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훈저널 2003년 겨울호]
기자 충원제도의 허와 실
金泳燮(중앙일보 편집국 부국장)
신문사도 ‘사람 장사’
세계신문협회(WAN)는 2003년 11월 6∼7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아시아 신문업계 대표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회의에서 ‘편집국 운영의 효율적 방안’이라는 주제를 발표한 티머시 볼딩 WAN 사무총장은 “모든 신문은 비효율적이다(Every newspaper is inefficient)라는 전제가 있는데 이는 전세계적으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신문사들은 효과성(Effectiveness)·효율성(Efficiency)·경제성(Economy) 등을 제대로 평가하고 자원할당(Resource Allocation)을 다시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원의 할당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기업에서의 의사결정이란 곧 (희소)자원의 할당이기 때문이다. 언론사도 예외일 수 없다. 신문·방송사 등도 계속기업(Going Concern)이다. 따라서 다른 업종의 기업처럼 ‘최대의 이익’을 내지 않더라도 ‘만족할 만한 이익’을 내야 생존할 수 있다. 이익을 올려 인적·물적 자원에 재투자해야 신문이 독자의 다양한 니즈(needs)를 충족시킬 수 있다.
자원은 크게 인적자원과 물적자원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인적자원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세계 일류기업들은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인재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업의 존망은 탁월한 우수인재를 얼마나 확보하고 양성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에는 인간관계, 즉 네트워킹이 중요하며 기업이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선 경영전략 수립시의 관점을 사업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게 세계 일류기업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이에 따라 세계 초일류기업들은 ‘First Who, Then What’(먼저 사람, 그리고 사업)의 순서로 일을 진행하며 개인의 핵심역량을 가려 육성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흔히 말하듯 ‘사람 장사’를 해야 하는 신문사에서는 특히 인적자원의 중요성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우수인력을 모집·선발해 적재적소에 배치, 편집국을 운영해야 신문의 질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것(Boosting Quality, Cutting Costs)이 가능하다.
모집선발배치의 3단계로 이뤄지는 인력 충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발이다. 초기의 인력유입 활동이 조직의 발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조직의 인력 충원은 인력 확보와 유입, 인력개발, 인력평가와 보상, 인력 유지와 퇴출 등 이른바 인사관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개인-조직 적합성’ 충족시켜야
인력 충원은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의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개인은 조직에 들어가 사회·경제적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조직생활에서 삶의 보람을 찾는 경우가 많다. 신문사에 입사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특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언론사 조직이 이같은 측면을 간과해서는 인사관리에서 큰 성공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공개채용으로 언론사에 입사해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한 A기자는 어느 날 후배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장탄식을 토했다.
“난 선배들이 원망스러워. 선배들은 수습기자로 입사한 후배를 몇 년 지켜보다 보면 좋은 기자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대충 알 수 있었을 것이야. 그런데 선배들은 진로를 바꿔보라는 조언을 전혀 해주지 않았어. 내가 기자로서의 어려움을 선배들에게 하소연하면 그들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술이나 마셔’라며 등을 두드려주면서 위로해주곤 했지. 그런데 난 일 속에 파묻히면서도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심적 갈등을 끊임없이 느껴왔지. 이제 어쩔 수 없는 상황에까지 몰렸어. 이 지경이 되면 개인도 괴롭고 회사도 괴로운 것 아니겠어.”
그냥 푸념으로 듣고 넘길 일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사례는 비단 A기자에 국한된 게 아니다. 어떤 조직에 이같은 인력이 같은 업종의 다른 조직보다 상대적으로 많다면 그 조직은 인력을 충원(채용)할 때 ‘개인조직 적합성’을 충족시키는 데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조직 적합성이란 개인과 조직의 가치, 목표, 규범, 비전 등이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진보적 가치관이 뚜렷하고 쉽사리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보수적 가치관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신문사에 입사한다면 성공적인 기자생활을 하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조직의 문화와 교육의 영향을 받아 개인과 조직의 적합성이 높아지는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 변화의 과정에서 큰 소모적 마찰과 갈등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B기자는 학창시절 성격이 매우 내성적이었고, 어릴 때부터 언론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다. 그러던 그가 대학 3학년 말 우연한 기회에 친구들과 이야기하던 중 언론사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 그는 언론사 시험준비를 착실히 해 필기시험에 합격했고, ‘자기 연출’을 훌륭하게 해내 면접을 통과, 한 신문사의 취재기자가 됐다.
