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명 수필/단상 회상2010. 7. 14.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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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두인 아버지가 세 아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유산은 낙타 17마리였습니다. 
아버지는 유서에서 재산 분배를 명했습니다.
"큰 아들은 낙타의 절반을 상속받고,둘째 아들은 3분의 1을 받아라.그리고 막내는 내가 남긴 낙타의 9분의 1을 가져라."
세 아들은 머리를 쥐어짰으나, 17마리를 아버지의 유언대로 나눌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현자가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지혜롭기로 이름난, 나스 알 파드 출신의 헬림 벤 박티어 촌장이었습니다.

촌장은 자신이 타고 온 낙타의 등에서 내렸습니다.
"자네들이 갖고 있는 17마리와 내 낙타를 합쳐보게. 모두 18마리 아닌가.  자,이제 선친의 유언대로 자네들에게 낙타를 나눠주겠네. 장자는 (18마리의) 절반인 9마리를 갖게. 둘째는 (18마리의) 3분의 1인 6마리를 갖고. 막내 아들은 (18마리의) 9분의 1인 2마리를 갖게. 9+6+2=17마리이네. 한 마리는 원래 내것이니 이건 내가 타고 가겠네. 됐나?"

우리의 18번 째 낙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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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명 수필/단상 회상2010. 7. 1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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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e4

병 없이 앓는,
안동댐 민속촌의 헛 제사밥 같은,
그런 것들을 시랍시고 쓰지는 말자.

강 건너 臨淸閣 기왓곡에는
아직도 북만주의 삭풍이 불고,
한낮에도 무시로 서리가 내린다.

진실은 따뜻한 아랫목이 아니라
성에 낀 창가에나 얼비치는 것,
선열한 陸史의 겨울 무지개!

유유히 날던 鶴 같은 건 이제는 없다.
얼음 박힌 山川에 불을 지피며
오늘도 타는 저녁 노을 속,

깃털을 곤두세우고
찬바람 거스르는
솔개 한 마리.

시'솔개'전문 (김종길 시인)


요즘 솔개 예찬론이 뜨겁다.
온-오프가 따로 없다.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의 홈페이지에는,솔개의 진취적 기상을 들어 개혁세력의 비상을 촉구하는 외부 칼럼이 실려 있다. 황영기(黃永基) 우리은행장은  '생존을 위한 개혁'을 강조하면서 솔개가 생명을 연장하는 몸부림을 소개했다. 뿐만 아니다. 각종 포털사이트,언론사 사이트,각종 단체 심지어 교회 홈페이지에도 솔개 예찬 글이 속속 올라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오늘 자 중앙일보 오피니언 면 분수대 칼럼엔 경제부 이세정 차장이 쓴 '솔개'제하의 글이 실렸다.
이러니 솔개에 대해 모르다간 간첩으로 오인받거나 무식꾼이 될 판이다. 솔개 예찬의 요지는 이렇다.
"솔개는 가장 장수하는 조류다. 최고 약 70세의 수명을 누릴 수 있는데 이렇게 장수하려면 약 40세가 되었을 때 매우 고통스럽고 중요한 결심을 해야만 한다.  솔개는 약 40세가 되면 발톱이 노화해 사냥감을 효과적으로 잡아챌 수 없게 된다. 부리도 길게 자라고 구부러져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되고, 깃털이 짙고 두껍게 자라 날개가 매우 무겁게 된다. 따라서 하늘로 날아오르기가 나날이 힘들다.  이즈음이 되면 솔개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약 반년에 걸친 매우 고통스런 갱생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갱생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산 정상부근으로 높이 날아올라 곳에 둥지를 짓고 머물며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한다.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만든다. 그러면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는 것이다. 그런 후 새로 돋은 부리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새로 발톱이 돋아나면 이번엔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약 반년이 지나 새 깃털이 돋아난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다. 다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된다.(매일경제 연재 <우화경영>, 정광호 세광테크놀러지 대표의 글)

솔개(소리개,수리개)는 영문명이 Black Kite이고,학명은  Milvus migrans lineatus (J.E. GRAY) 이다. 몸길이는 68.50cm, 깃은 어두운 갈색,부리는 검은 색, 다리는 녹색이다. 꼬리가 다른 수리에 비해 길고, 꼬리를 폈을 때 가운데가 안으로 들어간 게 특징이다. 겨울철새로 도시와 경작지에 산다.

