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 이후 '대중문화의 꽃'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관이나 TV,비디오 테이프,인터넷 동화상(動畵像) 등을 통해 많은 영화 작품을 접하면서도 아무런 비판 없이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기껏해야 신문 등 매스커뮤니케이션에 나오는 영화 평(評)이나 참고하기 일쑤다.
수동적으로 지켜볼 뿐 어떤 영화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우리의 가치관 형성 또는 변화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매커니즘에 무관심하다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연구를 통해 영화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언어체계의 네트워크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 영문학·영화학과 교수는 루이스 자네티는 영화의 이해』(Understanging Movies)(김진해 옮김,연암사,544쪽)라는 저서에서 영화를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네트 교수는 이 책에서 영화 언어체계의 네트워크를 사실주의와 형식주의라는 이분법(二分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촬영과 움직임'이라는 미세하고 특수한 분야에서 '이데올로기와 이론'이라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측면으로 나아가면서 영화에 대한 이해력을 높여주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촬영(photography), 미장센(mise en scene), 움직임(movement), 편집(editing), 음향(sound), 연기(acting), 연극(drama), 스토리(story), 문학(literature), 이데올로기(ideology), 이론(theory) 등의 순으로 저서를 구성했다. 그가 구성한 이 11개 장(章)에 담긴 영화 언어체계의 네트워크를, 세계 영화사에 충격을 던진 오슨 웰스(1915∼1985)감독의 작품인 '시민 케인'에 적용한 것이다. 자네트 교수의 이 네트워크를 기본 툴(tool)로 삼아 우리나라의 영화 '친구'를 텍스트로 분석해 보았다.
2001년 3월말 개봉된 '친구'(곽경택 감독, 등급 18세 이상, 상영시간 116분, 장르 드라마, 액션) 는 8백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큰 성공을 거뒀다. 영화 '친구'는 1976년, 1981년, 1990년, 1993년 등 다섯 가지 시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요 등장인물은 유오성(준석), 장동건(동수), 서태화(상택), 정운택(중호),김보경(준석의 애인 진숙) , 주현(준석의 아버지) 등이다. 또 각본은 감독 곽경택씨가 직접 썼다. 촬영은 황기석씨, 편집은 박곡지씨, 음악은 최순식씨, 미술은 오상만씨가 각각 맡았다.
그러나 작품성에 있어서는 논란이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평론가에 따라서는 이 작품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Once upon a time in America) 와 비교해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 영화의 일시적인 거품 현상(Bubble effect) 때문에 '친구'가 떴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이 영화의 전반적인 컨셉(concept)은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와 비슷하며, 장동건이 죽는 장면은 '인전 사정 볼 것 없다'의 여러 장면과 닮았다고도 한다. 어쨌든 영화 '친구'는 거대한 헐리우드 산업의 물결이 거센 가운데 국내 영화관에 관객을 대거 동원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화 '쉬리'의 기록을 훨씬 웃도는 관객이 영화관에 들게 한 요인은 무엇일까. 상당수 영화 평론가와 언론은 최근의 복고주의적 경향과 조폭 영화에 대한 일반 관객의 관심을 타고 이 영화가 대박을 터뜨렸다고 분석한다. 중년 세대의 감성과 젊은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함으로써 국민 상당수의 뇌리에서 사라질 수 없는 작품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과연 어떤 제작 기법을 사용했길래 그토록 놀라운 성적을 거뒀는지 정밀분석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떤 점이 관중의 복고주의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자극했고, 또 어떤 점이 조폭 영화에 대한 매력으로 다가와 호소력을 발휘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곽경택 감독도 연구의 한 대상이다. 그는 이 영화에 앞서 '억수탕' '닥터 K' 등을 연출했으나 흥행에 참패했다. 그러나 그는 영화 '친구'로 일약 주목받는 흥행감독이 됐다. 연출자가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큰 차이를 내는 요인은 무엇일까. 배우 장돈건은 연기력 등에서 썩 호평받지 못했으나 이 영화로 이미지를 크게 게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영화에서 특유의 카리스마를 분출한 유오성은 충무로에서 가장 캐스팅하고 싶은 배우 가운데 한명이 됐다.
이들이 어떻게 스타 파워(STAR POWER,배우의 관객 동원력)를 얻게 됐는지도 관심거리다. '쉬리'와 'JSA' 이후 한국 영화의 볼륨이 커졌다고는 하나 국내에 본격적인 블록버스터 영화시대를 연 게 바로 '친구'라는 분석도 많다.
