기업체에 공동구매를 하고 싶으니 가격을 15% 할인해 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노세일’ 전략을 구사하고 있던 이 업체로서는 이런 요구가 당혹스러웠다. 파워블로거는 그러나 “우리 회원들의 수가 3만여 명이다. 이 정도면 할인 혜택을 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압박했고, 파워블로그의 강력한 힘을 무시할 수 없었던 이 업체는 해당 블로거와의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5% 할인한 가격에 제공했다.
조윤미 녹색소비자연대 본부장은 “일부 파워블로거는 이제 개인기업의 수준으로 성장했으며 취미 삼아 한다고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장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면 영업을 위한 얘기라고 감안해서 들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던 것에 대한 배신감이 크다”며 “블로그와 기업의 연계 자체보다 소비자 피해 예방을 위한 조치가 없었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블로그산업협회의 명승은 회장은 “블로그의 영향력이 기존 미디어를 위협할 만큼 커졌지만 이를 운영하는 일부 블로거들의 전문성이나 책임감은 이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가 블로거들이 자신이 제공하는 정보에 대해 보다 높은 책임감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또 차제에 블로그의 상업적 활동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생겼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파워블로거(Power Bloger)=방문자 수가 많고 댓글도 많이 달리는 등 호응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인터넷 블로그 운영자. 네이버·다음 같은 포털업체들이 해마다 블로거 중 상위 0.01~0.1% 이내에서 파워블로거를 선정한다. 이들은 고정 독자층을 형성해 ‘1인 미디어’로 활동한다. 인터넷 여론 지배력 때문에 기업들의 ‘입소문 마케팅’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