B기자는 그러나 신문사에 들어가 훈련과정을 거치는 동안 자신의 적성이 취재기자에 맞지 않음을 절감하고 얼마 후 내근 기자를 지망,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따금씩 우울해진다. 자신의 전공에 걸맞게 다른 직업을 택했더라면 능력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발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심적 갈등을 빚곤 한다.
A기자와 B기자가 깊은 자괴감에 빠진 데는 자신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인식도 큰 영향을 미쳤다.
전문인력 스카우트 채용 늘어나
이처럼 공개채용의 벽을 뚫고 입사한 인력들이 조직 적합성을 띠지 못한다면 이는 신문사와 기자 모두에 불행한 일이다. 매몰비용(sunk cost)과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 이미 많이 발생한 뒤에서야 비로소 조직은 채용제도의 허점을, 개인은 직업(직장) 선택의 오류를 후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 채용의 중요성이 있다. 조직의 인력 충원은 이같은 공개채용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이뤄진다.
경영학의 인사관리(인력자원관리) 부문에서는 조직의 인력 채용 방법으로 크게 3가지를 꼽고 있다. 그물형 채용, 낚시형 채용, 양어장형 채용이 그것이다.
그물형 채용이란 공개채용을 말한다. 언론사는 통상 매년 말을 전후해 수습기자 모집공고를 내고 취재·편집·편집미술 및 디자인·교열·사진 등 부문의 필요한 인력을 선발한다. 주로 신문 지면과 인터넷으로 공고한다. 국내 일반기업에서는 85% 이상의 인력을 공개채용하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낚시형 채용은 개별적인 접촉을 통해 전문기술 또는 핵심기술을 가진 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른바 스카우트로 특정분야를 전공한 사람이나 경력자를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언론사에서는 편집기자, 교열기자, 사진기자, 디자인 및 그래픽(편집미술) 기자 등 전문인력의 상당수를 이 방법으로 확보한다.
양어장형 채용은 특정분야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력을 모집·선발하는 방법이다. 말하자면 ‘특수 교육 후 선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일반 기업에서는 소프트웨어·디자인·정보기술·산학협동 등 분야의 인력이 대상이다. 삼성이 멀티캠퍼스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정 자격요건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유료 교육을 실시한 뒤 우수인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예다.
방송발전기금으로 설립한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www.kbi.re.kr)은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 TV에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성해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한국언론재단은 2003년 5월 ‘예비 언론인 과정’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기자 지망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6개월(총 400시간) 교육과정이다. 언론재단은 대학 4학년 재학생과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모집공고를 내고 서류·필기시험·면접 등의 절차를 거쳐 연수생 30여명을 선발, 교육했다.
이 프로그램의 강좌는 스트레이트 기사를 쓰는 법을 비롯해 인터뷰 요령, 기획 스케치, 방송 리포팅 등 언론현장에 필요한 실무 위주로 이뤄졌다. 대학교수들과 현직 언론인들이 강의를 맡았다. 미국의 저널리즘 스쿨처럼 ‘준비된 기자’를 배출하는 게 이 프로그램의 목표다. 언론재단은 2004년에는 연수기간을 1년으로 늘리고 교육내용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과 한국언론재단은 그물로 만든 가두리를 물 위에 뜨게 하거나 물 속에 매달아 고기(인재)를 키우는 ‘가두리 양식장’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최근 국내 언론사들은 어떤 방법을 통해 인력을 채용하고 있을까. 주류는 역시 그물형 채용이다. 올해도 신문사들은 지면과 인터넷 사고로 수습기자 모집을 공고하고 채용 절차를 밟고 있다. 서류 전형, 필기시험, 면접 외에 지원자들의 이모저모를 살펴볼 수 있는 합숙훈련 등 현장평가를 곁들인 게 종전과 달라진 풍속도다. 한편으로는 최근 수년간 낚시형을 택하는 신문사들도 크게 늘고 있다. 문화일보가 김용옥 전 고려대 교수를, 대전매일이 박강수 전 배재대 총장을 기자로 영입한 바 있다.