실제 이후 '달마야 놀자''엽기적인 그녀''두사부 일체' 등 한국 영화들이 전례없이 히트했다. 이런 상황을 참고삼아 영화 '친구'를 분석대상으로 택했다. 위의 여러가지 궁금한 점은 이 연구가 택한 분석의 틀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2.이론적 배경
영화는 19세기말에 이르러 사실주의와 형식주의의 두 갈래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영화 '열차의 도착'(The Arrival of a Train)은 관객이 현실에서 본 것과 같은 사건이 영화속에 그대로 재현됐다는 점에서 관객을 사로잡았다.
사실주의의 창시자는 기록영화의 대부라할 수 있는 프랑스의 르미에르 형제다. 이들은 시퀀스 쇼트(커트 없이,연속된 하나의 테이크에서 촬영) 기법을 썼다. 한편 거의 비슷한 시기에 조르주 멜리에스는 완전한 상상을 바탕으로 한 사건에 중점을 둔 환상적 영화를 많이 제작했다. 그는 형식주의의 창시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실주의와 형식주의의 사이에 둘 수 있는 영화는 고전주의로 분류된다.
사실주의-고전주의-형식주의는 스타일을 기준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유형으로 분류한다면 이는 각각 기록영화(다큐멘터리)-극영화-전위영화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다양한 쇼트(일반적으로 피사체에서 카메라까지의 외견상 거리를 말함,경우에 따라서는 렌즈에 의해 거리가 왜곡될 수 있음)는 화면의 틀 안에 담긴 소재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영화의 쇼트는 여섯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익스트림 롱 쇼트, 롱 쇼트, 풀 쇼트, 미디엄 쇼트, 클로즈업, 익스트림 롱쇼트가 그것이다. 만약 인물이 익스트림 롱 쇼트로 찍힌다면 화면위에 점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 쇼트는 서부영화, 전쟁영화, 사무라이 영화 등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롱 쇼트는 가장 복잡하고 부정확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롱 쇼크는 연극에서 관객과 무대 사이의 거리에 해당한다. 이 범주 안에서 피사체에 가장 근접한 것은 풀 쇼트다. 이 경우 몸 전체가 겨우 담기는데 머리가 프레임의 꼭대기쯤에 있고 발이 프레임의 바닥까지 닿게 된다. 찰스 채플린 등 슬랩스틱 코미디언들은 풀 쇼트가 판토마임에 가장 적합하다는 이유로 풀 쇼트를 선호했다.
미디엄 쇼트는 무릎이나 허리 위에서부터 인물을 잡는다. 이는 움직이거나 해설하거나 대화하는 장면을 포착하는 데 좋다. 클로즈업은 사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앵글에는 버즈 아이 뷰(bird’s eye view), 하이 앵글, 아이 레벨 쇼트, 로우 앵글, 사각 앵글 등이 있다.
영화에서는 빛과 어둠도 중요하다. 야외 촬영의 경우 실우엣 효과는 부드럽고 낭만적일 수 있다. 필름 누아르(검은 영화)의 톤은 숙명적이고 편집증적(Paranoid)이다. 인간 조건의 어두운 측면을 강조하며 염세주의를 드러낸다.
한편 미장센은 원래 연극 용어로 '무대 위에 배치한다'는 뜻이다. 미장센은 복합적인 분석용어이며, 네가지 형식요소를 포함한다. 즉 ①행동의 무대화 ②물질적인 세팅과 무대장치 ③이 재료들이 프레임화되는 방식 ④이들이 촬영되는 방식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영화는 1.85대 1(표준)과 2.35대1(와이드 스크린) 중 하나의 비율로 영사된다.
구도와 디자인은 영화에서 때로는 상징의 기능을,때로는 배우의 감정 표현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삼각구도로 남녀의 삼각관계를 표현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영화는 총체적인 시각 디자인이라할 수 있다.
이처럼 2차원적으로 평면 위에서 패턴을 짜는 것은 기본이다.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입체적인 지배공간(Territorial Space)이다. 앤 밴크로프트와 더스틴 호프만이 출연한 영화 '졸업'에서 주인공인 대학생 벤저민이 부모의 친구인 연상의 여인의 유혹을 받는 장면을 생각해보자.
연상의 여인은 관객에게서 등을 돌린 채 상반신 알몸을 드러내고 대학생을 유혹하고 이 여인의 어깨 너머로 대학생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다. 그 뒤로는 창틀이 보인다. 이 장면에서 앞으로는 반라의 몸이, 뒤로는 창틀이 대학생을 사실상 감금하고 있다. 영화 프레임 안에서는 테두리, 즉 좁은 방으로 포위당하고 있다. 이를 보면 지배공간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밖에도 점근양식, 열린 형식과 닫힌 형식이 영화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움직임에서는 역동미,카메라 이동,움직임의 기계적 왜곡 등을 눈여겨 살펴보아야 한다. 편집은 영화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푸도프킨은 "영화 예술의 기초는 편집이다"고 말했다. 영화 편집에서는 연속성 측면 등을 고려해야 한다. 고전적 커팅, 형식주의 전통, 사실주의 전통을 상기하면서 어떤 영화가 어떻게 편집됐는지 분석할 수 있겠다.