kite2
<전남 여수 남쪽의 연도(소리도)의 등대>

살펴보건대 솔개에 얽힌 이야기가 적지 않다.  장자가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제자들이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의 시신을 먹을까봐 두렵다"고 했다. 그러자 장자는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되고, 땅 속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되거늘 어찌 한 쪽 것을 빼앗아 딴 쪽에 줘 한 쪽 편만 들려고 하느냐"며 나무랐다고 한다.
조선시대 성종은 장군 어유소에게 "날아가는 솔개를 쏴 맞히면 그 놈이 떨어진 곳까지 땅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장군 어유소가 쏜 화살에 맞은 솔개가 떨어진 곳이 경기도 동두천시 생연동이라고 한다.
용인시에는 솔개초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는 이 맹금류의 정신을 가르치기 위해 '솔개교육'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여수 남쪽에는 솔개가 날개를 편 모양의 연도(鳶島)가 있다. 주민들은 이 섬을 '소리도'라고 부른다. 이밖에도 전국 곳곳에 솔개와 관련된 지명이 적지 않다.
 솔개는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의 꿈 그 자체이기도 하다. 시인 김종길처럼 솔개의 웅혼한 기상과 말없음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다. 가수 이태원은  '솔개'라는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말 안하고 살 수가 없나. 나르는 솔개처럼...”
 


kite3
<박환성 감독의 '솔개,그 마지막 몸짓'에서>

그런데 큰 문제가 생겼다. 예부터 우리의 삶 곳곳에 투영된 솔개들이 사라졌다. 연포 해수욕장이 있는 자리는 물론,서울의 고궁 근처에 떼를 지어 살던 솔개들이 자취를 감췄다. 2004년 초에는 TV에서 환경스페셜 프로그램의 주제로 '한반도 마지막 솔개,최초공개!'를 다룰 정도가 됐다. 마지막 생존지가 낙동강 하구라는 것이었다. 또 환경영화제엔 '솔개,그 마지막 몸짓'이라는 작품(박환성 감독)이 출품돼 상을 받았다. 지금 우리 산하에서 과연 몇 마리의 솔개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이쯤되면 매우 착잡하다. 우리 스스로 환경을 파괴하는 바람에 그 놈들이 단말마 같은 비명을 지르며 죽어 가지 않았을까. 아예 이 땅을 떠나 서식지를 옮기지 않았을까. 생각은 '솔개 예찬론'에까지 이른다. 이솝우화에도 등장하는 이 용맹하고 진취적인 새가 우리 눈앞에 잘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솔개를 이렇게 예찬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정신을 상기할 수는 있겠지만, 치열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기업이 과연 솔개를 배울 수 있을까. 기업은 두 발로 달리는 자전거와 같다는 말이 있다. 조금만 멈추어도 뒤뚱거리다 거꾸러지고 만다. 적자생존(the survival of the fittest)의 좋은 예가 될 수 없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괜히 트집을 잡는 것 같아 좀 미안하다. 하지만 차라리 '바퀴벌레'를 배우는 게 좋지 않을까? 
<<바퀴벌레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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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명 수필/단상 회상2010. 7. 14.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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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1
우리 집 여왕개미(Queen ant)가 '신생의 축제'(결혼비행,nuptial fligt)에서 자신을 좇아 하늘로 날아오른 생식개미와 결합한 지도 어언 19년이 더 지났다. 내년 초면 왕국 건설 20주년을 맞는다. 여왕개미는 일개미 한 마리와 병정개미 두 마리를 거느리고 산다. 언젠가 병정개미들은 자신들의 여왕개미를 찾아 길을 떠날 것이다. 이 두마리 개미는 평균 크기인 '2머리(6밀리)'를 이미 넘어섰다. 병정개미는 요즘 매일 '위턱 대련'을 하고 있다. 이들은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적외선 홑눈'의 기능 향상에 온힘을 쏟고 있다. 이들은 홑눈의 힘이 일정 수준에 달하고 '존슨씨 기관(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감각기관)'이 어른스러워지고,현재 6천5백개인 후각세포가 30만개로 늘어나는 날이 오면 왕국을 떠날 것이다. 페로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자신들의 여왕개미를 찾아 바람을 가르며 하늘로 치솟을 게 뻔하다.

