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명 수필/단상 회상2019. 1. 10.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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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 살레시오회(재단법인)가 운영하는 중학교에 다니던 때의 일이다. 감수성이 무척 예민했던 소년은 세파에 시달릴 때마다 성모상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께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드리곤 했다.

 

기도가 끝나면 가까운 곳에 있는 도서관을 찾았다. 거기서 흙·무정·유정·상록수 등 소설이나 ABC의 공포·셜록홈즈의 모험 등 추리소설 등을 닥치는 대로 골라 읽었다. 그 때문에 중학교 전체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학생으로 뽑혀 상을 받기도 했다. 도서관 관리자였던 오 수사님(한국 성직자)에게서 칭찬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당시엔 세례를 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종교 시간에 왕신부님(스페인 성직자)이 틀어주는 환등기 또는 예수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보며 마냥 신기해 했다. 또 운동장에서 당시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던 노 신부님(미국 성직자)을 자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농구를 함께 하며 즐겁게 보냈다. 당시 고교 교장 선생님은 마 신부님(이탈리아 성직자)이었다. 모든 성직자들이 우리 고맹이 학생들에게 아주 친절하게, 정겹게 대해 주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꿈 같은 중학교 학창시절을 마치고, 광주에서 고교에 진학했고, 우여곡절 끝에 개신교 재단에 운영하는 서울의 연세대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 대학에서 종교 수업과 채플을 통해 다시 하느님(하나님)을 만났다

논산훈련소에서는 절에 다녔고, 육군포병학교를 거쳐 전방의 자대에 배치됐을 때는 교회에 다녔다. 주일마다 찬송하고, 같은 분대의 군종병과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틈틈이 토론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예수의 성스러운 탄생과 부활을 믿지 못해 신앙의 길에서 멀어졌다. 연세대에 복학해 의무적인 채플 예배에 참석했으나, 신앙심을 기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결혼 후에는 야간불교대학을 마치고 수계했다. 법명은 종명(鍾鳴)이었다. 하지만 불교는 예수의 탄생과 부활을 믿지 못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종교라기보다는 수신,수양의 도()에 그쳤다. 성불을 향한 자기 성찰과 연마로 여겨졌다

그 뒤 세월이 지나면서, 언젠가는 하느님(하나님)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막연한 느낌과 당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그 길을 본격적으로 엿보고 있다. 이번에는 성경을 지식이 아니라 성령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그럴 것임에 틀림없다 

이에 앞서 몇 년 전 여름에는 매일 밤 성경 해설서를 조금씩 읽었다. 그 해설서는 '성경의 맥을 잡아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저자는 "성경은 지식이 아니다! 말씀을 체험하라!"고 강조했다. 당시 불교 수계자였으니, 지식 차원에서 이 책을 읽었다. 그 독서는 내게 일종의 '영적 사색'으로 다가왔다. 결코 나쁘지 않은 독서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종종 마주치는 숫자가 있었다. 바로 40이었다. 초등학교 때 재미있게 읽었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의 그 40이다. 성경에 따르면 하느님(하나님)은 홍수 심판을 내리기로 결심하고, 무려 40일 동안 비를 내렸다. 노아의 방주는 7개월 간 표류했고, 궁창 아래에서 물이 빠지기까지에는 4개월이 걸렸다.

 '성경의 맥을 잡아라'는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하느님(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애굽(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까지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했다. 이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워진 모세는 40년 동안 이집트 왕자의 신분으로 살았고, 시내 산에서 40일간 하나님께 금식기도를 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40년 동안 재위하다가 비참하게 죽는다. 그 바통을 다윗(데이비드)이 잇는다. 그 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를 구약에서 미리 보여주는 선지자가 등장했다. 엘리야와 엘리사였다. 이들은 이적(異積)을 행한다. 엘리야는 아합 왕의 군대를 피해 도망가다, 하느님(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보내준 숯불에 구운 떡과 물 한 병을 먹고 40일 동안 밤낮을 걸어 호렙산 동굴로 피신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와 성전을 짓고 성벽을 다시 건설할 때의 선지자는 학개,스가랴,말라기 등 3명이었다. 이 가운데 말라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기 전 400년까지 살면서 하느님(하나님)에 대한 경건한 예배를 회복해야 한다고 외쳤다

400년에 걸친 하느님(하나님)의 침묵시대를 거친 뒤 이 땅에 온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유다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했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 사흘 후 부활해 이 땅에서 40일 간 계시다가 승천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성령님에게 인도돼 갔던 가데스 바네아 지역의 낮 기온은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지역이라고 한다. 이런 내용을 담은 성경 해설서의 저자는 40일 동안에 성격의 맥을 잡을 수 있게 셀프 스터디북으로 책의 내용을 구성했다고 밝힌다. 그는 또 하느님(하나님)40일을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간으로 잡았다고 한다고 역설한다. 한 가톨릭 사제의 설명에 의하면 숫자 40은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 거치는 정화의 기간"이다.  

한편 성경의 영향 때문인지 14세기 베네치아에서는 선원 중에 병든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는 검역기간을 40일로 정했다. 여기서 qurantine(검역)이라는 단어가 생겼다고 한다. 이 내용을 종합해 보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의 40이라는 숫자도 성경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는 본인의 다른 블로그의 내용을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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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