일본의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영화적 음향은 단순히 영상효과에 부가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두배 세배 증가시킨다"고 했다. 영화에는 세가지 유형의 음향이 있다. 음향효과와 음악,그리고 말이다. 영화는 영상이 음향을 지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많은 음향효과는 잠재의식의 차원에서 작용한다.
1960년대 이래 많은 감독들은 사실주의에 충실한다는 명목으로 소란스러운 사운드 크랙을 고집했다. 시네마 베리테를 주장하는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영향을 받아 장 뤽 고다르 감독은 중요한 장면의 대화가 들리지 않더라도 현장음을 중시했다. 말의 중요성을 깨닫게해준 배우는 더스틴 호프만이다. 그는 가장 높은 수준의 기교로 억양과 음의 높낮이, 말투를 변화시키는 발성 테크닉으로 존경받고 있다.
다음으로 연기 부분을 살펴보자. 찰스 덜린은 연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화에서 배우는 반드시 사고해야 하며 그것이 얼굴에 나타나도록 연기해야 한다. 그 나머지 부분은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객관적인 성질이 처리할 것이다. 연극에서의 연기는 과장을 필요로 하지만,영화에서의 연기는 내면적인 생명력이 필요하다."
영화에서 예술가는 감독이다. 배우의 창조 기회는 연극무대에서 훨씬 더 많다. 영화 연기는 가변적인 예술이다. 그것은 엑스트라, 비직업배우, 훈련받은 직업배우, 스타 등 네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영화배우는 그가 어떤 연기를 하느냐에 따라 성격배우와 연기파 배우로 나누기도 한다.
그런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배우는 성격파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데이비드,헵번,브란도,드 니로 같은 연기파는 자신의 연기 영역을 넓히기 위해 가끔 전통적인 주연급보다는 불유쾌한 조연 역할도 맡는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스타는 어떤 때에는 성격배우쪽으로, 어떤 때에는 연기파 배우로 기울면서 이 두 극단 사이에 자리잡게 된다고 한다.
캐스팅은 그 자체로 영화에서 하나의 예술에 가깝다. 캐스팅에는 연기자 타입에 대한 예리한 감식력이 필요하다. 히치콕은 "캐스팅은 성격 창조"라고 강조했다. 촬영, 미장센, 움직임,편집,그리고 음향처럼 연기도 일종의 언어체계다. 영화감독은 자신의 사고와 정서를 전달하는 매체로 배우를 이용한다.
앙드레 바쟁은 "영화의 기능은 연극에서 다루지 않고 남겨 두었을 어떤 디테일을 드러내고 밝히는 것이다"고 말했다. 1950년대 중반 프랑스의 정기간행물 '카이에 뒤 시네마'는 작가주의 이론(영화예술에서 감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견해)을 유행시킨 바 있다. 오늘날에도 어느 나라 작품이든 가치를 인정받는 영화들은 감독이 주도한 것들이다.
훌륭한 영화에서 세팅은 단지 연기를 위한 배경이 아니라 주제와 성격 설정을 상징적으로 확대한 것이다. 세팅은 특히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의상은 하나의 매체다. 옷감의 클로즈업이 그 옷을 입고 있는 사람과는 무관하기조차 한 정보를 나타낼 수 있는 영화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의상의 의미에 가장 민감한 감독 중 한사람은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이다.
그의 작품 '알렉산더 네프스키'에서 침략하는 독일의 폭도들은 주로 의상을 통해 무섭게 드러난다. 독일군 헬멧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철제 헬멧 앞쪽에는 기분나쁘게 생긴 두개의 가로로 찢어진 틈새가 있다. 그들의 비인간성은 지휘관들이 헬멧 위에 달고 있는 동물의 발톱 표시로 더 강조된다. 장식이 많이 달린 그들의 갑옷은 퇴폐와 비인간성을 상징한다. 나쁜 성직자는 검은 수도사의 옷을 입고 있다. 반면 농부들은 느슨하고 물결치는 듯한 옷을 입고 있다.