ant2

우리 집 여왕개미가 오늘 밤 웃으며 한 마디 토해냈다.
"여왕개미가 무슨 일개미 같냐?"
여왕개미와 일개미,병정개미는 오랜 만에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영양섭취를 했다. '진딧물 분비꿀 43%,곤충 고기 41%,나뭇진 7%,버섯 5%,곡물 가루 4%'의 전통 식단은 아니지만,즐거운 완전소통(더듬이 접촉과 총체적 생각 교환)의 시간이었다.
여왕개미는 오늘도 힘들다. 일개미가 딱 한 마리뿐인 데다가 부실한 탓에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한다. 병정개미들을 실어 나르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그러니 여왕개미의 푸념에 일리가 있고도 남는다.  영양섭취를 한 뒤 일개미와 병정개미들은 일렬로 줄을 서 쓰레기터(주방)로 식사의 흔적들을 날랐다.  일개미와 비슷한 일을 참 많이 하는 우리 여왕개미는 그런 모습이 재미있는 모양이다.  여왕개미가 건강해야 우리 왕국이 안전하다.  신민(臣民)의 한결같은 바람은 그녀의 건재함이다. 여왕폐하,만수무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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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명 수필/단상 회상2010. 7. 14.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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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9

연전에 김철중 조선일보 기자가 '역사를 바꾼 31명의 별난 환자들-창조적 사고와 천재적 광기 분석'(번역본)이라는 책을 내놓은 적이 있다. 괴짜,이인(異人),기인(奇人),정신적 불안정자 등으로 이 세상의 역사를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다. 조지 워싱턴,나폴레옹,히틀러,처칠,스탈린,프랭클린 루스벨트,바이런,찰스 디킨스,버나드 쇼,마르셀 프루스트,반 고흐,프로이드 등이 주인공이다.

이 명단엔 니체가 없다. 
하지만 그는 정신질환으로 숨졌다. 니체는 본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포르타 공립학교를 다녔다. 그 시절 그는 친구와 함께 술에 크게 취한 채 귀가하다가 교사와 마주쳐 반장 자격을 한 동안 정지당하는 징계를 당한다. 그의 공립학교 시절 병상기록은 화려(?)하다. 두통,류머티즘,감기,오환,뇌충혈 등으로 평균 일주일 이상 앓았다. 특히 두통은 그를 평생 괴롭혔다. 오죽했으면 니체가 "두통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라고 했을까. 그는 포르테 시절 문학 동아리 '게르마니아'에서 활동하면서 첫 역사적 에세이 '운명과 역사'(1862년)를 발표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1859년에 썼다는 '고향 없이'라는 시(詩)다.이 시에는 그의 작품에 평생 되풀이되는 내용이 처음 등장했다.<'니체,그의 삶과 철학'/이제이북스,김기복,이원진 옮김>

고향 없이

빠른 말(馬)들이 나를 실어가고 있다.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아주 먼 곳으로
나를 본 사람은 나를 알아본다.
또 나를 아는 사람은 누구든 나를 부른다.
고향 없는 이라고...

아무도 감히
나에게 물으려 하지 않는다.
나의 고향이 어디에 있는 지를.

나는 공간과 스쳐가는 시간에
한 번도 속박된 적이 없이,
독수리처럼 자유롭다.  

*'자유,정의,진리'의 독수리 상이 불현듯 떠오른다.
 니체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녔다.
 세계주의자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독수리 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20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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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명 수필/단상 회상2010. 7. 14.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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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20

어릴 때 할머니 무릎에 누워 듣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산골에 사는 부부가 어린 아들을 돌림병으로 잃었다.
엄마는 곡기를 끊고 연일 대성통곡했다. 반면 아빠는 곰방대를 물고 먼 산만 쳐다보았다. 참다 못한 엄마가 아빠에게 한 소리 한다. "당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요? 금지옥엽 아들을 잃고 담배나 피고 있으니,말이요."
아빠가 조용히 말했다. "요강을 가져와 보시요."
영문을 모른 채 엄마가 요강을 가져왔다.
아빠가 말한다. "요강에 침을 뱉어보시요."
엄마가 슬픔으로 엉킨 침을 뱉었다.
이번에 아빠 차례다. 놀랍게도 요강 속에는 결핵 환자가 내뱉은 것 같은 핏덩어리가 가득했다.  
오늘 밤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가 쓴 '만화 같지 않은' 만화책 '아버지'를 읽고 핏덩이를 토해냈다는 이야기 속 아버지를 떠올린다. 
 