미디어오늘이 월간 《신문과 방송》의 조사결과를 인용 보도한 바에 따르면 서울 소재 19개 신문사는 2001년부터 2003년 9월까지 모두 291명의 경력기자를 채용했으며, 이 가운데 약 60%가 스카우트, 즉 낚시형을 택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 일부 언론사는 해외 특파원을 내부 공모 등 방법으로 자충(自充)하는 대신 현지의 언어·문화에 정통한 전문인력을 뽑는다.
고효율 채용시스템 노력을
신문사들이 이처럼 낚시형 채용방법을 점차 늘리고 있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낚시형이 조직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다. 정보사회에서 독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다양한 컬러와 아이디어가 필요한데 기존의 수습(기수)기자 채용에 매달리면 조직이 자칫 동맥경화에 걸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 수습기자를 뽑아 유능한 기자로 양성하는 데 드는 비용(숨은 비용 포함)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동종업계에서 일정 수준 인정받은 경력기자를 뽑는 게 효율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최근 수년간 신문사들의 채용 루트가 다양해지면서 일부 신문사의 수습 출신과 경력 출신의 인적 구성비는 6대 4∼5대 5에 이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유능한 경력기자들이 지방 신문사에서 재경 신문사로, 작은 신문사에서 큰 신문사로 이동하면서 지방·소규모 신문사들에 타격을 준다는 지적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필자의 사견(私見)으로는 지식기반 사회에서 언론사의 채용방식도 일반기업에 못지않게 다양화·다기화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 현재의 ‘그물형(공개 채용)+낚시형(스카우트)’ 위주의 채용을 ‘그물형+낚시형+양어장형(특수 교육 후 선발)’의 혼합 채용으로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각 형태에 맞는 효율적인 기법을 개발해야 한다. 그물형의 경우 우리 사회에서의 마이너리티(minority) 개념을 확대하고 이들에 대한 배려를 늘리는 방안이 도입됐다. KBS는 지방대 출신, 장애인 지원자들을 상당수 합격시킨 것으로 보도됐다.
또한 국내에서 초기단계에 있는 양어장형 채용이 새로운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언론사는 각종 공모대회, 콘테스트 수상자에게 입사 전형시 특전을 주거나 특채를 함으로써 취재인력의 풀을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한국언론재단과 달리 각 미디어그룹이 독자적인 ‘미디어 아카데미’를 신설, 운영하면서 그룹 산하 언론기업에 필요한 우수 맞춤인력(Tailored Manpower)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다.
이와 함께 언론사들이 외부 미디어교육 단체들의 프로그램에 공동 참여하고 이들 단체를 일종의 헤드헌터로 활용하거나, 대학 및 대학원과의 산학협력을 실질적으로 확대해 새 피를 수혈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뉴욕타임스 등 외국의 유수 언론사들처럼 일정 자격요건을 가진 대학생 인턴기자를 선발해 1∼2년 이상 엄격하게 테스트한 뒤 우수인력을 모기업이나 자회사에 채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요건으로 인해 생생하고 구체적인 예를 들지 못했다. 필자는 채용방법의 다양화를 통한 고(高)효율 채용 시스템의 개발 노력이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또한 계속돼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기존 인력의 교육·개발에도 눈길을 돌려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