영화 '베트맨'은 미술 연출의 승리작으로 통한다. 고담시의 모습을 만화책과 필름 누아르에서 조금씩 차용하고,독일 표현주의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해 꾸몄다고 한다. 음흉해보이는 골목과 어둡고 동굴 같은 틈바구니들은 휴머니티에 대항하는 끔찍한 범죄를 감추고 있다.
데이비드 보드웰은 "내러티브는 그 일관성을 찾는 사람의 요구를 보상해주거나 ,수정해주거나 좌절시키거나 혹은 헛되게 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내레이션은 영화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다. 사실주의적인 영화에서 내포작가는 사실상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연극무대에서처럼 사건들은 '스스로 말한다'. 스토리는 대개 연대기적인 순으로 자동적으로 펼쳐지는 것처럼 보인다.
형식주의적인 내러티브에서 작가는 가끔은 주제가 되는 생각을 최대화하기 위해 스토리의 연대기를 뒤범벅하거나 사건을 강화하거나 재구성하는 등 공공연하게 조작한다. 올리버 스톤의 문제작인 'JFK'에서처럼 스토리는 주관적인 관점에서 전달된다. 스토리가 연대기 순으로 된 일반적인 소재,극적행위의 가공되지 않은 재료라고 정의된다면 플롯은 스토리 위에 구조적인 패턴을 포개어 놓는 스토리텔어의 방법과 관계가 있다. 사이드 필드에 따르면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는 세 막(act)으로 나눌 수 있다.
줄거리 안에는 열개에서 스무개 정도의 플롯 포인트(중요한 전환점 또는 핵심사건)이 들어간다. 내러티브도 사실주의적인 것과 형식주의적인 것으로 나눠 분석할 수 있다. 한편 장르영화란 전쟁 영화,갱 영화,공상과학 영화 등 특정 유형을 말한다. 장르 영화에는 수백가지가 있다.
영화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알렉산드르 아스트뤽은 "작가가 펜으로 쓰듯 영화감독은 카메라로 작품을 쓴다"고 말했다. 영화 대본은 완결된 문학작품은 아니다. 각본은 종종 그 역할을 하는 배우가 수정한다. 특히 각본이 특정 스타를 위해 씌어진 경우에 그렇다. 영화에서는 비유적인 테크닉으로 모티프, 상징, 메타포를 쓴다. 모티프는 영화에서 체계적으로 반복해 나오지만 관객의 주의를 특별하게 끌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영화를 반복해 보더라도 모티프를 뚜렷하게 찾아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인유(allusion)는 다른 영화나 감독에 대한 경의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고다르와 트뤼포가 유행시켰다.
봅 포스의 '올 댓 재즈'는 그의 우상인 펠리니 감독에 대한 찬사를 담았으며 특히 '8과 2분의1'에 대해 경의를 표시한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종종 그의 우상인 월트 디즈니와 알프레드 히치콕에게 존경심을 표현했다.
소설에는 1인칭 시점, 전지적 시점, 3인칭 시점, 객관적 시점 등 네가지 시점(視點)이 있다. 영화에서 1인칭 화자를 만들기 위해선 카메라는 모든 행동을 한 인물의 시야를 통해 기록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관객을 주인공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감독이 1인칭 시점의 카메라 사용을 고집한다면 관객은 주인공을 결코 볼 수 없다. 다만 주인공이 보는 것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전지적 화자는 19세기 소설과 종종 연관된다. 전지적 서술은 영화에선 거의 불가피한 것이다. 감독은 하나의 반응(클로즈업)에 집중할 수도 있고 인물 대여섯명의 반응을 동시에 잡을 수도 있다. 거의 동시에 서로 다른 시간대와 장소를 연결시킬 수도 있고 상이한 시간대를 직접 겹쳐 놓을 수도 있다.
영화 가운데 상당수는 문학 작품을 각색한 것들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소설이나 희곡을 영화화하는 것은 순수한 시나리오를 쓰는 것보다 더 많은 기술과 독창성을 요구한다. 문학작품이 좋을수록 각색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문학 작품을 영화화한 것 가운데 대대수가 별로 신통치 않은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삼는다.
각색은 충실도에 따라 대략적 각색, 충실한 각색, 축자적 각색으로 나눌 수 있다. 축자적 각색의 경우 희곡을 원작으로 삼는 경우에 한정된다.
모든 영화는 편향적이다. 흡인력이 있는 특정인물과 제도, 행위,모티브에 특권을 부여하는 반면 싫어하는 것들을 강등시키는, 특유한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갖는다. 영화를 제작하는 데 이데올로기적 명시성의 정도는 매우 다양하다. 편의상 중립적인 영화, 함축적인 영화, 명시적인 영화 등 세가지 범주로 나누기도 한다.