m21

주인공의 아버지는 순수하지만 고집불통 인간이다. 돗토리의 대화재로 집을 잃은 그는 처가에서 재기하라고 빌려준 돈을 다 갚기 위해 아둥바둥 일만 했다. 결혼 전 장인,장모에게서 "양조장 집 딸의 돈을 노리고 접근한 게 아니냐"는 말을 가슴에 아로 새긴 채 빚을 청산하기 위해 묵묵히 일만 한다. 다른 사람과 결혼할 예정이었던  그의 아내는 멋을 잃은 남자의 곁을 떠난다. 큰 딸의 담임선생님을 따라 가출한다. 철 모르는 주인공은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를 평생 증오한다. 중학교 때 아버지의 이발소 금고에서 돈을 훔친 뒤 물어 물어 찾아간 엄마는 새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안고 있었다. 충격받은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달려 집으로 돌아온다.  이후 그의 친부 증오는 극에 달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중학교 때는 육상부,고교 때는 사진부 활동에 몰입한다.그리고 고향을 영영 등지기 위해 도쿄로 유학을 떠난다. 그로부터 14년 뒤 어느 날 부친의 부음을 듣고 영안실에 나타난 그는 외삼촌과 만난다.외삼촌이 회고하는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은 아버지가 얼마나 곧고, 성실하며,다정다감한 지 깨닫게 된다. 특히 주인공이 아끼던 강아지를 아버지가 정성껏 돌봤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들이 그토록 아끼던 개를 고향에 돌아와 품 안에 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는 아버지.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시체가 화장되는 현장에서 울음을 토한다. 아버지를 절절하게 느낀다. 때는 이미 늦었다. 그러나 그는 까마득한 옛 추억에 젖는다. "내가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어떤 법칙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어느 봄 날 오후,나는 아버지의 이발소 마루바닥에 앉아 놀고 있었다.따뜻한 봄 햇살의 온기가 한가득 머문 마루. 아마도 그건 어린 시절 중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한 한때였으리라."
그는 다시 그 따스한 봄 날의 햇살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말한다.
"고향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고향이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돌아오는 것이라고..."
          


만화 다니구치 지로의 ‘아버지’


“아버지…당신이 미웠어요”

다니구치 지로의 <아버지>(애니북스 펴냄)가 나왔다.
일본에선 1995년 단행본(원제는 <아버지의 달력>)으로
소개되었는데 2001년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수상할 만큼 최근까지 상찬이 이어진 작품이다.

이렇게 화려한 책 바깥과 달리 책속은 소박하다.
군더더기 없는 펜선따라 전해지는 이야기는 한없이 나직하다.
만화적 과장과 왜곡 따위가 일절 배제됐다. 하지만 속 깊이
울리는 것은 곡절의 삶을 지나온 ‘가족’을 섬세하게,
사실적으로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부고를 전해 듣는 요이치. 미동도 없이 두 가지를
셈해본다. 아버지의 나이, 그리고 자신이 고향을 떠나 지내온
세월. 15년이었다. 고향 도토리현에서 도쿄까지 기차로 8시간이
걸리는 거리가 비행기 1시간 거리로 줄어드는 데 걸린 시간인
셈.반면 자신은 애면글면 가족, 특히 아버지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발버둥쳤던 아득한 시간이었다.

중학교 때 “아직 가족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무력을 뼈저리게 느”낄 만큼 아버지가 싫었던 요이치.
이유는 초등학생일 때 지켜본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이었다.
그 탓이 아버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장난감을 든 꼬마
요이치의 머리를 봄볕이 지나고 있었고, 한쪽에서 이발사인
아버지는 손님의 머리를 깎고 있었다. 요이치에게는 이것이
‘고향’이고 ‘가족’이었지만, 아버지로 인해 풍경은 지워졌다고
확신했다.

‘가족사 곡절’ 나직이 되밟아

문상 때 만난 다른 가족들을 통해 요이치는 내막이 다
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각각 이유로 떠난 이가 다시
돌아와도 여전히 같은 품을 지닌 고향인 양 묵묵히 요이치를
지켜보고 기다렸던 아버지가 비로소 고향을 떠난 때였다.

다니구치의 실제 이야기가 바탕이 되었다. 이혼하게 된 배경
한 가운데 도토리 대화재 사건(1952년)이 있다. 6천이 넘는
가옥이 탔고 시가지의 3분의2가 잿더미가 된 재앙이었다.
‘가족’은 애썼지만 넘어서기 어려운 고빗사위였다. 지난해
소개되어 이미 감동을 줬던 또 다른 작품 <열네 살>처럼
따뜻한 실사영화를 한편 보는 듯하다. 다니구치 특유의 감성과
작법이 오롯하기 때문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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