중립적인 영화는 가장 극단적인 경우 비재현적인 전위영화로 이데올로기를 사실상 결여하고 있다. 그들의 가치는 색깔,모양,형태의 운동성 등 주로 미학적인 것이다. 함축적인 영화는 주인공 등이 갈등하는 가치 체계를 보여주긴 하나 자세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명시적인 영화는 주제 지향적이다. 애국심을 강조하는 영화, 다큐멘터리, 정치 영화, 사회학적 관점에서 주의를 기울이는 영화 등이 여기에 속한다.
영화도 정치처럼 좌파,중도파,우파 모델을 갖는다. 또 문화,종교,민족성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스며들게 마련이다. 페이니즘이나 게이 해방 문제 등도 이데올로기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톤(tone)은 극적 소재에 대한 감독의 태도가 창조해내는 일반적인 분위기, 그 재현 방식을 가리킨다. 톤은 주어진 가치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강한 영향을 미친다.
3.연구 방법
이번 연구는 담당 교수의 지도와 문헌 검색 등을 통해 '친구'라는 텍스트를 분석하는 것이다. 영화 관련 문헌 가운데서는 자네트 교수의 『영화의 이해』를 중요한 툴로 선택했다. 이를 보완하는 문헌으로는 『클라시커 50』(니콜라우스 슈뢰더 지음,남완석 옮김,해냄 291쪽), 『정치와 영화』(박종성 지음,인간사랑 444쪽), 『대중문화의 이해』(원용진 지음,한나래 372쪽), 『전설의 시대-헐리우드 키드의 20세기 영화 그리고 문학과 역사』(안정효 지음,들녘 335쪽), 『이야기 한국영화사』(김 화 지음,하서 337쪽), 『하재봉의 영화 읽기』(하재봉 지음,예문 355쪽),『이동진의 시네마 레터』(이동진 지음,문학동네 255쪽),『철학으로 영화보기』(김영민 지음,철학과 현실사 227쪽), 『영화 속의 건축 이야기』(홍성용 지음,발언 268쪽),『씨네 21 영화감독 사전』(한겨레신문사 615쪽) 을 택했다.
4.분석 결과 및 결론
◇촬영 기법
영화 전반부에서 등장인물들이 바다에서 고무 튜브를 타면서 '조오련과 바다 거북이 중 누가 빠를까'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는 장면은 중년 전후의 관객들의 향수를 자아냈다. 이 대목은 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촬영한 데서 그치지 않고 스토리의 중반 이후를 대비해 뭔가를 예비해 놓았다. 세월이 흘러 세파에 시달리던 등장인물들, 특히 동수가 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싸움'을 이용해 다른 조직의 두목 등을 경찰에 고발해 사우나에서 연행되게 한 뒤 부하로부터 작전(사우나작전)이 성공했음을 보고받는 장면에서 그 예비가 뭔지 알 수 있다. 동수는 부하에게 조오련과 바다 거북이 가운데 누가 빠르겠냐고 묻는다. 그러나 동수는 당황해 말을 못하는 부하에게 그 질문을 다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물음이며, 비록 겉으로는 친구를 잊은 듯한 언행을 일삼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옛날 그 시절과 바다에서 함께 놀던 친구들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고 쓰라린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중학교 시절 촐싹대던 중호가 제의해 영화 값 내기 달리기 시합을 하는 대목을 보자.이들이 'Bad case of loving you' 음악에 맞춰 내달리는 길가의 한 가게에서 사시미칼을 갈고 있는 장면(주인의 모습은 내비치지 않음)도 미래의 비비린내 나는 살육전을 예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화면의 중간에서 주인공들이 달리는 모습을 바탕으로 등장하는 사시미칼은 그들이 달리다 넘어지지라도 하면 금방 콱 찔릴 것 같은 위기감을 주도록 촬영됐다. 영화의 후반부 '인턴사원'(조직폭력배 입단 교육에 해당함) 교육에서 준석은 "나는 15cm 이상이 되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칼은 장난치기 위해 갖고 다니는 게 아니다. 사시미칼 정도는 돼야 죽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내 준석의 조직원이 비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가운데 동수를 사시미칼로 난도질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영화 전반에 걸쳐 여러번 등장하는 '칼 폭력'은 전반부 등장인물들이 달리기할 때 포커스를 맞춘 사시미칼로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초반부의 그 칼은 폭력으로만 연결되지는 않는다. 항도 부산의 이미지와도 이어지고, 중호가 훗날 2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삶의 한 방편으로 운영하는 횟집과도 연결된다. 사시미칼은 이처럼 두가지 상반된 일에 쓰여질 수 있다. 하지만 깡패가 된 친구든 횟집을 하며 사는 친구든 결국 삶을 꾸리기 위해 칼을 손에 쥔다. 관객들은 그 칼 하나를 놓고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겠다.
그룹사운드 레인보우의 공연이 끝난 뒤 준석의 집에서 벌어진 혼성 파티에서 준석은 자신도 마음에 두고 있는 리드 싱어 진숙을 친구 상택에게 양보한다. 순진한 상택은 그녀에게 입술만 뺏겼을 뿐이다. 그러나 이후 그녀는 준석과 함께 살면서 그의 마약 중독 등을 참아내는 여인이 된다. 좋아하는 여자까지 양보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친구간의 우정임을 감독은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닐까.
곽경택 감독은 ‘억수탕’이나 ‘닥터 k’에서 그랬듯 전체적으로 안정된 촬영기법을 보여준다. 특히 이 영화에서 큰 효과를 거둔 핸드 핼드 기법(카메라를 고정시키지 않고 손으로 들고 찍는 기법)은 주인공들이 시장을 뛰어다니는 장면들을 효과적으로 살려냈으며 영화에 생동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미장센
영화를 구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양식이 미장센이다.이 영화의 미장센 중에서 화두를 뽑아내라면 단연 복고다. 의상과 분장 그리고 인물의 표정 그리고 촬영 방법에 있어서 철저하게 과거를 되살려내는 작업에 충실하다. 극중 시대상의 재현은 물론이고 검은 교복,공포의 소독차,뻥튀기 장수,개장수,장미희·유지인의 화장품 포스터,포니 승용차,노란 택시,디스코 청바지, 대유행했던 실크터치 파마,동네 담벼락에 붙어있던 ‘어두동’‘디어헌트’등의 포스터, 틴에져의 스타 브룩 쉴즈와 피비 케이츠,소피마르소의 대형 브로마이드, 그리고 롤러스케이트장 등. 우리에게 아주 가까웠던 과거를 고스란히 재현해 아스라한 향수를 자극한다. 이는 배우의 연기에서 얻는 즐거움과는 또 다른 맛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편집
이 영화 촬영장에는 항상 새로운 것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촬영한 장면을 현장에서 바로 편집해 장면의 전환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 등장했다고 한다. 이 ‘현장 편집기’는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일반적인 장비에 속한다. 소위 세트 에디팅(SET EDITING)이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여러 모로 촬영을 원할하게 진행할 수 있게 해준다. 카메라로 촬영된 아날로그 신호 이미지를 디지털 신호로 바꿔 컴퓨터에 저장해 이를 편집 프로그램으로 편집했다고 한다. 이같은 현장 편집시스템은 배우들이 촬영장에서 직접 자신의 연기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음향
이 영화의 배경음악으로는 모두 17곡이 선택됐다. 그 가운데 '친구'가 5분36초 분량으로 가장 길고 '유년의 바다1'이 1분19초로 가장 짧다. 이밖의 음악은 In Memorium(4분46초), 연극이 끝난 후(4분10초), Bad Case of loving You(3분11초),
날개(4분23초),옥상(2분6초),벽 1(2분52초), 사진(1분42초), Genesis(4분18초), 친구1(5분36초), 유년의 바다2(2분12초), 극장(2분 11초), 벽2(3분56초),창고(1분44초), 동수의 죽음(4분29초), 교도소 면회(5분32초), 친구2(4분38초) 등이다.
최순식·최만식 2인조가 만든 ‘친구’ 사운드트랙은 그들이 직접 작곡한 모리꼬네 풍의 오케스트레이션 배경음악과 동요, 그리고 영화 장면에 적절하게 발화하도록 선곡한 곡들과 영화 장면에서 직접 채집해 온 곡들로 이뤄져 있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기까지 여름만 되면 동네 골목들을 매캐한 안개로 가득 채웠던 소독차가 지나가는 첫 씬에서 “In Memorium”이 흐른다. 감상주의적인 회상에 진지함을 잔뜩 얹어주는 현악 오케스트레이션이다. 이 영화에서 순정만화같은 시퀀스의 강렬함을 발하는 씬에 흐르던 노래가 ‘연극이 끝난 후’다.
대학가요제에서 나왔던 이 노래는 영화에선 교내 콘서트 장에서 여고생 그룹 사운드 ‘레인보우’가 연주한다. 이 음악이 옛날 교복을 걸친 껄렁껄렁한 네 친구들이 얼어붙은 듯 감동한 장면을 유발한다. 이런 것이 음악의 효과가 아닌가 한다.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노래가 로버트 파머(Robert Palmer)의 “Bad case of loving you”다. 386 세대의 청춘시절을 화끈하게 장식한 음악이다. 영화료 내기를 하며 네 친구가 달리는 씬에서 흐르는 이 음악은 직설적인 음악 기호를 배치한 의도가 인상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연기
이 영화에서 유오성의 연기는 카리스마를 연상케 한다.눈을 부라리면 섬뜩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그의 인상은 일품이다. 특히 되도록 말을 아끼고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때로는 천천히,때로는 막 쏟아내는 말과 연기는 이 영화의 분위기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
준석(유오성 역)의 부친은 폭력 조직의 두목이었다. 이 때문에 언젠가는 어둠의 세계에 발을 담글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난 인물로 비쳐진다. 명암이 강렬하게 대비되는 준석은 각진 얼굴을 가졌다. 그 얼굴의 슬프고 고독한 눈빛 연기를 유오성이 참 잘해낸 것으로 보인다.
장의사를 소명으로 여기고 사는 홀아버지와 함께 사는 동수(장동건 역)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를 거들어 시체를 염한다. 배우 장동건과 영화 속 동수는 닮은 점이 전혀 없다.하지만 아버지의 천한 직업 때문에 항상 컴플렉스를 느끼며 사는 인물의 연기를 장동건이 잘 소화한 것 같다. 그는 기존 인물을 억지로 흉내내지 않았다. 시나리오가 주는 느낌대로 인물을 표현하면서 동수의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그의 연기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그가 유오성파 조직원이 휘두른 사시미칼에 난도질당한 뒤 "많이 묵었다. 고마(그만) 해라"는 말과 함께 한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그 눈초리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벌어진 처절한 복수전을 더욱 처절하게 만든 게 아닐까.
전체적인 내용에서 볼 때 이 영화는 ‘모래시계’와 비슷한 측면이 적지 않다. 장동건이 죽어가는 장면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여러 장면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신문 등 언론에서 뉴스가치를 판단할 때 종종 쓰는 말이다. 평론가들은 그리스 시대부터 주창됐던 모방(미메시스)을 효과적으로 살려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친구’는 이런 부분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스토리
가난한 장의사의 외아들 동수, 폭력조직의 두목을 아버지로 둔 준석, 모범생 상택, 떠벌이 중호.네사람은 항상 붙어다니는 친구다. 이들은 도색잡지를 보며 성(性)에 대한 호기심을 서로 드러낸다. 또 홍콩액션 배우 이소룡의 쌍절곤을 탐내기도 한다. 상택은 전교에서 1,2등을 다투지만 동수와 준석은 학생부에 수시로 불려가는 문제학생이다. 강단있는 성격의 준석은 싸움을 할 줄 모르는 순진한 상택을 감싸준다. 동수의 극단적인 성격은 중간중간 갈등을 빚고 뭔가 터질 것 같은 예감을 준다.
어느날 중호의 제의로 이들은 여고생 그룹사운드 ‘레인보우’의 공연을 보러간다. 중호는 늘씬한 베이스 여학생에게, 상택은 싱어 진숙에게 각각 호감을 느낀다. 동수는 말이 없지만 진숙에게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보스격인 준석은 진숙과 상택이 골방에서 만나게 해준다. 2인자 격인 동수는 화장실에서 준석에게 화를 내며 저항한다. 상택이 난생 처음 여자와 키스를 한 그날 동수는 준석에 대한 원망을 가슴에 품는다. 하지만 깡패사회의 독특한 서열을 존중하고 쓴 미소만 짓는다.
상택은 진숙과 몰래 데이트하다 다른 학교의 깡패들과 시비를 벌인다. 준석과 동수,중호는 힘을 합쳐 상택을 위기에서 구해낸다. 동수는 각목을 들고 싸움의 한복판에 뛰어들고 준석은 유리창틀을 뽑아 통째로 내던진다.이 사건을 계기로 두사람은 결국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다. 대학에 들어간 상택과 중호는 준석과 동수를 찾아간다.
그러나 두 사람은 조직폭력배가 돼 있었고 동수는 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어머니가 죽자 실의를 못이긴 준석은 마약에 중독돼 폐인이 다 돼 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펴지는 남포동거리에서 준석은 상택의 등에 달라붙어 사시나무 떨듯 경련을 일으킨다. 그가 침을 뱉을 때마다 히로뽕을 연상케 하는 하얀 마른 침이 아스팔트에 박힌다. 그를 바라보는 상택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아버지마저 잃은 준석은 이를 악물고 약을 끊는다. 그리고 선친이 과거에 거느렸던 조직의 행동대장이 된다. 상택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중호는 횟집을 운영하면서 평범한 삶을 꾸린다. 조직내의 세력다툼으로 준석과 멀어진 동수는 새 조직에 합류한다.
노태우 정권시절 선포된 범죄와의 전쟁으로 조직폭력배들은 속속 검거된다. 그리고 폭력조직에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벌어진다. 동수와 준석은 자웅을 겨루는 폭력조직에 소속돼 친구에서 적으로 변한다. 어느 비오는 날 준석은 부모님의 제삿상에 조심스레 잔을 하나 더 올린다. 그리고 같은 시간, 공항에 가려던 동수의 앞을 두 명의 괴한이 가로막는다.
동수는 준석의 조직원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다. 그리고 준석은 도망을 다니다 결국 붙잡혀 살인교사 혐의로 재판정에 서게 된다. 준석은 거짓말을 하라는 동수 아버지와 중호의 간곡한 권고를 뿌리치고 동수의 살인은 자기 책임이라고 말한다. 면회를 간 상택이 준석에게 왜 그렇게 말했느냐고 질책하듯 묻자 준석은 “쪽팔린다 아이가”라고 대답한다.
사형선고를 받은 뒤 교수대를 향해 걸어가는 준석의 뒷모습에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함께 놀며 우정을 다지던 네 친구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데올로기
제목과 내용이 그렇듯 영화에는 친구라는 말이 많이 사용된다. ‘우리 친구하자.’, ‘친구끼리는 미안한 거 없다.’, ‘친구로서 부끄러운 모습 보여 미안하다.’, ‘친구야 잘 가라’. 그러나 그 의미는 제각기 다르다.
어릴 때 조오련 선수와 바다거북의 가상대결을 놓고 승강이를 벌였던 장면과 대사는 시간과 상황을 달리하면서 되풀이된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그것은 동수가 준석의 부하에 의해 죽고, 재판정에서 준석이 모든 걸 시인하는 장면과 더불어 ‘친구란?’이라는 물음에 뜨거운 느낌표를 찍게 만든다는 분석도 있다.
또 ‘개안타’ 는 '말 안해도 나는 네 마음을 안다' 는 뜻이다. 이를
뒤집으면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모른다'는 말이 된다. '우린 친구 아이가' 는 '우리가 남이가' 와 같이 철저한 동류의식을 드러내는 말이다. 이를 부산지역의 정서를 보여주는 영화로 확대 해석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친구'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투박한 위안이 될 수 있다고도 한다.
이 영화에서 두드러진 이데올로기 중 하나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점이다. 이 영화에서 남자들은 수직적인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반면, 여성들은 수평적인 인간관계를 추구한다. 남자들의 모임에서는 은연중 서열이 매겨진다. 영화 친구에서도 준석(유오성 분)과 동수(장동건 분)는 통과 부통이라는 1인자와 2인자의 삶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의리와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한 울타리에 속해있지만, 이들에게는 엄연히 서열이 존재하고, 이 서열이야말로 그들 사이의 질서가 아닐까. 물론 이런 서열의 끄트머리에는 먹물로 상징되는 상택이 놓여있다. 준석은 자신이 힘으로는 충분히 상택을 제압할 수 있음을 안다. 하지만 그런 힘은 뒷골목에서나 통할 뿐 사회를 끌어가는 최고의 권력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우리 사회의 권력은 먹물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사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도 그랬다. 70년대 중반 고교입시를 통해 들어간 명문고에서는 이들 네 친구와 유사한 현상이 많이 벌어졌다. 건달에 속하는 학생들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나름대로 대우했던 일이 기억난다.
이 영화는 선이 굵은 남자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남자들이 그렇게 폼을 잡고 최고의 가치라고 여기는 우정과 의리는 어린 시절에 끝장난다. 남자들은 생존의 문제와 만나게 마련이다. 그럴 경우 친구는 경우에 따라 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는 법이다. 이런 것은 가부장적인 전통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분석도 그래서 나오는 것 같다.
가부장적인 문화는 가족과 남을 철저히 구분한다. 자신의 울타리 안에 들어온 사람은 가족의 일원으로 대접하고 인정하는 대신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은 철저히 배척한다. 그래야 남자들만이 대물림하는 가족의 전통이 이어지며,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족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모두 평등한 대우를 받는 건 아니다.
가부장제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한 명의 남자가 우두머리가 되어 대를 잇고, 나머지는 그에게 복종한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들의 유대감을 이어주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이런 유대감이 없다면 가부장제의 우두머리는 항상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언제든 자신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다른 남성들을 경계하느라고 정신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이때 이들을 이어주는 달콤한 유대감이 바로 우정과 의리 또는 가족애 등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